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모든 사람들의 체형에 맞춘 인본주의적인 옷”
“대중한테 소외된 옷은 유리장 안에 갇혀 있는 유물”
“패션의 가능성은 무한…한복 세계화 충분히 가능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대부분의 복식(服飾)은 이상적인 몸이 기준이었다. 예쁜 도자기를 빚어내듯 정해진 사이즈에 사람들이 몸을 맞춰야만 했다. 그렇게 중세 서양에서는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였고, 중국에서는 발을 헝겊으로 묶는 전족을 행했다.
그러나 한복은 달랐다. 인체를 존중하며, 개개인의 체형에 맞춰 만들었다. 몸에 달라붙는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와 달리, 여러 겹의 옷을 덧대어 인체미를 숨겨놓은 것 역시 한복만이 가진 아름다움이었다.
이혜미 한복 디자이너는 이러한 한복이 가진 인본주의적 전통을 지켜내는 예술가다. 또한 한복의 고유한 선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세계화를 꿈꾸는 ‘사임당 by 이혜미’의 기업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물어가는 한복 산업의 미래를 위해 정치인을 꿈꾸고 있다.
이혜미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는 13일 종로구에서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복계 금수저가 바라본 ‘한복’
- 한복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나는 한복계의 금수저였다. 시어머니께서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했다. 의식이 깨어계신 어머님 덕분에 무형문화재인 박광훈 침선장의 1호 이수자가 될 수 있었다. 원래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러다 남편과의 연애 기간 동안 시어머니께서 내 재주를 알아보셨다. 시어머니께서 졸업하면 함께 한복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셔서 ‘사임당’을 2대째 물려받아 하고 있다.”
- 한복이 추구하는 내재적 가치는 무엇일까.
“유연성이다. 조선시대 유교 사상으로 틀에 갇힌 민족이란 시각도 있지만, 복식 문화를 보면 유연성을 중시했다. 한복은 형태가 정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뚱뚱한 사람에게도 마른 사람한테도 어울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의 체형에 따라 유연하게 옷을 만들었다. 서양의 복식은 도자기처럼 가장 예쁜 형태의 옷을 빚어놓고, 사람들이 44~77 등 사이즈에 몸을 맞추는 형태다. 하지만 한복은 개개인의 체형에 맞춘 인본주의적인 옷이다.”
- 어떻게 모든 체형에 맞추는 게 가능한가.
“주름 하나면 가능하다. 직선으로 자른 천을 이은 게 한복이다. 남은 부분은 주름으로 잡고, 모자란 부분은 천을 덧대어 크게 만드는 방식이다. 따라서 풍만한 체형은 주름의 양을 줄여 퍼지는 양을 줄이면, 날씬하게 보일 수 있다. 반면에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은 치마 폭 수를 줄이고 주름의 양을 늘려 풍만하게 표현할 수 있다.”
- 한국의 한복, 중국의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세 국가의 전통 의상을 비교한다면.
“치파오와 기모노는 직선적인 옷이지만, 한복은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옷이다. 한복을 만들 때 천을 직선으로 자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직선으로 자른 옷을 인체에 두르면, 자연스럽게 곡선이 나온다. 사람 인체가 곡선이기 때문이다. 또 기모노나 치파오, 혹은 베트남의 아오자이도 몸 선을 강조하는 형태다. 하지만 한복은 7겹의 속옷을 껴입어 그 안에 인체미를 숨겨 놓는다.”
- 중국은 동북공정 일환으로 한복을 ‘한푸’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 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역사는 교수들이 지식적인 바탕으로 대응하고, 나처럼 실무에 있는 사람들은 한복의 흐름에 따른 분명한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듯 지식과 실무를 융합해 대응하는 TF팀이 구성돼야 한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한복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한복이란 단어만으로는 등재가 어려워, ‘한복 입는 법’ 혹은 ‘한복 체험’으로 준비 중이다.”
- 한복의 변화 과정에서 ‘중국풍·일본풍과 같아진다’는 비판을 어떻게 보나.
“변형과 변화는 다르다. 문화는 변화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변형돼 존재하게 된다. 변형과 변화를 구분하는 것은 지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한국사 및 복식사 수업이 필수라고 본다.”
유리장에 갇힌 한복을 넘어서
매년 10월 21일은 ‘한복의 날’이다. 올해 한복문화주간(10월 11~17일)에는 김부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한복을 입고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이혜미 디자이너는 당시 여성 국무위원들의 한복을 책임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코로나 시국에 ‘비싼’ 한복을 입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 국무회의에서의 논란은 한편으론 ‘한복은 비싸다’는 국민들의 정서를 보여준 것 같다.
“늘 고민하는 지점이다. 대중한테 소외된 옷은 유리장 안에 갇혀 있는 옷이다. 그건 유물이지 옷이 아니다. 옷은 분명한 쓰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복이 싸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다. 명품은 아무리 비싸도 몇 시간씩 줄서서 사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한복이 꼭 저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란 생각도 한다. 장관들이 국무회의에서 입는 정장 한 벌이 얼마인지를 생각하면, 한복이 그렇게 비싸지만은 않다.”
- 그렇다면 한복에 대한 국민들의 가장 큰 장벽은 ‘가격’인가.
“아니다, 인식이다. 인식이 좋다면 비싸도 산다. 결국 고민 끝에 두 번째 브랜드를 냈다. ‘사임당 by 이혜미’가 어머니의 업적을 이어가는 고가 브랜드라면, ‘혜미’는 대중 친화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브랜드다. 젊은 사람들에게 민속복을 넘어 패션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여러 한복 브랜드 가운데 ‘사임당 by 이혜미’만이 가진 특색은.
“품격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늘 ‘작품처럼 만들어 상품으로 팔아라’고 말씀하셨다. 한복을 입는 자리는 중요한 순간에 아름답게 나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격을 중시한다.”
- 지금까지 한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4년 신한복 프로젝트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복진흥센터와 한복의 일상화를 꿈꾸며 했던 프로젝트다. 이 작업으로 한복이 대중화의 길을 걷는데 초석이 됐다.”
- 한복의 세계화는 가능할까. 키가 크고 체형이 다른 서양인은 맵시가 나기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재 한복은 조선시대 후기의 형태다. 흔히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풍속화에 나오는 시대의 옷이다. 이는 이성계·이방원 시절의 조선 전기 옷도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조선 후기의 옷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치마와 저고리의 비율이 지금과 같을 필요도, 꼭 치마만 입을 필요도 없다. 고구려 때는 바지가 기본이었다. 이렇듯 사고의 틀을 깨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패션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패션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한복 디자이너 출신 국회의원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한복 디자이너 출신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국회의원 중에 한복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밖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한복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거나 제정되지 못했다. 국회의원이 되서 한복법을 통과시켜 한복 종사자들의 복지와 후생을 챙기고 싶다.”
한복법은 민주화 이후 세 차례 발의됐다. 제19대 국회에서 김기현 의원의 ‘한복 진흥에 관한 법률안’과 강은희 전 의원의 ‘한복문화 진흥 및 한복산업 발전에 관한 법률안’, 제20대 국회에서 이은재 전 의원의 ‘한복문화산업 진흥법안’이 제안됐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21대 국회에서는 임오경 의원이 지난 달 ‘한복문화산업 진흥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 한복법에 담고 싶은 내용은.
“한복 산업을 증진시킬 한복산업법이다. 지금까지 체육인 출신 국회의원은 많이 나왔다. 이번 국회에서 그나마 문체부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국회의원은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임오경 의원이다. 지난 국회에서는 바둑기사 출신 조훈현 전 의원이 있었기 때문에 바둑진흥법이 통과됐다. 같은 시기 한복법도 함께 논의됐지만, 통과가 안 됐다. 그걸 보면서 한복인 국회의원이 나와야지만 한복법이 통과되겠다고 느꼈다.”
- 한복법이 아닌 한복산업법인 이유는.
“돈이 돼야 한복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사명감만 갖고 일하나. 포괄적인 한복법이 아닌 산업법을 제정해야, 미래에 한복이 계승될 수 있다.”
- 한복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나.
“2대는 꽤 있지만 3대가 이어간 한복 사업은 드물다. 왜냐하면 1세대 때는 한복으로 돈을 좀 벌었지만, 2세대인 우리 세대부터는 돈을 벌기 힘든 구조가 됐다. 요즘은 혼수 품목 중에서 가장 안 하고 싶은 품목 1위가 한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3대 자식에겐 돈 안 되는 한복 산업을 물려주기 힘들어졌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복에 잣대를 들이밀지 말고, 애정으로 예쁘게 바라봤으면 한다. 내 자식도 다른 자식하고 비교하다 보면 부족한 부분만 보이지 않나. 내 자식이니까, 한복이 우리 옷이니까 마냥 예뻐해 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도 예쁘게 바라봐주면 예쁜 모습만 보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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