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다다른 ‘선의 없는’ 민주주의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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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다다른 ‘선의 없는’ 민주주의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6.30 0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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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마저 각자의 이익만 추구…미래 세대를 위한 고민 없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인들마저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면서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연합뉴스
정치인들마저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면서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연합뉴스

우리는 민주주의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생각합니다. 개념 자체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체제’라는 의미니 민주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인지 민주주의의 ‘한계’라는 문장은 참으로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자식이라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말을 비판하는 느낌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정치권을 보면 ‘과연 민주주의는 이대로 괜찮을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독재나 전체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 작동되고 있는 민주주의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들 인정하다시피, 민주주의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현재에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눈앞의 이익에 반응합니다. 먼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당장 내가 가져올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잘못된 행동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감정, 그야말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죠.

하지만 모두가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공동체는 몰락하게 됩니다.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적했듯이, ‘모두에게 개방된 목초지가 있다면 목동들이 자신의 사유지는 보전하고 이 목초지에만 소를 방목해 곧 황폐해지고 말 것’이니까요.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는 누구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이제 갓 태어난, 혹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 역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겁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개방된 목초지를 관리하자고 설득하고, 때로는 강제력을 통해 보호해왔던 거죠.

지금껏 이 역할을 맡아왔던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입니다. 이들은 현재를 어느 정도 희생하자고 설득하고, 공유지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제를 만들어왔죠. ‘표’를 위해서는 투표권을 가진 현 세대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게 ‘정치인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선의(善意)’로 작동해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치에서 이 ‘선의’가 사라졌습니다.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도 실종됐습니다. 그 자리는 ‘합리적인 선택’이 메웠습니다. 개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에 제한을 가하고 미래를 생각해야 할 정치인들마저 합리적인 선택에 매몰되다 보니 사회는 오로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익에만 충실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그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기후변화는 사기(hoax)’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반기를 들고 화석에너지 개발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내걸었습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위해 미래 세대 삶의 터전을 황폐화하자는 제안을 거리낌 없이 했던 거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21대 국회가 ‘국민연금 개혁 방안’이라고 내놓은 안은 모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모두 더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돌려받지는 못할 상황에 놓인 미래 세대를 위해 연금 개혁을 시작했는데, 정작 정치권은 ‘미래 세대가 더 내고 현 세대가 더 받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야 모두 방향성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체 왜 정치판에서 ‘선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오로지 정치인 개인의 욕심이 채운 건지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극단적 이념 대립으로 정치판이 ‘싸움판’으로 전락하다 보니 선의를 가진 사람들은 아예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퍼지면서 정치인들마저도 공공선(公共善)보다는 개인의 욕망을 향해 폭주하게 됐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확실한 건, ‘선의 없는 민주주의’는 결코 지속돼선 안 된다는 겁니다. 미래 세대에게 모든 빚을 떠넘기고 현 세대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태도는 머지않아 거센 역풍에 부딪힐 테니까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대 충돌’ 말이죠. 더 늦기 전에, 선의 없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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