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아동에게 도장 만들어주는 활동, 가장 보람차”
“손 글씨, 마음 순화에 도움…좋은 글 쓰는 습관 들였으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흔히 주류경제학으로 불리는 신고전파경제학은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이기적 인간)라고 가정한다.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언제나 이기적이며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모두가 ‘현명하게’ 판단하고 선택할 때, 사회 전체의 효용이 극대화된다는 것이 이들의 대전제다.
하지만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했다면, 인류의 번영과 존속이 가능했을 리 없다. 비합리적일지언정, 측은지심(惻隱之心)만으로 타인을 돕는 데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지탱해온 또 하나의 축이다. <시사오늘>이 3월 8일 경기도 하남시 현대지식산업센터에서 만난 김두연 (주)디귿 대표도 그런 사람이다.
김두연 대표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손 글씨를 이용해 구현하는 시각 예술)’ 작가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는 또 다른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사회적기업’ (주)디귿 대표. 캘리그래피 작가가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
-캘리그래피 작가가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느 날 제가 어릴 때부터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되돌아봤더니, 지금 제 모습은 당연한 결과더라고요. 저는 글씨 쓰는 걸 좋아했어요. 그나마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도 이거였고요. 하하. 그렇게 대학에서도 서예를 전공하고 졸업한 뒤에도 나름대로 ‘잘 나가는’ 작가가 됐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제가 가르친 제자들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더라고요. 서예를 전공한 제자들이 방송국에서 일하고 수학 강사로 일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자들을 모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우리가 전공을 살리면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사회적기업 창업이었어요.”
-영리기업을 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사회적기업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잘 살면 좋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다른 분들처럼 세상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원대한 포부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고요. 하하. 글씨 쓰는 걸 좋아하는데, 이걸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잘 살 수 있게 되면 그것보다 행복한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다문화 여성들에게 수제 도장을 만들어드리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예전에는 다문화 여성들이 도장 쓸 일이 정말 많았는데, 도장을 만드는 비용이 비쌌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문화 여성들은 이름이 일곱 글자 여덟 글자 되거든요.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고 도장 모양도 예쁘지 않죠. 그래서 저희가 무료로 도장을 파서 드리면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지나가는 분들 중에 다문화 여성이 계시면 붙잡고 ‘도장 새겨드릴게요’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접근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사회 공헌에도 절차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회복지관 다문화센터에 가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설명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우리도 단체가 돼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사회적기업을 시작했죠.”
-봉사활동단체와 사회적기업의 차이는 뭔가요.
“저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기업은 영리기업이고요. 봉사활동단체는 비영리단체죠. 사회적기업은 그 중간에 있다고 보시면 돼요.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사회 공헌을 해야 하는 게 영리기업이나 봉사활동단체와 다르죠.”
-영리 추구와 사회 공헌을 다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정말 힘들어요. 사업을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수익을 내기도 힘든데 그 수익금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저처럼 시작부터 사회적기업을 창업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업을 하시다가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디귿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하남시에 들어오시다 보면 ‘빛나는 하남’이라는 슬로건이 있어요. 그게 저희가 만든 거고요. 평창동계올림픽 4인승 봅슬레이 위에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있었잖아요. 그것도 저희가 쓴 거예요. 그 밖에도 하남시, 인천공항, 군부대 등등 여기저기 많습니다. 하하. 이렇게 캘리그래피나 디자인을 통해서 수익을 내고, 그 수익금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군부대나 요양원, 교도소 같은 곳에 직접 방문해서 캘리그래피를 가르쳐드리기도 하고요. 캘리그래피를 따라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서 그걸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이외에도 여러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많지만,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꼭 하는 대표적인 사업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 가는 아이들에게 도장을 선물 하는 거예요. 해외 입양을 가는 아이들은 한국 이름이 아니라 입양 가는 나라의 이름으로 불리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도장에 새기는 한국 이름의 의미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잖아요. 지난 10년 동안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이 일은 한 번도 빼놓은 적이 없어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희가 처음에 홀트아동복지회에 가서 프로그램 진행을 했거든요. 거기 가면 단발머리를 한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아요. 그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는 거죠. 입양 보내기 전에 저희가 도장에 이름을 새겨주는 거예요. 눈물이 나서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그때부터 꾸준히 입양 나가는 아이들에게 도장을 새겨서 전달하는 활동을 했어요. 그렇게 하던 중에, 거기 있던 고등학교 2학년 아이를 채용하게 됐어요. 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까 소질이 보이더라고요. 사무실 공간을 쪼개서 놀이방을 만들어 놓고, 직원들이랑 같이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같이 했던 거죠. 돌잔치도 하고 그랬어요. 결국 오래 일하지는 못하고 나가서 지금은 자신의 길을 걷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도 연락을 하곤 했어요.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만약에 제가 그때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잖아요. 보람 있었던 기억이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나요.
“꼭 캘리그래피뿐만이 아니라, 글씨를 쓰다 보면 많은 것들이 순화됩니다. 좋은 글을 잠시라도 시간 내어 써보시면, 그 내용이 자기 생각과 머릿속으로 가거든요. 그래서 좋은 글씨 따뜻한 문장의 글씨를 쓰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어요. 본인은 모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뭔가가 바뀌거든요. 이런 작은 일이 쌓이면 세상도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손 글씨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은 바람입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