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한반도 외교전 [이병도의 時代架橋]
스크롤 이동 상태바
숨가쁜 한반도 외교전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4.20 0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中리스크 최소화’ 전환점 삼아라
외교주도권 강화 계기돼야
‘해양세력’ 결속이 한국 미래다
中, 북한 비핵화 건설적 역할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총선 결과에 국민 관심이 쏠린 가운데 숨가쁘게 돌아가는 동북아 안보 상황에 주목해 본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워싱턴 AP=연합뉴스
총선 결과에 국민 관심이 쏠린 가운데 숨가쁘게 돌아가는 동북아 안보 상황에 주목해 본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외교는 ‘소리없는 전쟁’이다. 총선 결과에 국민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동북아 안보 상황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기술 동맹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무기를 공동 개발·생산하고 미군과 자위대를 한 몸처럼 움직이도록 지휘 체제를 바꾼다. 기시다는 북한 김정은과 정상회담도 추진한다.

이에 맞서 중국 공산당 서열 3위인 자오러지가 북한을 방문했다. 2019년 시 주석 방북 이후 중국 최고위급으로 김정은도 만날 것이라고 한다. 벌써 북·중 정상회담설이 나온다. 내달엔 중·러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미·일 동맹 강화에 맞서 중·북·러가 밀착하는 것이다.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면 김정은 정권이 더 대담하게 도발을 시도할 개연성이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 활동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다음 달 종료될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중국까지 북한 비호에 앞장선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근본 대책은 북한 비핵화, 즉 북핵 동결이 아닌 폐기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실행뿐 아니라 중국의 진정한 협력이 필요하다. 중국은 북러와의 결속이 외려 자국의 국익을 해친다는 점을 깨닫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도발을 억지하는 건설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음 달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는 중국의 협조를 구하고 북중러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기회다. 정부는 굳건한 한미 동맹으로 북한의 도발 야욕을 꺾는 동시에 중국이 북한 비핵화의 조력자가 되도록 설득하기 위한 정교한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이처럼 ‘한미일 대 북-중-러’ 소용돌이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내달 말 서울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4년 반 만에 열릴 예정이다. 중국에서 실권 없는 리창 총리가 참석하는 데다 진영 대결을 완화할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지만 꽉 막힌 한중 관계를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준비하는 한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편, 기존의 안보·경제 협력을 넘어 우주 프로젝트에까지 미국과 일본이 밀착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 한국으로선 무엇보다 한·미·일 3국 협력 체제를 한층 공고히 하면서 전통적 ‘해양세력’ 간 결속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중국을 중심으로 북한·러시아의 ‘대륙세력’이 결집력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항해의 자유’는 수출입 물동량의 안전한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다행히 현 정부는 해양세력의 결속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협력을 위한 노력도 다각도로 기울여왔다. 물론 이번 바이든·기시다 회담에서는 반도체·인공지능(AI) 등에서 양자 간 특별한 협력을 논의했다. 우리 정부는 물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산업계가 좀 더 예민하게 미·일의 협력 행보를 주시해야 하는 현실적 이유다.

미일 군사적 동맹 강화와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동북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획기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기시다 정권 입장에선 추락한 자국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포석으로서, 이는 일본과 동맹 수준을 높여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이해와 일치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전화통화에서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해야 한다는 데는 뜻을 같이했으나 대만과 기술전쟁을 둘러싸고 팽팽한 입장차를 재확인했다. 옐런 장관은 리창 총리에게 중국의 전기차·태양광 과잉 생산 문제를 제기했다. 미중간 대화·제재의 투 트렉 전략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4년여간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회의 차기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일정을 3국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회의 시점은 이르면 내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선 북한 핵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문제 등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의장국이니만큼 이번 회의를 우리의 외교 발언권과 주도권을 강화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의장국이 되는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는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들어 대만 문제, 반도체를 비롯한 공급망 재편 문제 등 미·중 간의 갈등 요소는 한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한국, 일본과 이해관계가 맞는 부분에 대해서는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한·중·일 정상회의 공백 기간 동안 한·미·일의 공조가 더욱 탄탄해져 틈을 벌려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미·중 문제는 양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중국에 호응하고 나선 것은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북핵 문제와 북한의 인권문제가 중국의 협조 없인 해결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이 유엔 제재로 곤경에 처한 북한의 ‘뒷배’가 돼주고 있는 현실과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북·러 간 군사협력은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1차 군사정찰 위성 발사에 이어 최근 고체연료 중거리 극초음속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 것은 한국과 주일미군, 괌 미군기지, 그리고 미국 본토를 겨냥한 무력시위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도발 억제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교수립 30년에 걸맞게 한·중 관계가 명실상부한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이어지려면 중국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정부가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등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이뤄진 탈북민 강제북송 조치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해선 안 될 것이다.

지난 4년여 동안 동아시아 정세는 크게 달라졌다. 북한이 러시아에 컨테이너 1만 개 분량의 무기·탄약을 제공한 이후 북·러 군사 밀착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공격 중인 푸틴은 탄약 부족 걱정을 덜었고, 김정은은 러시아 도움으로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는 등 핵 공격 체계를 빠르게 완성하고 있다. 한·일을 넘어 미국까지 직접 위협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금 푸틴이 무기를 보내준 김정은에게 빚을 갚고 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근 러시아가 북한의 안보리 제재 위반을 감시해온 전문가 패널을 없앤 것은 “김정은에 대한 선물”이라고 했다. 북한에 석유 실은 선박도 보내며 안보리 제재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한·중·일 3국은 협력과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관계다. 지금처럼 세계 정세가 극히 불안한 가운데 3국이 협력 대신 충돌을 택한다면 누구에게도 득이 안 된다.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과 한·일의 입장 차가 여전하지만, 러시아의 군사 개입을 반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역 안정은 물론 글로벌 과제 해결을 위해서도 3국 정상 간 대화와 협력이 중요하다. 어려울수록 서로 만나야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