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정치인의 자격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했다. 검증된 지위, 높은 학력 등 외적인 자격이 가장 중요하던 시대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진정성 등 내적 자격이 중시되는 세상이 열렸다. 서울 구로구을의 자유한국당 강요식 당협위원장은 꽤 오래전부터 ‘정치인의 내적 자격’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인물이다. 기자를 만나면 자신보다 구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꺼내며 지역구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가 하면,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지난 총선 땐 직접 ‘머슴’복장으로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도전보다 재도전은 열 배는 어렵다는 정치판에서, 두 번 의 낙선에도 여전히 구로구를 지키고 있는 그다. <시사오늘>은 그 저력의 원천을 엿보기 위해, 지난 12월 5일 강 위원장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나는 원래 군장교 출신이었지만, 사실 몸에는 선거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부께선 자유당 시절 전북 신태인읍의 읍장을, 부친께선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내셨다. 고교시절엔 부친의 선거운동을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2년은 전?후방 각지에서 참모, 지휘관을 지냈는데, 이 시절에 애국심이 더 불타면서 결심을 하게 됐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평화유지군 활동을 하던 시절, 모가디슈 공항에서 눈먼 박격포탄이 터져서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 했는데, 그 때 ‘전쟁없는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보의 중요성, 정치의 중요성이 다시 와 닿았다. 그래서 선조들이 못 다한 정치 봉사를 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공들여 쌓은 군업적을 뒤로 하고 자진 전역을 했다. 이후 국회의원 입법 비서관으로 정치 일선에 처음 입문했다.”
- 보수정당에 몸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해방 후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는 동안, 그 발전의 바탕에 있던 정치세력은 바로 보수진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가치를 수호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바로 세우려면 보수정당의 힘이 필수불가결이다.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적통 보수정당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이뤄낸 주역들이 만든 정당 아닌가. 특히 안보 측면에선 한국당이 가장 앞서 있다. 나는 육사 출신으로,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을 화랑정신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좌파 정치세력은 보통 천하태평 평화구걸 정책으로 안보를 위태로운 지경에 빠뜨리기 일쑤다. 그래서 보수 정당이 이러한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최근 보수의 위기라고 한다. 자유한국당도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데.
“탄핵정국 이후 국민적 여론은 아직 차가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반전이 일어날 거라고 본다. 한국당은 저력이 있는 당이다. 지금은 비록 음지에 있지만 곧 양지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정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데 기대를 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보수당에 실망해서 엄중한 경고와 형벌을 가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견제와 균형의 측면에서 바로잡아 줄 것이다. 선동정치나 영혼없는 선전은 오래 못 간다.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과 ‘정치보복 행태’를 보며, 생각보다 빨리 그런 날이 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역구에 대한 애착을 평소 많이 드러낸다.
“구로구에 산 지 18년째다. 자녀가 셋인데 모두 신도림동에 살면서 초·중·고를 졸업시켰다.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 제 2의 고향인데 애착이 없을 수가 있겠나. 앞으로 살아야할 날이 더 많다. 오래 살다 보니 일거리가 자꾸 눈에 띈다. 무슨 일이 터져도 남 일이 아니다. 구로5동에 다세대 주택 붕괴사고 때, 신도림 아파트 배수관이 터졌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갔다.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몸이 움직였던 것 같다.”
-구로와 관련된 시를 써서 시집도 발간했다고 들었다.
“구로동에는 구릉지는 물론이고 오를 만한 산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산악회가 구로구을 지역에만 약 90여개가 된다. 그래서 산이 없지만 산을 찾는 모습에서 시상이 떠올라, 어느 날 구로산(九老山)이라는 시를 썼다. 구로산은 실존하지 않는 마음의 산이고, 희망이다. 이것 외에도 구로와 관련된 시를 많이 썼는데, 이런 것들을 묶어서 졸고(拙稿)를 하나 내 본 것이다.”
-구로구의 가장 중요한 현안을 꼽는다면.
“서부간선 지하도로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우선이다. 서울시 민자 사업인데, 2016년 3월에 기공식을 하고 잘 출발하는 듯 했지만 환기 문제가 제기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주민들이 침묵했다면 지상으로 오염물질이 배출돼 큰일 날 뻔 했다. 사업 초기에 공청회, 설명회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주민들의 힘이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나도 서울시청과 구로구청을 오가며 1인시위에 참여하면서 작게나마 힘을 보탰다. 아직 세부적인 문제 몇 가지가 남아있다. 바이패스(집중형·분산형)와 미세먼지 정화(전기집진·제진필터) 방식에 대한 의사결정, 비상배연구의 정화문제, 지상도로의 안전 등이 미결상태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두 차례나 낙선을 했는데 서운한 감정은 없나.
“서운하지도, 낙심하지도 않는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 아쉬운 마음은 있다. 하지만 떨어져 봐야 배우는 것, 느끼는 것도 당연히 있다. 오히려 일하고 싶은 마음과 절실함은 더욱 커졌다. 가끔 지역 행사에 가면 ‘일 좀 시켜주세요’라고 인사하기도 한다. 자신감도 생겼다. 누구보다 일을 잘 할 자신감이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 낙선 후엔 가끔 서러울 때도, 외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일할 기회가 주어져서, 열심히 한 뒤에 ‘강요식이 정말 정치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 모든 것이 보상받을 것만 같다. 하하.”
-다음 도전을 위한 준비가 많이 돼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준비는 당연하다. 그보다도 구로구의 정치 환경에 주목해야 한다. 십 수 년 간 구로는 여전히 낙후된 도시 이미지로 그대로 남아있다.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현안도 산적해 있다. 나는 이게 정치인 때문이라고 본다. 구로를 자신의 출세의 발판으로 삼아선 안된다. 지역을 위해 ‘올인’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구로구을의 국회의원들을 돌이켜 보자. 15대, 16대엔 의정활동도 연속적으로 하지 못했다. 15대 때 이신행 전 의원이 한광옥 전 의원으로. 16대 장영신 전 의원이 이승철 전 의원으로 바뀌었다. 박영선 의원은 18대에 이어 이번 20대에도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지역구의 운명이 바뀐다. 고기 굽는 불판도 오래 쓰면 타게 돼 있다. 한 번 갈아줘야 한다. 게다가 대통령, 서울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시의원까지 전부 더불어민주당 사람으로 채워졌는데, 얼핏 보면 일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한 쪽 바퀴만 큰 수레처럼 일이 잘 되기 어렵다. 구로구민들은 현명하다. 한 명쯤은 야당 사람이, 그것도 지역에 애착이 많은 이웃이 정치인이 돼야 사는 곳이 잘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으셨을 것으로 믿는다.”
현 문재인 정부를 간략히 평한다면.
“기대와 반대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선거체계가 아닌 촛불혁명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국민들은 좀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안보와 경제가 불안한 이 시점에,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묶는 일에 우선할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노골적인 정치보복에 몰두하면서 국민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진보좌파 세력이 아무리 보수정권을 비판한다고 해도, 오늘날 산업화·민주화·경제발전의 업적을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잘못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는 관대하면서 보수정권엔 편파적 수사를 하고 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댓글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석방됐지 않나.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승줄에 수갑을 찬 일국의 국방장관, 청와대 안보실장을 보면서 북한의 김정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책적으로는 ‘묻지마 원전포기’가 대표적인 실패사례라고 본다. 30%가까이 공정이 진행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얼마나 큰 손실을 봤나. 결국 공사가 재개되어 다행이지만 이 과정에서 얼마나 큰 국론분열이 있었는지를 감안하면 답답하다. 어려운 시대에 문재인 정부가 잘 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있지만, 지금 시점에선 우려가 더 깊다. 자칫 노골적인 정치보복 속 포퓰리즘과 인기영합주의 정책으로만 문재인 정부가 간다면 한 순간에 그동안 우리가 쌓아올린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서다.”
-정치인으로서의 목표를 간단히 들려준다면.
“정치인이 군림하던 시대는 끝났다. 정치는 남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가장 낮은 자세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위치다. 나는 선거 때 잠깐 말로만 하는 ‘머슴’이 아니라 정말로 구로구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총선 때는 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머슴 복장을 직접 하고 나서기도 했지 않나.
나는 정치인으로 오르고 싶은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머슴으로서 실컷 일하고 싶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이 준 신성한 권한을 사익추구에 썼다.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 정말로 헌신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을 내가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내 정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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