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타 암 유전자 변이 양성
예방적 양측 유방 전절제와
난소 제거해야 재발률 낮아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2019년은 내 인생에서 매우 다이내믹한 한 해였다. 삶이란 게 어느 누군들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만은, 60여 평생 나름 굴곡진 세월의 파고를 넘어왔는데, 인생 후반기에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해 2월 겨드랑이 멍울을 처음 발견한 후 난소 낭종 존재까지 확인했다. 이어 5월 난소 응급수술과 암 확진 후 후 7월 겨드랑이 전이암 수술, 침샘암 추가까지 숨 가쁜 여정이었다. 격랑의 바다에 담담히 몸을 맡긴 채 또 다른 충격적 이변은 없겠지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그렇다면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유방암은 콕 집어 원인을 말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어떤 사람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걸리지 않을지 확실하게 알 수도 없다. 위험인자를 살펴보면 여성호르몬, 출산 연령과 경험, 수유 여부, 음주, 방사선 노출, 비만, 유방암의 가족력 등 다양하다.
나는 20대에 두 아이를 출산해 모두 모유 수유를 했다. 이 사실에 기대어 친정 엄마의 유방암으로 가족력이 강한데도 ‘난 엄마랑 체질이 다르고 평소 생활 습관에도 차이가 있다’며 관리와 정기 검진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암 발병 가능성에 ‘혹시나’가 아니라 ‘설마 내가?’ 하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약방문으로 암 진단을 받고서야 그 원인에 대해 돌아봤다.
우선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아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함께 갱년기 지나며 5~6kg 정도 체중 증가가 원인의 한 축으로 판단된다. 또한 식생활상 유난히 선호하던 밀가루 음식이나 비타민, 단백질 등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부족도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결정적으로 인간사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지만 발병 5~6년 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속앓이를 많이 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심하게 분출된 시기였다. 그러니 갖가지 요인과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됐다고 분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환우 카페에서도 수많은 일성이 스트레스를 주요 발병 요인으로 뽑는다.
사실 우리 몸에서는 매일 수천 개에서 수만 개의 암세포가 생겨난다. 이 암세포는 주기적으로 생산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암에 걸리고 걸리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몸의 방어 체계인 면역시스템의 작동에 달렸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NK세포, 세포독성 T세포, B세포와 같은 여러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죽일 수 있기에 악성 종양으로 발전하지 않고 정상세포로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유전적, 환경적 원인으로 인해 계속 생겨나는 암세포의 증식에 대항해 면역체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유전자
마지막으로 중요한 유전적 소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방암 유전적 요인에 대해서는 브라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검사는 유전성 유방암 관련 유전자인 BRCA1과 BRCA2 유전자에 발생한 병적 변이를 검출하기 위해 핵산을 분석하는 검사다.
유전자가 하나하나의 형질을 만드는 단위라면, ‘게놈(genome)’은 어떤 생물이 가지는 유전자 전체를 합한 것을 칭한다. 게놈이라는 단어는 유전자를 의미하는 ‘gene’에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ome’ 어미가 조합된 단어다. 게놈은 1920년에 한스 빙클러(Hans Winkler)가 처음 정의한 단어로, 원래는 정자나 난자 같은 배우자가 가지는 상동 염색체의 한쪽을 가리키는 단어로 만들어졌다.
게놈이 현재와 같은 ‘한 생물의 전체 유전자 집합’으로 다시 정의된 것은 1930년 기하라 히토시에 의해서다. 이러한 정확한 정의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유전자와 게놈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암 유전자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염기서열로 되어 있으며 발현하면 세포의 신생물 형질전환이 이상 성장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을 유발한다(예를 들어 종양의 형성). 처음에는 이러한 유전정보가 발암성 바이러스에만 존재하며, 그것이 2차적으로 숙주세포의 DNA와 결합하며 악성종양 세포로 전환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암 유전자는 인간을 포함해서 척추동물의 여러 종에서 발견되었으며, 정상세포의 게놈(genome)에 폭넓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상세포에서는 이러한 유전자들이 잠재하거나 발현되지 않는데, 암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발현되면 악성종양이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브라카 유전자 변이
BRCA(Breast Cancer Susceptibility Gene, 1 and 2)는 두 개의 유전자인 BRCA1과 BRCA2가 있다. 흔히 유방암 유전자로 잘못 알고 있는데 모든 사람은 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 유전자의 주요 역할은 DNA를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다만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돌연변이로 인해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
BRCA 유전자 병적 변이를 가진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암 발생의 위험도가 높기에, 질병력 및 가족력으로 볼 때 병적 변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검사를 한다.
40세 이전에 유방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가족 내 유방암 혹은 난소암 환자가 있는 유방암 환자
유방암과 난소암이 모두 진단된 환자
남성 유방암 환자
양측성 유방암 환자
가족 내 BRCA 유전자 병적 변이가 발견된 경우
일반 평범한 여성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10% 미만인데 비해, 이들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여성의 경우, 일생 60~80%의 유방암 발생 위험, 40%의 난소암 발생 위험이 있고, 재발할 가능성도 높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암과 남성 유방암의 위험이 커지고 췌장암, 대장암, 흑색종 등 발병 위험도가 증가한다.
아울러 변이가 있는 사람의 자녀는 50% 확률로 남녀 구분 없이 유전되는 것도 문제다. 암 유전자 변이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아직 없고, 문제적 요소가 있을 경우 계속 추적 관찰하며 예방하는 길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여러 검사를 통해 감시해야 한다. 변이가 확인되면 예방하기 위해서 암 없는 유방과 난소까지 전절제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
브라카 유전자는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녀는 어머니와 이모를 유방암으로 잃고 브라카 1 유전자 변이가 있음을 확인한 후 예방적 양측 유방 전절제와 난소 제거술을 받았다. 이렇게 수술하게 되면 유방암 발병 확률을 80%에서 5%로 줄일 수 있다.
브라카 2 변이 양성 판정
유방외과 첫 진료에서 가족력을 확인하던 중 엄마의 유방암 발병 사실을 전하자, 주치의는 유전자 검사를 권유했다. 6월 검사 후 2달여 소요되어 첫 수술 후 그리고 항암 치료 시작 전인 8월에 나온 검사 결과, 불행히도 나 역시 브라카 2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난 유방암 타입이 삼중음성에 브라카 유전자 변이까지, 가장 재발 전이율이 높은 사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판정 결과 통보와 함께 예방적 차원에서 양측 유방 전절제와 두 난소 제거를 해야한다는 냉정한 선고를 받았다. 그건 브라카 유전자 변이로 인해 재발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나는 난소 둘 다 이미 낭종으로 제거한 상황이었기에 양측 유방을 전절제할 숙제가 남아 있던 셈이다.
당장은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시급한 스케줄이므로, 기본적인 표준 치료가 다 끝나고 재수술해야 한다. 브라카 변이 유방암 환자들은 양측 유방 전절제와 난소난관, 심지어는 자궁까지 제거하는 대수술을 두고 생명의 위험을 낮추려 절박한 선택에 봉착하게 된다.
게다가 형제지간과 자녀까지 검사하기를 권유했다. 이에 변이 판정 환자들은 자녀들에 대한 걱정도 많다. BRCA 유전자 검사는 일종의 혈액 검사로 유전상담에서 환자 본인의 질병력 외 적어도 3대에 걸쳐 특히 암과 관련된 가족력을 자세히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암 발생 위험도를 평가하게 된다. 따라서 부계 및 모계의 가족력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 유방암 또는 난소암 발생 위험도가 일반인에 비해 높지만, 반드시 유방암 또는 난소암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 암 확진받은 해에 확인한 난소 낭종이 암이 아니라 양성으로 판명된 것만 봐도 그렇다. 갱년기 지난 난소 낭종의 악성 가능성과 브라카 변이까지 소지하고 있음에도 난소암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암 유전자의 당면한 현실
그렇다면 결혼을 약속한 배우자에게 유방암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조사 결과가 최근 국내에서 공개됐다. 20~30대 결혼·출산 적령기 남녀 4명 중 1명은 “파혼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유전자 변이는 결혼뿐만 아니라 출산에 대한 태도도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한 후 ‘본인이 유방암 유전자 변이가 있어도 자녀를 낳을 것인지’라고 질문하자 36%가 ‘출산을 포기하겠다’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토록 민감한 반응에 전문가는 “유방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면 유방암, 난소암, 전립선암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나 무조건 암에 걸리는 건 아니다”라며 “건강한 생활 습관, 정기 검진 등으로 위험을 낮출 수 있으므로 그릇된 선입견이나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라고 밝혔다.
나 역시 브라카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곤 등골이 오싹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건 지금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자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다만 건강염려증처럼 지나치지 않으면서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날로 성장하는 의학의 발전을 기대하며 꾸준하고 완벽한 자기 관리만이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뿌연 안개 같은 미래, 내일은 무엇이 기다릴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