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갑자기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선용은 잔뜩 긴장하면서 영순의 입을 주시했다. 영순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면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선주 엄마야, 사실은 내가 인천 사람이야. 내가 원래 인천 바닷가에서 새우젓을 소매로 파는 새우젓 장사였어...”
“아-그랬어요?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거기가 장사가 잘됐을 텐데요.”
“그건 그렇지. 장사는 훨씬 잘 됐지. 문제는 애들 아빠가… 애들 아빠가 술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해서 바람이 났지 뭐야, 그렇게 나를 못 잡아먹듯 두들겨 패는 거야.”
“어머나, 세상에 나쁜 짓은 자기가 하면서 왜 부인을 두들겨 팬대요?”
“다른 여자한테 빠지니까 눈이 뒤집혀 내가 원수처럼 여겨지는 거지...”
“뭐 그런 황당한 일이 다 있대요. 바람이 났으면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딥다 뭘 잘했다고 본부인을 때린대요.”
“그러게 말이야, 점점 날이 갈수록 나를 더 두드려 패면서 날 보고 집을 나가라는 거야. 애들은 그냥 놔두고 나만 혼자 나가라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영순의 두 눈에 분노의 빛이 역력했다. 선용에게도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큰일이네. 여자 힘으로 남자를 이길 수도 없고…그래서 어떡하셨어요?”
“도저히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을 떼놓고 나올 수 없어서 생각다 못해 내가 새우젓을 떼는 새우젓 도매집 주인아저씨한테 부탁을 했지.”
“아—무슨 부탁이었는데요?”
“애들과 같이 인천을 떠날 수 있도록 다른데 일자리 좀 얻어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뭐래요?”
“마침 도매집 아저씨 친척이 연주군(지명)의 가까운 곳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를 그 고아원의 밥하는 아줌마로 취직을 시킨 거야. 준비도 없이 애들하고 야반도주하다시피 입을 옷만 대충 싸 가지고 나왔지. 그때 애들이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었는데 앞뒤 가릴 여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몸만 나온 거야.”
말하는 영순의 눈가에 분노의 빛과 슬픔의 빛이 동시에 번졌다. 선용은 다음 영순의 얘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때 방에서 숙제하던 선주가 나와서 영순의 방문을 열더니 “엄마, 나 배고파” 하는 것이었다.
“그래 선주 엄마야, 어서 애들 저녁밥 해줘.”
선용이 영순의 방에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어느덧 시계가 5분 전 6시였다. 선용은 재빠르게 영순의 방을 나와 부엌으로 가서는 아이들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은 이미 전기밥솥에 해 놨으니 반찬만 챙기면 되었다. 선용은 양념에 재워놓은 돼지고기를 프라이팬에 볶기 시작했다.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