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정권 교체론이라는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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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정권 교체론이라는 허상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01.01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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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론 낮았던 대선 있었나…‘더 나은 내일’ 청사진 제시 못하면 높은 정권 교체론 무의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국민의힘은 높은 정권 교체론을 바탕으로 대선 승리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시사오늘 김유종
국민의힘은 높은 정권 교체론을 바탕으로 대선 승리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시사오늘 김유종

지난 몇 달 동안, 국민의힘 내에는 희망적인 기류가 가득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자신감도 보였습니다. 선거가 한참 남았는데도 이들이 승리를 자신했던 건, 단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정권 교체론’이 높다는 거였죠.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과반이니, 누가 대선 후보가 돼도 차기 대선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 언젠가부터 이 논리가 국민의힘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다 이긴 게임’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이런 행태에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레임덕을 겪었습니다. 40% 안팎을 유지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 말 최고 지지율일 만큼 역대 대통령들은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된 후 권좌에서 내려왔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는 건 정권 교체론이 높다는 뜻입니다. 대통령 지지율과 정권 교체론이 연동하는 건 필연적입니다. 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지만 정권은 연장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리 없으니까요. 즉, 역대 대선은 모두 ‘정권 교체론’이 우세한 상태에서 치러졌다는 뜻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정권을 이어간 2002년 대선을 볼까요. 당시 정권 교체 여론이 얼마나 높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여론조사는 찾을 수 없지만, 대선을 6개월여 앞둔 제3회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한나라당에게 참패를 당한 걸 보면 정권 교체론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한나라당은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11곳을 휩쓴 반면, 민주당은 호남과 제주에서 겨우 4곳을 얻는 데 그쳤죠.

8월 8일 재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13개 의석 중 11곳을 가져갔습니다. 민주당은 호남에서만 2곳을 이겼습니다. 누가 봐도 민심은 정권 교체를 가리키고 있었죠. 그러나 대선 결과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국민들은 단순히 정권 교체론에 기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다는 ‘지역주의 타파’와 ‘권위주의 척결’이라는 청사진을 내건 노 후보가 조금 더 ‘변화’에 가깝다고 봤던 겁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2012년 대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선을 20여 일 앞둔 2012년 11월 28일, <모노리서치>가 전국 성인 231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4%가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는 33.1%에 그쳤습니다. <헤럴드경제>가 의뢰하고 <리얼미터>가 26~27일 실시해 2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정권 교체 여론이 54%에 달했습니다. 정권 교체 여론이 과반을 넘었던 겁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은 어땠을까요. <모노리서치> 조사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0%,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1.8%,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48%, 문 후보가 43.3%였습니다. 실제 결과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이었고요. 같은 기관에서 한 조사였음에도, 정권 교체 여론과 야권 후보의 지지율은 디커플링(decoupling)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정권 교체론은 현 정부에 대한 불만족을 뜻합니다. 그래서 정권 교체론이 높으면, 야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게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여당 후보는 현직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벗기 어려운 데다, 여당 후보가 현직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서는 건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단,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정권 교체론의 본질은 ‘힘든 현실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의 표출입니다. 단순히 ‘이 힘든 세상을 만든 현직 대통령’을 때리기만 하는 건 정권 교체론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국민들의 불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과 방법론을 내놓으면서 ‘변화를 이끌 리더’ 이미지를 선점할 때 정권 교체론은 지지율로 환원됩니다. 만약 야당 후보보다 여당 후보가 더 ‘내 삶을 바꿔줄 인물’에 가깝다면, 정권 교체를 원하면서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은 높은 정권 교체론 속에서도 적절히 현 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대안을 내놓는 방법으로 정권 유지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정권 교체론에 파묻혀 미래 담론을 제시하지 못한 야당 후보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구도 속에서도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습니다. 요컨대, 정권 교체론 그 자체보다는 누가 정권 교체론의 함의를 잘 파악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이제는 국민의힘도 정권 교체론이라는 허상에서 빠져나와 국민들 앞에 청사진을 내놔야 할 때가 아닐까요.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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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ung Jin 2022-01-01 15:08:10
허경영이나 제대로 대선 설문지 반영, 언론에 보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