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파행 - 민심 경고 안들리나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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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파행 - 민심 경고 안들리나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3.0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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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쇄신 없는 여야 공천
컷오프 한명도 없고 돌려막기하는 국민의힘
내전으로 치닫는 민주당 내홍
위험 수위 넘어 선 ‘이재명표 사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지난해 12월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실로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실로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 공천이 파행이다. 국민 시선은 싸늘하다. 4·10 총선 후보자 공천과 관련해 여당 국민의힘과 제1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몹시도 볼썽사납다. 총선 공천 인사를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다. 양당 모두 새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친명계 공천 내분을 겪는 더불어민주당이 더 큰 비판을 받지만 국민의힘도 정치 신인 등장에 인색하다는 점에서 속으로는 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모른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강조하는 ‘과감한 혁신’을 보여 주지 못한다. 공천 작업이 70% 이상 이뤄진 지금까지 컷오프된 현역 지역구 의원은 한 명도 없고, 대통령실 출신과 ‘윤핵관’ 인사 상당수가 낙점을 받았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돌려막기’도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선거구 공천을 축구 선수 포지션 바꾸듯 돌려막기로만 해결하는 건 문제다. 무엇보다 해당 선거구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역 일꾼으로 애써 뽑아놓은 인물을 아무 설명 없이 옆 동네로 돌려놓는다면 표를 행사했던 유권자로선 당혹스러울 뿐이다. 후보도 마찬가지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현안들이 원점에서 다시 리셋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자신의 선거구를 위해 임기 내내 헌신할 수 있는 풍토가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 예전엔 당적을 수시로 바꾸는 정치인을 ‘철새’라 했지만 이대로라면 선거구가 수시로 바뀌는 신종 철새가 양산된다.

10년 넘게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토머스 오닐은 “모든 정치는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중앙정치에서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의 기본 덕목은 지역을 잘 알고 촘촘하게 챙길 수 있는 능력이란 얘기다. 공천의 기본이다.

민주당 공천 잡음 위험수위

민주당에선 비명-친명 사이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으며 공천에 난맥상을 보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 안팎의 불공정 논란에도 오불관언이다. 양당이 공히 내세우는 ‘투명 공천’이나 ‘시스템 공천’은 헛구호에 그친다. 이러고서도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하니, 탄식만 나올 따름이다.

4·10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민주당의 공천 잡음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친문(친 문재인)·비명(비 이재명)계 현역 의원이 쏙 빠진 정체불명의 여론조사에서 근거가 없는 의원 평가, 친명계 의원의 단수공천, 비명계 의원의 공천 탈락까지 바람 잘 날이 없다. 공천 과정에서 나타난 행태를 보면 이게 과연 공당의 공천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공천 갈등은 당원 불신을 넘어 국민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으로 앞선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는 공천 잡음에 따른 일시적 지지율 하락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당을 친명 중심으로 물갈이하더라도 공천 시기만 지나친다면 총선에서 정권심판 여론이 민주당으로 결집될 것이라는 인식이 엿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공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면 이미 민주당을 떠난 민심이 총선에서 돌아온다고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공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재명 대표 리더십 부재에 따른 결과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엄존한 상황인데 검찰 기소 등을 이유로 현역의원을 컷오프하는 것은 내로남불일 수밖에 없다. 친명 김성환 의원은 현역 하위평가 통보가 비명에 집중된 것에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이 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원들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실토한 것과 다름없다.

민주당, 선동꾼들에 국회 진출 길

그 뿐 아니다. 4·10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자력으로 당선되기 힘든 반미·종북·괴담 세력과 선동꾼들에게 국회 진출 길을 열어주었다. 진보당, 새진보연합과 함께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어 그들 중 10명을 당선 안정권에 배치한 것이다. 진보당은 강령에 한미동맹 해체,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중립적 통일국가를 내세우고 있는 정당이다. 민주당이 이런 세력에 국회 진입로를 터주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가중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관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동선을 모색하는 제도다. 그러나 명백히 시대착오적이고 반대한민국적인 좌파, 수구 운동권 세력을 국회의원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라고 볼 수는 없다. 이번 총선에서 반대한민국 세력, 시대착오적 세력, 종북 세력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정치인들을 수혈해 우리나라가 다시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총선 때마다 공천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4년 전 총선에선 민주당에 이런 ‘사당화’ 논란은 없었다. 당시도 하위 20% 통보가 있었지만, 이해찬 당시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하고 사심을 스스로 제거했다. 그래서 반발의 강도가 크지 않았다. 반면에 지금 많은 이가 ‘이재명 사천’이라 혹평하는 결정적 이유는 이 대표의 헌신·희생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이 “왜 이 대표는 놔두고 나만 문제 삼느냐”고 주장할 때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당이 둘로 쪼개질 현 위기를 극복하려면 ‘비명’에만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이 대표는 물론 친명 핵심들도 대거 불출마를 선언해 스스로 희생하고 당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나도 허위보고에 속았다”는 전직 당 선거관리위원장의 폭로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급격히 돌아서는 민심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붙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자고로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선거에 이긴 사례는 드물다.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이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갈등을 빚다가 새누리당에게 과반 의석을 내줬고,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옥새파동'으로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1당 자리를 뺏겼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이재명표 사천' 논란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회혁신 이끌 정치신인 등용에 역점을

국민의힘은 공천 잡음이 적은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현역 탈락자가 없으니 겉으로만 조용하게 보일 뿐이다. 국민의힘은 당초 하위 10%에 대해 컷오프하기로 했지만, 재배치 요청에 응하면 공천을 주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 때문에 김해을 등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인적 쇄신 약속이 무색해졌다. ‘윤핵관’ 불출마는 장제원 의원 한 명에 그쳤고, 지역구 현역 교체율도 역대 최저다. 부산의 경우 4명이 교체됐지만, 강제 교체가 아니라 당사자의 불출마 선언과 지역구 조정의 결과일 뿐이다. 상당수 친윤 인사들이 단수공천을 받은 것도 국민 기대치에는 맞지 않는 모습이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공천이 능사가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킬 새 인물을 발굴하는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제 발표된 19개 지역 경선 결과에서 현역 의원들이 전원 승리하고, 지금까지 확정된 전국 지역구에서 컷오프(공천배제)된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는 현실은 ‘현역 횡재’, ‘신인 횡사’라는 역비판을 낳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역대 물갈이 비율인 40%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현역 의원들의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과감한 인적 쇄신 없이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공천은 국회 일꾼을 뽑기 위한 첫 과정이다. 정당이 우수한 인재를 걸러내지 못하면 국민이 제아무리 참신한 인물에게 표를 주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양당은 국민들의 정치 쇄신 기대에 부응해 자기들 후보가 변화에 적합한 인재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혁신을 이끌 정치 신인 등용에도 관심을 더 쏟아야 한다.

정치권 속설로 ‘무난하게 공천하면 무난하게 진다’는 말이 있다. 여당 험지인 서울 서대문갑에 단수 공천된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이 “국민에게 더 어필하려면 감동을 주는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이번 총선이 ‘정권 중간 심판’이라는 여론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민주당 지도부는 공천만 마무리되면 ‘정권 심판’ 여론 확산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이 전열을 재정비하면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유권자 선택을 받겠다는 국민의힘이 오히려 수세에 몰릴 수 있다.

공천 대란의 여야 사정으로 임시국회는 아까운 시일만 보내고 있다. 다급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특별법 제정도 중대재해처벌법 정상화도 본회의 때까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토록 요란한 공천 대란으로 내놓을 여야의 본 선거 출전 진용이 과연 어떨 것인가. 여야는 지금이라도 미래를 준비하고, 경제를 살릴 새 인물을 최대한 많이 내보이며 유권자의 한 표를 호소하기 바란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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