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밤에 [일상스케치(56)]
스크롤 이동 상태바
시월의 마지막 밤에 [일상스케치(56)]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10.16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계절, 감성적 음악과 친구가 되어
여러분의 가을 플레이리스트 1위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추억은 영원한 것

가을의 문턱에 들며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이 즈음이면 어김없이 이브 몽탕의 ‘고엽(Les Feuilles Mortes)’이 떠오른다. 떨어진 잎새의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연일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내 맘이 아릴 정도로 먹먹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잠시나마 20대로 돌아가 그 시절을 회상케 된다. 뭔가 아련하고 아득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추억이 아른거린다. 다만 청춘시절 막연하게 감상하던 풋풋한 정서에 반해, 인생의 가을에 듣는 고엽은 또 다른 진한 감흥, 애잔함을 불러 일으킨다.

'고엽'은 한때 에디트 피아프와 연인이었던 이브 몽땅의 사랑에 관한 회고록이다. 늦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지나간 사랑의 추억과 회한을 담고 있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중저음 그의 목소리에 실려 청자들은 무언가에 홀리듯 가을의 애수 띤 낭만과 그리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붉은 단풍이 깊어가는 계절을 실감케 한다. 떠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고 고독이 날을 세운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붉은 단풍이 깊어가는 계절을 실감케 한다. 떠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고 고독이 날을 세운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잊혀진 계절

그런데, 도전장이라도 내민 듯 사랑과 이별을 담은 가수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1982년에 발표돼 공전의 기록을 세우며 새로운 가요사를 썼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를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가요~.'

이브 몽땅의 '고엽'은 빅 히트에 보이스 칼라가 크게 한몫을 했다면, 잊혀진 계절은 노랫말이 인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엔 시인이자 작사가 박건호(1949~2007)의 시적 감성이 유독 돋보인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가사가 많지만, '시월의 마지막 밤' 이 구절은 깊어가는 가을 사랑의 쓸쓸함을 표현함에 독보적이다. 그런고로 시월의 마지막 날엔 의미 있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마저 든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뭐 하세요?"

사람들은 이 노래에 빗대어 이 날 '뭘 해야 할까'하고 즐거운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바쁜 일상에 파묻혀 허우적댄다면 그냥 그날이 그날처럼 지나가겠지만, 잠시 가을을 곱씹을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뭐하세요?" 하는 질문도 이 노래 덕에 특별한 날이 되어 주고받는다.

물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밤새워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거나 할지 모른다. 아니면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나누거나 또는 깊어가는 가을에 편지를 쓰거나 하며 이 가사에 편성하여 새 추억 한장을 그려도 좋겠다.

그러면 어느 해 시월의 마지막 날은 의미있는 추억이 되고 이렇듯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붉은 단풍 그리고 뒹구는 낙엽과 함께 사람들은 더욱 가을에 물들고 누구라도 시인이 될 것이다.

인생 3막의 10월엔

이제 황혼에 ‘시월의 마지막 밤’이 다시 돌아온다. 또 한 번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언제까지 시월의 마지막 밤을 맞을 수 있을 지. 덧없는 세월의 무상함과 애상이 가슴 저민다. 떠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고 고독이 날을 세운다.

그럼에도 1년 중 가장 좋은 날이 이날, 이때쯤이지 싶다. 가을의 풍요로움을 충분히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 계절이 가고 새 계절이 오지만 가을은 그만큼 특별하다.

한 해의 마지막 계절로 가는 길목 시월의 끄트머리. 서럽지만 아름다운 이별, 남은 날들에 대한 마무리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애달파만 하기엔 인생이 무척 짧다. 슬픈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적시에 빠져나와 차분히 삶을 정리해 본다.

이 가을 단풍만큼 사색이 깊어가면 우리 모두 철학자가 된다. 그럴 땐 구수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쇼팽의 잔잔한 '녹턴'을 감상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또한 시월의 갖가지 상념에 밤잠을 설치느라 찾는 수면제. 대신 '베토벤의 로망스 2번 F 장조'의 바이올린 선율에 취해 잠들어도 탁월한 선택이지 싶다.

그 어느 해 보다도 다사다난했던 2022년의 시월. 이제 머잖아 그 마지막 밤을 남겨두고 있다. 앞서간다 하겠지만 내년 시월의 마지막 날엔 어떤 얼굴을 하고 우릴 기다릴까. 무엇이 반길지 기대해도 좋을까.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염원해 본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