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승연 교수 “유지보다 부채 구조조정 선택할 때”
“개인 파산은 금융 아니라 복지로 해결해야” 조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정부가 금융부채에 대해 책임감 있는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원승연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진행된 제112회 동반성장포럼 ‘금융부채의 명과 암: 한국의 부채구조를 중심으로’ 강연에서 이처럼 말했다.
이날 원 교수는 금융시장에서 가계 및 부동산 관련 대출 대비 제조업 향 대출 비중이 높은 구조가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후자가 회수 가능성이 높을 뿐더러 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돼서다.
원 교수는 “1997년도 외환위기 때 우리가 제조업 중심으로 대출을 많이 해줬다. 금융위기로 이어지긴 했지만, 10년 후 중국 시장이 커질 때 우리가 기회를 잡는 계기도 됐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국내 시장은 건강한 구조와는 정반대란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예금은행의 대출 구조는 가계 및 부동산 관련 대출 60%, 제조업 대출 25% 수준을 유지해왔다.
제조업 대출 역시 문제는 있단 지적이다. 상환 능력이 없는 기업에 대한 대출이 늘어서다. 이들 기업은 파산하지 않지만, 새로운 투자도 하지 않는다. 실물경제는 침체될 수밖에 없단 것이다.
원 교수는 “일본이 버블 이후 ‘좀비 기업’이 나올 정도로 기업 구제를 많이 해줬다. 파산을 미루면서 GDP가 오르기를 기다린 것”이라며 “결국 GDP가 오르긴 했지만, 일본은 그때까지 30년이 걸렸다. 당장 지금을 사는 사람들 더러 어떻게 30년을 버티라고 하나”라고 짚어냈다.
원 교수는 대안으로 부채의 구조조정을 내놨다. 대출을 덜 내주고 내준 대출은 회수에 나서야 한단 것. 대출의 몸집을 줄이면 일시적인 경기하락은 피할 수 없겠지만, GDP 성장을 기다리는 것보단 훨씬 회복이 빠를 수 있단 주장이다.
그는 우려점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간 정부가 금리 상향을 주저한 이유 중 하나는 부동산 가격 유지였다. 금리가 올라가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집을 팔아도 대출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상환이 어려운 대출이 늘면 은행이 파산하는 ‘금융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주택담보대출(LTV)의 대출 비율은 집값의 40% 정도다. 집값이 1억 원이라면, 4000만 원에 대한 대출만 가능한 셈이다. 집값이 살 때보다 반토막이 났더라도 상환에 위험이 생기진 않는 셈이다.
가계 대출 회수 역시 금융위기로 이어지진 않을 거란 분석이다. 전체 부채에서 소득 기준 하위 20%가 보유한 부채는 4% 밖에 안 돼서다. 회수가 어렵더라도 금융 시스템에 영향은 미미함을 의미한다.
소득 하위 20%의 안전한 대출 상환과 부담 경감은 상환 연기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 확보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단 제언도 더했다.
원 교수는 “북유럽이 1990년대 초반 금융위기에도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건 사회보장제도 때문이다. 금융위기로 경제가 안 좋아졌지만, 실업급여를 줬고, 사람들은 파산하지 않을 수 있었다”며 “이런 조치가 있다면 구조조정은 무책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대출 구조조정 역시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개개인의 파산은 복지 부문에서 막아볼 수 있단 것이다. 실제로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 파산 당시, 노키아를 구제하는 대신 구조조정된 사람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마이너스 경제 성장률에서 벗어났다.
그는 이같은 문제 인식과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현 정부가 미진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가했다. 사실상 회피하고 있단 지적이다.
원 교수는 “금융은 회피가 쉽다. 돈을 빌려주면 그로부터 10년 뒤에 갚거나 갚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쯤되면 돈 빌려준 사람이 잘못했는지, 빌린 사람이 잘못했는지 가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 정책에서 정부의 역할 설정도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원승연 교수는 “부동산을 사면 돈 벌거라는 메시지를 주는 건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싸게 거주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다. 정부는 일을 하면 월급이 늘어날 거라고 말하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지, 주식 투자하면 돈 벌거라는 메시지를 주는 건 제 역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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