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정홍원 사퇴하라는 유승민…‘자가당착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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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정홍원 사퇴하라는 유승민…‘자가당착 아닙니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9.02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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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전 尹 만난 정홍원 사퇴하라는 劉…이준석은 괜찮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사오늘 김유종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사오늘 김유종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유 후보는 8월 31일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경선준비위원회와 최고위원회가 이미 확정한 경선 룰을 자기 멋대로 뜯어고쳐서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으려고 한다”며 “그런 식으로 경선 판을 깨겠다면 그냥 사퇴하라”고 말했다.

유 후보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웅 의원도 8월 30일 YTN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정 위원장은 윤석열 후보를 미리 만났고, 윤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도 표명을 했다. 또 경선준비위원회가 어렵사리 만들어놨던 결론을 다 뒤집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며 “이 정도로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면 정 위원장은 용퇴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유 후보 측이 정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건 ‘공정성’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유 후보는 8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후보가 정 위원장을 8월초 만났다고 한다”면서 “정 위원장께서는 대선후보 경선 여론조사에 ‘역선택 방지 조항’이라는 걸 넣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졌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유 후보는 또 8월 31일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정 위원장과) 만났다고 후보가 시인하지 않았느냐”며 “그런 왕래도 있는 데다 정 위원장의 언론 인터뷰를 보니 윤 후보를 지지하는 것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것 자체가 처음부터 불공정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유 후보 측은 윤 후보가 정 위원장을 사전에 만난 것과 정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윤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윤 후보만을 위한 경선 룰을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얼핏 보면 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한 유 후보의 말이 옳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따져보면 유 후보의 말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선 윤 후보가 정 위원장을 만난 시점은 8월 5일이고, 정 위원장이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된 날짜는 8월 23일이다. 유 후보 말대로라면, 윤 후보는 무려 18일 전에 미리 정 위원장의 선임 사실을 예측하고 찾아가 교감했다는 뜻이 된다.

더욱이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거관리위원장은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대표가 위촉한다. 정 위원장은 이준석 대표가 선임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윤석열 후보가 미리 만나 경선 룰 조정에 대해 교감한 인물을 이 대표가 선관위원장으로 임명했다는 유 후보 측의 논리에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정 위원장이 윤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는 유 후보의 말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유 후보가 언급한 기사는 <월간조선> 8월호에 실린 ‘정통보수원로 2人 20대 大選을 이야기하다 - 정홍원 前 국무총리·김용갑 前 총무처장관’으로, 이 기사에서 정 위원장이 윤 후보에 대해 평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윤석열 전 총장은 검찰총장을 하면서 정권의 비리도 많이 보고 탄압도 받았기 때문에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함이 있으리라 봅니다. 또 언행을 보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도 장점이죠. 하지만 과거 행적에서 입장 정리를 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 그 부분을 어찌 풀어나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윤석열·최재형·김동연) 세 사람 모두 검증을 마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검증 과정을 거쳐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아까 얘기한 기초 소양과 링컨 리더십을 갖고 있거나 앞으로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지하려 합니다. 완벽한 사람이야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제일 절박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줄 사람이면 됩니다.

정치라는 게 추잡한 면이 있지요. 그렇게 뒤에서 연기를 피우거나 살짝살짝 총질을 해서 상처를 내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음모라는 게 입을 거치면서 계속 커지는 건데 의혹이 있으면 당당하게 내놓고 공론화하든지 해야죠. 그리고 개인 비리 얘기도 나오지만요, 만약 자신의 개인 비리가 심각하다면 후보로 나서겠습니까?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실격 사유가 될 것 같으면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발언을 ‘윤 후보를 지지하는 것 같이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 있느냐는 차치하더라도, 정 위원장이 이 인터뷰를 가진 시점은 7월 말이었다. 선관위원장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던 시점이다. 만약 선관위원장이 되기 전 한 말이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논리라면, 이준석 대표 역시도 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음은 이 대표가 당대표로 취임하기 석 달여 전인 3월 6일 <매일신문 프레스18> 유튜브 채널에서 최훈민 기자·유재일 시사평론가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최훈민 기자 “윤석열이 너(이준석) 와라 하면 어떡할 거야.”
이준석 대표 “난 대통령 만들어야 될 사람이 있다니까요? 유승민.”
유재일 평론가 “유승민계가 김종인 없이 국민의힘 당권 잡을 수 있어요?”
이준석 “내가 (당권) 잡을 거야. 유승민계가 잡는 게 아니라.”

유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유 후보를 지지하는 이 대표가 대표 자리에 오른 것 자체가 불공정했다는 말이 된다. 나아가 이 대표가 구성한 경선준비위원회가 결정하고 최고위원회에서 추인한 경선 룰은 ‘유승민 후보만을 위한 경선 룰’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 위원장이 윤 후보를 만나고 언론 인터뷰에서 윤 후보를 언급했다고 해서 ‘불공정’하다는 유 후보 주장에 따를 경우, 유 후보와 가까운 관계에 있고 언론 인터뷰에서 ‘유승민을 대통령 만들겠다’고 공언한 이 대표도 사퇴해야 할 인물이 돼버린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경선 룰을 둘러싼 후보 간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고,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큰 정치인’이라면, 논리적 비약과 말장난으로 지지를 호소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눈앞의 이익을 위해 억지를 부리기보다, 합리적 언행과 국민을 위한 공약으로 자웅을 겨루는 ‘대선 후보’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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