'친문' 김경수만 남아도 대권가도 물음표
한국정치사 증명해온 '정권주류 필패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정치권이 '안이박김'이라는 신조어로 떠들썩하다. 여권에서 안희정·이재명·박원순을 차례로 숙청하고 있다는 것이 이 풍문의 골자다.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이 지난달 19일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안이박김이란 말이 화제다. 김은 누구냐"라고 물으면서 주목받았다.
가담항설(街談巷說)로 치부될 흔한 정치권 루머처럼 보이지만, 이 풍문이 확산된 까닭은 지금까지의 상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폭행 논란으로 사실상 정치여정은 멈췄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여러 논란으로 상처가 깊어 일어설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고용세습 채용비리 국정조사 합의로 코너에 몰린데다, 정부와도 각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다음 '김'이 누구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크게는 주로 두 가지 풀이가 나온다. '셋을 숙청하고 마지막을 남긴다'는 뜻이라면 김경수 경상남도지사가 지목되고, 이 모두가 살생부라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어느 쪽 해석이든 방향성은 한 가지다. 비문계 후보를 제치고 친문계 후보를 옹립하기 위한 행보라는 추리다.
어차피 풍문에 불과하니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짚고넘어갈 것이 있다. 과연 이 가상의 시나리오(와 그 해석)대로 친문계 후보가 여당의 대권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문이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이래 한국 정치사에선 국민들이 이를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에선 민정계가 주류였지만 비주류였던 YS가 정권을 잡았다. 여권의 핵심 주류가 민주계로 바뀌는 상황이 연출됐다. 신한국당 내에서 민주계엔 최형우, 김덕룡, 이인제라는 강력한 대권 잠룡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계는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서, 민정계 후보라고 할 수 있는 이회창에게 다음 대권후보 자리를 내줬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도 마찬가지다. 권노갑·한화갑·한광옥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은 대권주자까지 올라서지 못했다. 대신 당내 비주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면서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친노계는 열린우리당의 붕괴와 함께 힘을 잃었다. 대신 친노 출신이었지만 반노로 돌아서며 각을 세운 정동영이 대권주자가 됐다. 친노계에선 한명숙이 이해찬을 지지하며 사퇴, 뭉쳐보려 했으나 결국 손학규에 이어 3위로 경선을 마감했다.
이명박(MB) 대통령 시절, 친이계와 대립각을 세운 친박계는 박근혜를 내세워 정권을 거머쥐었다.
결국 대통령을 만든 계파가 차기대권 후보를 낸 사례는 단 한차례도 없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안이박김' 풍문처럼 비문계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이뤄진다 해도, 친문계의 핵심주자로 지목되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대권주자로 설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안이박김' 풍문이 진위 여부를 떠나 정치공학적으로도 허망해 보이는 이유다.
상도동계로 분류되는 한 노정치인이 24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안이박김' 숙청설이 레토릭에 불과하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후, 모든 정권은 자신들 계파로의 권력연장을 위해 애를 써왔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다. 노태우 정권 때는 박철언을 앞세워 월계수회를 만들어 YS를 견제했다. 하지만 YS가 대통령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최근에 일어난 최순실 사태도 결국은 친박계로의 정권연장을 꾀하다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보면 된다. 87년 이후 한국에서 특정계파가 정권을 연장한 경우는 단 한차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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