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장대한 기자]

전기차 화재 사고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지난해까지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화재 사고 이후의 모습들을 지켜보면 자꾸만 한숨이 나옵니다. 대규모 화재 사태 속에서 마땅한 대책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배터리의 모델별 정보 공개가 속속 이뤄지고 있지만, 딱 그뿐입니다. 

국민의 목숨이 달린 만큼 빠르고 강력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이지만, 정부는 강제적 규제보다 권고 수준의 대책들만 조심스레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완성차와 수입차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오히려 업계 스스로가 배터리 정보 공개와 무상점검 등에 자발적으로 나서며 우려 불식에 앞장서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번 까칠 뉴스는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조심스럽지만 배터리 원산지만으로 '위험한 전기차'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우리 소비자들의 태도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자동차 브랜드들이 배터리 정보 공개에 나서기 시작하자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어느 브랜드가 중국산 배터리를 썼는지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자동차계 명품으로 추앙받는 벤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배터리 회사 제품들을 제쳐두고 저급의, 안전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중국 패러시스 제품을 가져다 썼다가 화재 사고를 초래해 문제가 된 게 발단입니다.

벤츠가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배터리 제품을 사용해 사태를 키운 것이라면 지탄받아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해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맹목적으로 바라보게 됐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한국 배터리를 썼다고 하면 칭찬하고, 반대로 중국 배터리라 하면 욕하기에 바쁩니다. CATL이나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중국 배터리들까지 패러시스 배터리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 현실인데요. 자동차 브랜드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배터리 공개에 나서고 있지만, 행여 중국 배터리 제품은 안 팔릴까 걱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다면 감히 반문해 보겠습니다. 우리 국산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배터리는 무조건 안전하다 자부할 수 있을까요. 현대 전기차 코나(현재 2세대 판매)가 1세대 모델로 처음 나왔을 당시 화재 문제를 겪으며 단종됐던 때가 있습니다. 당시 장착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 제품이었습니다. 미국에선 삼성SDI 제품을 탑재한 전기차 모델들이 화재 위험으로 리콜 명단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대한민국 대표 배터리 브랜드들도 얼마든지 중국산 배터리와 비슷한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요. 맞습니다. 아무리 안전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아직 완벽한 배터리의 전기차는 없습니다. 전기차보다 덜 복잡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폰 충전기조차도 여전히 폭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오죽하겠습니까.

과거 신토불이란 노래가 큰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이 우리 몸에도 좋다는 건데요. 지금과 같은 첨단 시대에 배터리도 우리네 것이여야만 안전하고 좋은 걸까요. 한국 브랜드 배터리가 안전하다고 자만했다간 큰코다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합리적 비판은 원산지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극단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중국산 배터리만 문제 있다는 식의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해야겠는데요. 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안전 관련 담론이 활성화됐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한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와 배터리'에 불이 나지 않을 수 있을지를 말이죠.

소비자들이 전기차 화재를 100% 배터리 회사들만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배터리에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최적화된 차량 설계가 얼마나 긴밀히 이뤄졌는지 또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기차는 다양한 산업 부문에서의 협력 및 협업 결과물입니다. 전기차 생태계가 이번 화재를 교훈 삼아, 타협 불가능한 안전을 기치로 해 성장해 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