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이정표 - 왜 YS 민주세력인가 ① 출발과 正義 [이병도의 秘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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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이정표 - 왜 YS 민주세력인가 ① 출발과 正義 [이병도의 秘錄]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6.2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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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YS(김영삼)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투옥과 초산테러 등 온갖 고초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사진은 민주산악회 시절의 YSⓒ김영삼 회고록
YS(김영삼)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투옥과 초산테러 등 온갖 고초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사진은 민주산악회 시절의 YSⓒ김영삼 회고록

정치는 ‘현실’이다. 막연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는 이제 항구적이고도 참된 ‘민족미래’를 위해 승리하는, 위대한 진실의 새 역사를 다시 세워야 한다. 한국 언론은 그 일환이 돼야만 한다. 

필자는 언론인이다. 한국언론은 그 소명을 다해야만 하고, 필자도 이 목숨 다하는 그 날 까지 한겨레 우리민족의 내일과 진정한 번영을 위해 역사적 본분을 다해야 한다. 남북한 동포들과 독자들을 향해 제대로된 글을 써야 하고, 정확하고 올바른 메시지를 던져 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새로운 이 기획물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 한반도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는 ‘통일과 단결’이다. ‘정치’는 남북 분열부터 우선 처방하고, 세계를 향해 다시 솟아오르는 21세기 위대한 ‘통일 한민족 新시대’의 문을 열어 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곧 역사의 부름이며 正義다.

그런데, ‘오늘’ 우리 민족의 냉정한 현실은 어떤가. 가장 중요한 ‘정치’가 과연 어떤 실정에 있으며, 풀어야할 숙제는 무엇인가. 그 실상과 응답을 바로 아는데 해법(解法)의 단서가 도사린다. 새 이정표(里程標)가 서게 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그래서 오늘, 한반도 정치의 미래를 바로 세워 나감에 있어서도, 현대사의 정치를 측정함은 필수적이다. 

한반도 현대사, 국가와 민족 운명을 가름해온 가장 큰 정치세력은 5개가 있었다.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 YS(김영삼), DJ(김대중) 등 5人이 바로 그들 세력의 중심이자 지도자다.

이들의 공(功)과 과(過)는 무엇이며, ‘민족미래’를 위해 어떤 교훈을 남겼는가. 음(陰)과 양(陽)의 강도는 어떤 수준인가.

문제는 역시 정신이다. 정신이 바로 돼야 정치도 경제도 바로된다. 오래 간다. 잘못된 정신의 악습이 결코 되풀이 돼선 안 된다. 항구적인 민족미래의 새 등불은 보장되지 않는다. 새 역사의 지평은 열리지 못한다. 그들의 정신상태를 점검한다.

그렇다면, 첫번째 이승만은 누구인가. 그는 걸출한 항일 독립 운동가이며 자유민주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놓은 주역임은 틀림없으나, 취약한 초대 집권기반의 보완을 위해 곳곳에 친일파를 기용,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정국불안을 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집권 말기에는 흐트러진 지지기반에도 사사오입 개헌까지 강행, 국민적 저항을 유발해 국가를 다시 큰 혼란에 빠뜨렸다. 민족정기이자 나라사랑인 충(忠)에 흠결을 남기고야 말았다. 민족혼에 부족했다.

다음, 김일성은 누구인가. 그는 민족혼에 있어 항일독립투사 활동을 했고 그들 세력이 집권 후 군사·문화·예술 등 분야에서 정신문화 일각에 주체사상의 주목할 만한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오도된 공산주의로 친위세력 집단만 호위호식케 하고, 대다수 인민들의 생활을 도탄과 기아에 허덕이게 함으로써 민족의 근본을 유린했다. 먹고 입을 것이 없어 인민들이 벌거벗은 산을 헤메고, 젖마저 말라버린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밀처내는 ‘비정(悲情)의 모정(母情)’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자신의 신격화 통치에 몰두, 폐쇄된 혁명가극만 노래케 하고 조상제사까지 경시케 함으로써 한민족사상 최악의 수모를 세계만방에 드러내고야 말았다. 

더욱이 그는 6·25란 무력 남침 행위까지 자행, 한민족 한핏줄인 동포들을 집단 살상하고 아직까지도 한반도 전체 정치 뿐 아니라 국민 생활에 치유되지 못하는, 수많은 후유증과 고통을 안겨 줌으로써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기록했다. 그는 민족정기인 ‘홍익인간’과 충효(忠孝)를 정면으로 짓밟았다.

다음, 박정희는 누구인가. 그는 대한민국 선진국 진입의 결정적 교두보와 동력을 제공한 위대한 업적을 기록하긴 했지만, 다시는 이 땅에 ‘군사 쿠데타’의 악습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그의 군사 쿠데타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군사혁명과는 결이 다르다. 이성계는 극심한 혼돈으로 이미 명운을 다한 고려를, 당시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었던 정도전 정몽주 남은 조준 등 대학자들을 앞세워 전면적으로 뒤엎고, 새로운 나라 5백년 조선왕업의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개국혁명을 했다.

박정희의 5·16 군사 쿠테타는 한국경제 도약과 한민족 세계화 가능성에 탄력을 제공하긴 했지만, 집권 후반부 각종 권력부패는 물론 민심과 유리된, 10월유신이란 통치이념 조작과 가혹한 인권탄압을 자행, 국민적 저항을 초래하고 말았고, 마침내 그들 권력집단의 내부 분열과 함께 박정희 본인이 스스로의 ‘총구’에 의해 쓰러져야 하는 비참한 말로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온갖 부작용과 후유증이 분명한 ‘군사쿠데타’ 정치가 앞으로 조국과 민족의 참된 미래비전에 또 되풀이되어서야 될일인가. 그것은 오히려 막아야 한다. 그것도 우리의 민족정기인 ‘홍익인간’과 ‘충(忠)’에 반(反)한다.

다음, DJ는 어떤 실상인가. 그는 대한민국 민주화 투쟁의 한 축을 이끌었고, 북한을 향해서는 햇볓정책을 내걸어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는등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로 비쳐졌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그는 집권기간중 천문학적 국민혈세를 적대국인 북한권력에 퍼부어, 김일성 세력의 남한을 겨냥한 핵무장 등 군비증강에 결정적 탄력을 제공하는 반(反)국가 행위를 저질렀다. 민족 분열의 기반만 심화시켰다. 국민을 속이고 세계를 속였다. 이는 민족사상인 충(忠)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개인적으로 최고 권력의 뒷편에서 국가자금을 특정기업에 몰아주는 특혜를 줬다. 그는 한마디로 세계와 국민을 기만하고 국가안보와 국민자산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지도자다. 그의 머리속에 나라사랑인 충(忠)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 DJ 이들 4人은 항구적인 민족미래의 이정표가 결코 될 수 없다. 하늘과 백성, 그리고 지도자를 하나의 유기체적 몸체로 묶는, 우리의 오랜 전통사상인 ‘한얼’과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YS는 어떤가. 그는 어머니를 김일성 권력이 파견한 무장공비의 총탄에 잃었으면서도 한결같이 통일 한민족 웅비의 시대를 표방하고 갈망, 이를 제대로 실천하려한 지도자였다. 그는 대통령 재임중 한민족 웅비의 대(大)지침을 처음으로 던졌고,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김일성과 민족 장래를 위한 남북정상회담까지 합의, 담판하려 했으나, 회담을 보름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하는 바람에 그 뜻의 첫 보폭을 펴지 못했다.

그러나 역대 지도자중 그의 남다른 현충일 추념사는 그가 얼마나 민족을 사랑했으며, 통일 한민족 시대를 염원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집권후 일제의 한민족 침탈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일거에 폭파해버리는 한편 1980년 이후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이렇게 설파했다

“(현충일)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분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 중심 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21세기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반드시 열어 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다. 정의와 법이 바로 서야 나라의 미래가 올바로 갈 수 있다.”

세계 중심 통일한국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대(大)지침이다. 민족적, 국가적, 역사적 경고다. 국가와 민족이 나아가야할 큰 방향의 지표를 제시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생, 그 극심한 고난과 시련의 바쁜 일상 와중에도 아침마다 경남 거제의 부친에게 전화 문안인사를 올림으로써 민족정기의 한 축인 효(孝)를 스스로 실천하려 했다. 충효(忠孝)를 언제나 깊이 생각했다. 그것은 필자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나라 미래를 향한 YS의 정신과 지조는 실로 건강했다. 그의 민주화 투쟁 진실은 한국 현대사 전체를 관통했다. 젊은 시절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 자유당을 탈당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일생은 순수하고 올곧은 민주화 투쟁 정신으로 점철되었다. 

민주화 투쟁은 인권을 위한 것이다. 인권은 홍익인간 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투옥과 초산테러 등 온갖 고초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가장 일관된 투쟁모습을 보인 지도자였다.

박정희정권에 맞서 부마(釜馬)사태와 군사독재정권 종말을 사실상 이끌어낸 주인공이었고, 전두환 쿠데타 정권을 상대로한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이어 이땅 민주신당 돌풍을 일궈낸 주역이기도 했다. 1990년 3당합당 뒤에는 내각제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군부세력과 치열히 싸워 직선제를 쟁취하면서 문민정부를 창출, 이 땅에 본격적인 민주정치의 막을 올렸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의 군부통치 청산은 그야말로 정확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하나회 군부세력의 뿌리까지 단죄, 군부가 국민주권을 유린하며 다시는 이 땅 정치에 개입할 수 없도록 그 요소 자체를 원천봉쇄 시켰다.

그 뿐 아니다. 해방이후 역대 정권 기간동안 어지러운 부정부패로 얼룩져온 우리 국가사회의 투명화를 위해 그가 결단한 금융실명제는 헌정사상 가장 큰 개혁의 하나로 기록됐다. 금융실명제는 한국이 IT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급성장하던 전산화와 맞물려, 획기적으로 한국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전기(轉機)를 마련했다. 

이렇듯 YS는 향후 한반도 민족미래에 인간과 국력 모든 면에서 건강하고도 선한 빛이자 이정표(里程標)가 될 수 있다. 그는 홍익인간과 충효,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한 전략성에서 모범을 보였다.

이것은 총론(總論)이다. 필자는 앞으로 YS 세력이 왜 민족미래의 지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각론적으로, 초점과 쟁점을 정리 기술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린다. 이 작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이며, 진실의 역사이고 정의(正義)의 길이기도 하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YS 대권전쟁>,<최후의 승자>,<영원한 승부사>,<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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