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유사 이래로 술은 인류와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수많은 문제를 양산해 온 음주의 폐해. 물론 술 한 잔을 기울이며 고달픈 하루를 위로받고 대인관계의 활력소가 될 수는 있으나, 술로 인한 부작용 또한 지대함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걸까. 음주 문화가 언제부턴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고무적인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주당들은 여전히 술과의 밀회를 즐기더라도 어느 한편에서 건강한 음주문화의 물줄기가 형성되어 간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회식 줄고 음주문화 변화…술 출고량 수년째 하락

변화를 증명하듯 주류 출고량이 7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율은 2019년 1.7%에서 2020년 4.8%로 대폭 커졌고 2021년에도 3.6%에 달했다.

주류 출고량이 계속 줄어든 것은 주 5일제·주 52시간제 시행으로 회식이 줄고 음주 문화도 점차 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건강을 중요시하는 웰빙 문화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술 소비도 줄었고 코로나 사태도 큰 영향을 줬다.

이와 더불어 위스키 같은 고가이면서 고도수 술에 대한 선호는 꾸준하지만 건강을 위해 저도수 비어나 막걸리를 찾는 소비자의 선택이 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이런 추세는 주류 소비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층의 흐름이기 때문에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으로 직장이나 모임의 회식 같은 술자리를 통한 과음으로 건강을 해치는 일도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면역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과음보다는 적절한 음주가 선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관련 교통사고 사망률 OECD 국가 중 1위

한편, 위와 같은 흐름을 반기는 데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알코올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2021년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 인한 전체 사망자 수는 4,928명으로, 1일 평균 13.5명이 알코올에 의해 사망하고 있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월간 폭음률은 36개국 중 11위에 해당됐다. 음주와 관련이 큰 간질환 사망률, 알코올 관련 교통사고 사망률(2018년 기준)은 OECD 국가 중 1위다. 알코올 기인 사망률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해 2020년 처음 10만 명 당 10명을 넘었다.

최근에도 음주 운전으로 초등학생이 목숨을 잃고, 크게 다치는 가슴 아픈 사고가 있었다. 이러한 음주 운전으로 인한 인명사고를 위시하여 그 밖에도 뉴스로 접하는 성범죄, 폭력 등의 사건을 보면 음주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음주 운전 처벌 강화

무엇보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음주운전 사고에는 매번 강력한 처벌의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관대한 우리의  술 문화는 사회의 독이 되어 수많은 소중한 인명을 앗아갔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개인적 일탈에서 비롯되었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하는데도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하다면 유사한 음주운전 참사는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하나 사후 약방문 같은 행위자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음주문화에 대한 범시민운동이 절실한 이유다.

음주 후 운전대를 잡는 행태만은 반드시 끊어야 하므로 음주 운전에는 강한 처벌만이 답이라는 인식이 크다. 그런데 음주 운전은 '경찰이 잡는 범죄'만은 아니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시민도 막아서는 범죄'로 자리매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음주 행태의 변화를 위해

한 단체에 따르면 2010년 발표된 음주운전 억제 방안 연구에서 음주 운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폭음이었다. 또한 음주 빈도가 높을수록 음주 운전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서는 음주량과 빈도 등, 음주 그 자체를 직접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음주가 개인의 건강, 그리고 타인과 사회에까지 미치는 폐해가 상당한데, 많은 사람들은 무절제하고 문제가 있는 '개인'을 문제 삼는다. 폭음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사람이 잘못이지, 술 마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논리인 셈이다.

과연 그럴까. 한국에서는 여전히 술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미디어에서 여과 없이 음주 장면을 자주 노출한다. 때라서 그 개인의 음주 행태는 술의 가격이나 마케팅, 술에 대한 접근성과 문화 등 사회적, 제도적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규제가 중요하다.

다행히 바람직한 소비의 변화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중소규모의 주조장의 수가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거기다 정부가 쌀을 비롯한 곡식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술에 대해 기존의 여러 규제를 없애고 지역 특산주나 온라인 판매 같은 정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변화가 이어지며 확대되고 있다.

예전의 음주량이 많던 술자리의 폐해에서 벗어나 같이 자리한 사람과 음식을 나누며 술을 음미하는 방향으로 음주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음을 방증해 주는 지표다. 건강을 포함한 삶의 질에 대한 인식도 성장하면서 변하고 있는 음주문화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고 건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술방'…"가이드라인 필요“

그런데 작용 반작용은 언제나 동행하는 법. 이러한 변화의 한편에는 많은 스타들이 유튜브에 진출하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능하다 보니 '술'을 곁들여 토크를 선보이고 있다. 방송에서 아이돌이 술을 마시며 토크를 한다는 것은 팬들과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전 tvN에서 '인생 술집'이 케이블 처음으로 술과 토크가 곁들여진 프로그램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물론 실제 음주 장면이 포함돼 19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유튜브 술방에서는 연령 제한이 없이 음주 장면이 끊임없이 나오다 보니 미성년자의 시청이 쉽고, 과도한 음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들이 미디어 속 스타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행동을 모방하거나, 사회를 학습하는 것은 성장과정 중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제한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유튜브 음주 콘텐츠는 무분별한 음주 문화나 과도한 음주 소비가 미화되거나 조장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다수 미성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 유해매체물 관련 기준이나 제도적 제재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스타들은 팬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고, 유튜브의 지침과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유튜브에 '음주 콘텐츠'를 도입하기 전에 그들의 행동의 장기적인 영향을 고려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술 의존 증가 우려… 사회적 대책 필요’

갖가지 음주 관련 문제가 많다 보니 지난해 말 대한의사협회와 국립암센터 등 20여 개 단체가 동참한 ‘음주폐해 예방을 위한 범 사회적 네트워크’가 처음 출범했다. 음주문화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대책과 법 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구체적 실천 및 사회운동 전개를 위해서였다.

이 연대를 주도한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해구 이사장(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3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불황으로 국민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해소 방안으로 음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우려가 크다"라며 "지금이야말로 음주폐해 예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전체적인 음주량과 음주 횟수는 분명히 줄었다. 그러면서 강요가 아닌, 개인 취향과 선호에 따라 술 마시는 트렌드가 생겼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지난해 가을부터 일부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서 수 일 만에 과·폭음 사고가 속출하고 '보복 음주'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음주를 대체할 건전한 여가, 스트레스 해소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결국 다시 과거 폭음으로 회귀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술에 관대한 정서를 바꿀 수 없을지에 대해서는 "최근 WHO와 유럽연합 캐나다 등이 한 잔의 술도 암 발생 등 건강에 해롭다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술이 유발하는 다양한 건강과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지만 국민의 실제 인식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선 지속적인 홍보와 캠페인이 따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알코올 폐해 어느 정도일까

음주가 미치는 파장은 사회적 악영향뿐 아니라 심각한 건강의 문제를 야기한다. 흡연이 만병의  근원이라지만 음주 역시 암 등 주요 질병의 원인이다.

알코올은 그 자체로, 또는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통해 간 췌장 뇌 등 인체 장기에 독성 효과를 나타내 암과 간경변 췌장염 알코올성 치매 등을 유발한다.

폭음 시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마비시켜 다양한 주취 범죄로 이어진다. 과음이 반복되면 알코올중독(의존증)에 빠진다. 나아가 가정·성폭력, 음주운전 같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2차적 문제도 심각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음주폐해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나라는 없으나 효과적인 정책을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다. 가령 프랑스는 법으로 모든 술 광고를 금지한다. 미국은 공공장소 음주에 대한 법적 제한이 철저하고 술 광고는 강제하진 않지만 주류 회사의 자율 규제로 아이돌·스포츠 스타의 광고 출연은 차단한다.

음주폐해 예방 정책 어떻게

건강한 음주문화 변화와 병행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음주운전 처벌 법 강화는 당연하고 범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

문제는 국가 음주폐해 예방사업이 복지부 내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정책 우선순위가 너무 낮다고 평가된다. 건강증진사업 중 음주폐해 예방의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력·예산 배정이 1% 밖에 안된다고 한다. 또 정신보건 예산은 4500억 원이지만 중독관리사업 예산은 전체의 1.4%(62억 원)에 그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정 알코올 중독자 중 지역사회 중독관리 센터에서 서비스 받는 사람이 0.5%밖에 안된다는 점이 아쉽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어린이·청소년에 영향을 주는 전방위적 주류 마케팅에 대한 규제와 이에 대항할 국가 차원의 홍보사업 강화다.

이를 위해 정책적으로 음주폐해 예방 예산부터 대폭 증액하는 게 우선 과제다. 또 여타 정신건강 문제의 30% 밖에 되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의 치료 경험률을 높이기 위한 지원 정책도 절실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인 고독사가 늘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된 알코올 중독자라는 점을 예의주시하며 전방위적으로 음주가 미치는 폐해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