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의 ‘집권 시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 발언에 대해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 했다는 말인가”라며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야당 대선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이러자 대선판이 요동칠 기미가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로 흘러가던 선거 판도가 문 대통령 대 윤 후보 구도로 재편되는 모양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 지지율이 요지부동(搖之不動)인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등판은 정말 이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요. 단기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이 후보의 지지율은 35% 박스권에 완전히 갇힌 상태입니다. 불리한 이슈가 나와도 떨어지지 않지만, 유리한 이슈가 나와도 오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 후보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판을 흔들 수 있는 변수가 필요했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참전은 적잖은 파괴력을 동반할 공산이 큽니다.
실제로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이 후보에게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은 호남 유권자들과 친문(親文) 지지층이 결집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후보 지지율이 최소한 문 대통령 지지율까지는 올라오기를 바라는 거죠. <머니투데이> 의뢰로 <한국갤럽>이 7~8일 실시해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은 36.9%로 문 대통령 지지율인 43.2%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분노’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쏠린 국민들의 시선을 다시 대선으로 끌어들이고, 김혜경 씨의 ‘과잉 의전 의혹’과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을 뒤로 밀어내는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만약 문 대통령 뉴스가 아니었다면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쏠렸을 것이고, 앞으로 2주 간은 현재 지지율이 고착화될 확률이 높았죠. 정치 뉴스는 ‘김혜경’이라는 이름으로 뒤덮였을 테고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윤 후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직접 비판이 이 후보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문 대통령이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이 후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정권 심판론’ 프레임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한 까닭입니다. 앞선 조사에서,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43.2%였지만 ‘잘못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53.9%였습니다.
‘현 정권 유지를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더 낮아서, 37.5%에 불과했습니다. ‘현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4.6%에 달했습니다. 윤 후보와 이 후보 지지율 차이보다 ‘정권 교체론’과 ‘정권 유지론’의 차이가 더 큰 겁니다. 이 후보는 이 프레임을 깨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은 그 노력을 허사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현직 대통령들이 야당 후보, 때로는 여당 후보에게까지 집중 포화를 받으면서도 지켜왔던 ‘선거 중립’을 문 대통령이 깨부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 한마디에 선거 판도가 출렁인다는 건 그 자체로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막판에 거대한 파문을 몰고 온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 정말 이 후보에게 좋은 일이었을까요.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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