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MBC 취재진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 씨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경찰을 사칭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 전 총장 측은 MBC 취재진을 강요 및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고발했고, MBC는 이들의 취재 윤리 위반을 사과하고 관련 업무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자 출신’인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나이가 든 기자 출신들에게서는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며 “아마 제 나이 또래에서는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나섰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렀으니 기준과 잣대가 달라졌고, 그런 시대 변화에 맞춰서 잘못한 것은 맞는데 윤 전 총장이 이걸 고발한 것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 말을 요약하면, ‘현재 기준으로 보면 잘못한 일은 맞지만, 예전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윤 전 총장이 경찰에 고발까지 한 건 과하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국회의원이 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주장이다. 김 의원이 임기 내내 ‘적폐청산’을 외쳤던 문재인 정부에서 대변인을 지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형법 제118조에 따르면, 공무원 자격을 사칭해 그 직권을 행사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 의원 주장대로, 나이가 든 기자 출신들 사이에서 공무원 사칭이 ‘흔한 일’이었다면 그들은 모두 범법을 저질렀던 셈이다. (애초에 흔한 일도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만약 취재라는 미명하에 위법한 행위가 관행으로 용인돼왔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청산해야 할 적폐’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 적폐라면, 기자라는 이유로 법적 처벌을 면제받은 것은 적폐의 본보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김 의원이 ‘나 때는 더했다’는 식으로 옹호한 것은, MBC 취재진이 겨냥한 대상이 ‘야권’ 유력 대선주자이기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나마 ‘대 놓고 말한’ 김 의원은 솔직한 편이다. 그토록 적폐 청산과 언론 개혁을 부르짖었던 여권 인사들 가운데, MBC 취재진의 위법한 취재를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많던 시민단체도, 언론의 ‘정치 개입’을 목 놓아 성토하던 여권 ‘스피커’들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임기 내내 적폐청산을 말했던 사람들이 ‘내 편에 유리한 적폐’에는 침묵하고 있는 꼴이다.
내편을 공격할 때 적폐였던 것이 상대편을 공격한다고 적폐가 아닐 리 없다.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적폐청산을 하려 했다면, 내편에 유리하든 불리하든 적폐는 비판의 대상에 올려놔야 한다. 하지만 MBC 취재진의 경찰 사칭 사건에서 나타나는 정부여당의 모습은 ‘내편 무죄 네편 유죄’라는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기자는 묻고 싶다. 여권이 원하는 건 정말 적폐 청산이었나 아니면 ‘저 편’ 청산일 뿐이었나.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