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총선, 빅이슈 의존해 얼떨결에 당선된 사례 아닌 자력 ‘주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총선이 끝나면 초선 의원들의 비율도 관심사다. 어떤 배경으로 당선됐는지 따져보는 재미가 있다. 과거 사례와 비교되기도 한다.
‘탄핵 바람’ 108명 초선 당선됐지만…
총선에서 정치 신인들이 무더기로 당선된 적이 있었다. 188명의 초선 의원이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04년 17대 총선 때다.
초선 가운데서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당선자 수는 놀랍다. 전체 초선 188명 중 108명이나 된다. 이렇게나 많이 선출된 배경은 탄핵 역풍 탓이 컸다. 한나라당이 지역구 100석으로 쪼그라드는 동안 열린우리당은 지역구 129석을 단숨에 확보했다. 비례대표도 1위, 23명 당선됐다. 도합 152명. 그중 초선만 108명이었다. 탄핵 역풍의 세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초선 의원들은 의욕에 불타 세력화를 과시하기도 했다. 386 그룹이 만든 ‘새로운 모임’ 등이 대표적이다. 강기정 정성호 노영민 등이 참여했다.
어느 모임은 ‘주한미군 감축’을 내거는 등 다소 과격한 모습을 띄었다.
“김재홍(金在洪) 임종인(林鍾仁) 의원 주도로 1일 낮 국회에서 강창일 김선미 박영선 박찬석 오제세 이목희 정청래 채수찬 최철국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준비위원회를 개최한 초선모임(가칭)도 `태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초선만 참여하는 이 모임은 특히 지난달 예비모임에 참석한 26명 중 대다수가 진보 성향이란 점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이라크 파병 철회 등 보.혁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민감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과감하게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 2004년 6월 1일 연합뉴스 기사 중
이들은 주장하는 바도 제각각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거침없는 언변으로 혼돈을 부채질했다. '콩가루 같다'는 혹평도 받았다. 다음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대부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최규식, 전병헌, 조경태, 신학용, 강기정, 김동철, 강성종, 최재성, 안민석, 조정식, 문학진, 우제창, 이광재, 오제세, 김종률, 김춘진, 주승용, 우윤근, 강창일, 김우남, 김재윤 의원 등 32명에 그쳤다.”
- 2008년 4월 10일 연합뉴스 기사 중
외부 의존 아닌 자력으로 이긴 15대?
눈길을 끄는 것은 초선 비율이 높은 두 번의 총선 모두 더불어민주당이었다는 점이다.
17대에 이어 초선 당선자가 두 번째로 가장 많았던 선거는 문재인 정부 때 치러진 21대 총선이었다. 무려 151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당선돼 ‘코돌이’라고도 불렸다.
17대‧21대 총선에서는 탄핵 반대 열풍, 코로나 시국 등의 헤비급 빅이슈에 편승해 초선들이 무더기로 당선됐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면, 15대 총선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르다. 외부에 의존해 당선된 것이 아닌 자력으로 이겼다고 보는 관점 때문이다.
김영삼(YS) 문민정부 때 실시된 15대 총선에서는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초선이 113명 당선됐다. 수도권에서는 50%에 달한다. 여야 막론하고 초선 바람이 거셌다.
“서울에서는 초선당선자가 전체 선거구 47명 중 22명, 인천은 11명중 7명, 경기는 38명중 19명으로 수도권 당선자중 초선이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육박했다. 신한국당-국민회의-자민련 3당이 골고루 초선당선자를 냈다.
이는 경기지역 선거의 승부가 지역구 활동으로 갈렸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별로는 수도권에서 신한국당이 23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회의는 18명, 자민련은 4명, 무소속 2명, 민주당 1명순이었다.”
-1996년 4월 13일 <조선일보> 기사 중
“15대 총선은 어느 선거보다 많은 이변과 화제를 낳았다. 신한국당 출신의 정치신인이 대거 등장한 것도 하나의 이변으로 꼽히고 있다. 은평을구에서 재야 출신인 이재오 전 민중당 사무총장이 당초 예상을 깨고 국민회의 이원형 후보를 일찌감치 따돌렸고 이우재 전 민중당 총재 역시 2선 의원인 국민회의 이경재 후보에게 낙승. 막판까지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던 신한국당 홍준표 변호사는 두 현역 의원과 변호사 출신인 국민회의 김희완 후보를 꺾고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1996년 4월 12일 <매일경제> 기사 중
“정치신인들의 대거 진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나 과거엔 정변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처럼 신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기성정치의 벽을 뚫고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1996년 4월 13일 <조선일보>기사 중
신인 돌풍의 조건은?
신인 돌풍을 달리 말하면 기존 현역들에 대한 유권자 심판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의 많은 중진 의원들이 대거 탈락한 대신 신인들이 승리를 거둔 예상외의 결과에는 지역구 관리라는 변수가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야권의 분열과 세대교체 바람 등이 야당 중진 의원 대거 탈락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주요 환경은 지역구 관리 소홀히 제공한 셈이다. 중앙정치에 치중하고 지역구 관리에 소홀한 야당 중진 의원들이 대거 탈락한 것은 바로 정치인에게 지역구 관리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총선에서 당선된 인사들과 탈락한 후보들은 ‘평소 지역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고 말하고 있다.”
-1996년 4월 14일 <한겨레> 기사 중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반기에 시행된 22대 총선에서도 지역구 관리를 잘해 험지에서 선택받은 초선이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서울도봉갑 후보다. 민주당 아성에서 친명계(이재명) 후보를 꺾었다. 험지 성공 사례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로 보인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관련해 “지역구 관리를 잘하는 것이 단순히 신인들의 성공 사례를 떠나 험지에서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며 “특히 격전지에서 이제는 민주당의 아성이 돼가고 있는 수도권일수록 국민의힘에서는 지역구 기반을 잘 다져온 후보에게 공천을 줘야 그나마 승산 있는 경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2대 총선에서의 초선은 모두 131명이다. 민주당은 비례 포함해 73, 국민의힘 44, 조국혁신당 11, 개혁신당 3, 새로운미래 1, 진보당 1명이 당선됐다.
초선 비중이 높은 정당일수록 이겨왔다는 속설이 있다. 이번 역시 가장 많은 초선을 둔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된 것으로 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명철 시사칼럼니스트는 “초선들이 당선될 때는 기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커졌을 때 일어나는 반작용과 같다”며 “구태가 아닌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라고 본다. 문제는 김재섭 후보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순 이미지에 그치는 수준에서 또 다른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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