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중징계,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지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진영 기자]
"감독 당국의 징계는 법제처와 법원의 기본입장인 '명확성 원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은행장에 대한 연이은 중징계가 금융권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까 우려스럽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사모펀드 사태에 연루된 금융사 최고경영자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처분에 대해 9일 가한 일침이다. 감독 당국의 잇따른 예측불허의 징계 결정이 금융권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김 회장은 이날 "대표이사를 감독자로 징계하는 감독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데, 은행장이 모든 임직원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실상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징계와 같은 ‘침익적 행정처분’은 금융회사가 충분히 예측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비교적 관련 규정 또는 법규 문언을 충실히 적용해야 한다"면서,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 소통하고 존중하는 감독행정이 이루어져야,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경영활동을 위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라임펀드 판매사인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두 은행의 임원에 중징계를 사전 통보한 바 있다. 라임사태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직무 정지'를 진옥동 신한은행장에 '문책 경고'를 각각 내렸다.
지난달 25일엔엔 두 은행의 제재 수위를 정하는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렸다. 당시 우리은행은 라임 펀드 부실 여부를 사전에 인지했는지와 은행이 부당하게 판매를 권유했는지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신한은행의 경우, 내부통제 부실로 최고경영자에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를 따졌다. 이날 제재심은 결론을 내지 못했으며, 이달 18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모호한 징계 기준으로 금융사에 과도한 책임 전가?
금감원이 사모펀드 관련 금융사 CEO에 중징계 처분을 내린 근거는 '내부통제 미흡'이다. 그런데 '내부통제 미흡'이라는 징계 기준은 광범위하고 모호하다는 의견이 있다. 은행장이 모든 행위를 관리감독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징계의 법적 근거가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광수 회장의 지적은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 김 회장이 지적한대로 금감원의 CEO 징계는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다 보니 법률적 입장과는 거리가 있다. 법원은 지난해 손 회장이 DLF 사태 후 금감원의 중징계에 대해 제기한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금융사 임원에 대한 중징계 조치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사유만 제시해 구체적·개별적 기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금감원 제재의 법적 근거를 다퉈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한 징계 수준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가 확실치 않아 명백하게 형평성에 맞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다. 금감원이 DLF사태 당시 제재 근거로 삼은 법 조항인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는 금융사의 내부통제 의무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를 어겼을 경우, 누구에게 어떤 제재를 내려야할 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다.
또한 아울러 명확한 기준이나 체계가 확립되기 전에 생긴 문제로 CEO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는 시선도 있다. 현재 은행권에서는 사모펀드 사태 후 재발 방지를 위한 소비자 보호 노력을 하고 있는데, 금감원과 함께 금융상품 판매 시 이사회에 보고해야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내부 통제 모범 규준'을 제정해 시행하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모펀드 사태 이전에는 은행장, 이사회 등에 보고하는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사태의 책임을 물어 은행장에 중징계를 내리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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