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정치권의 파행이 지연시킨 ‘운동선수보호법’
2020년, 제2의 심석희‧제3의 최숙현, 계속되고 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의 단골 소재는 ‘체육계 폭력‧성폭력’이다. 이는 국감에서 점검한 대응책이 매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올해 문체위 국감 역시 스포츠 4대 악 중 하나인 (성)폭력 문제가 대두됐다.
2018년, 심석희 선수가 국감장에 세운 ‘빙상계 카르텔’
시계를 돌려 2018년 10월 문체위 국감으로 가보자. 2018년은 6년 만에 체육단체만의 국감을 실시한 해였다. 이러한 배경엔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의 용기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 선수촌을 방문하던 날, 심 선수가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독감’ 때문이라고 알려졌으나, 진짜 이유는 ‘폭력’에 있었다. 이를 계기로 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지속적으로 폭력 및 강제추행‧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로 그해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조재범 전 코치가 작성한 옥중 편지에는 “한국체대에 입학하지 않고 연세대로 간 최민정 선수가 실력과 성적이 너무 좋다 보니 전명규 교수님이 한국체대가 더 잘 나가야 되니 시합 때마다 나를 매우 압박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전명규 전 부회장은 조재범 코치에게 실적 압박 및 폭력 종용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전 전 부회장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공개한 녹취 파일 앞에서 “(본인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녹취 파일에는 ‘심석희 선수를 추종하는 이들을 나 이거 못하겠다고, 정신병원에 갈 정도로 압박을 가하라’는 얘기가 담겨있었다.
한편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는 지난해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최종 결심 공판은 16일 오후에 열릴 예정이다.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은 한국체대 교수직에서 파면됐다.
2019년, 정치권의 파행이 지연시킨 ‘운동선수보호법’
2019년 1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민석 문체위원장 및 소속 위원들은 일명 ‘스포츠 미투법’ 혹은 ‘운동선수보호법’을 발의했다. 이들은 “심석희 선수의 용기와 눈물에 이제 국회가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는 △스포츠 지도자의 폭행‧성폭행 예방 의무 교육 △선수 대상 폭행‧성폭행 형 받은 지도자의 영구 자격 박탈 △형 확정 이전, 선수 보호 위해 지도자 자격 무기한 정지 가능 △기존 대한체육회 소속 징계위원회를 ‘스포츠 윤리센터’로 독립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조재범 전 코치는 법적으로 지도자 재취업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통과에 정확히 1년이 걸렸다. 2019년 국회의 파행이 거듭되며, 수많은 법안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안민석 위원장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20대 국회에서는 체육계 구조화된 만연한 폭행과 성폭력을 근절할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리겠다”며 내놓은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렇듯 제20대 국회의 파행은 1년간 쳬육계에 내재된 피해를 키워갔다.
2월에는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이 구성됐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뿐만 아니라 교육부‧문체부‧여성가족부 파견 공무원 등 17명으로, 활동 기간은 1년이었다. 조사단은 스포츠계 현장의 폭력‧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구조적 원인의 해결책 마련을 목표로 삼았다.
한편 이들이 1년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선수들의 신체폭력 경험은 일반 학생들의 1.7배에 달했다. 인권위 특별조사단은 학생선수 6만3211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언어폭력 15.7% △신체폭력 14.7% △성폭력 3.8%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업팀 선수와 대학교 운동선수들의 인권 실태는 더 심각했다. 1251명의 실업팀 선수 조사 결과, △언어폭력 33.9% △신체폭력 15.3% △성폭력 11.4%로 학생 선수들에 비해 훨씬 높았다. 대학교 운동선수들 역시 모두 초‧중‧고 학생 선수보다 2~3배 높은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2020년, 제2의 심석희‧제3의 최숙현은 계속되고 있다
2020년 6월, 또 한 번 체육계에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경주시청팀 소속)는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 선수는 동료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 등으로부터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나이는 스물셋, 1998년생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8월 ‘스포츠 윤리센터’가 출범했다. 기존의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스포츠 비리센터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지원센터와 같은 민원 기관을 통합해 개편된 것이다.
그러나 민원 이관이 여전히 부진한 상태로, 국감에서 스포츠 윤리센터의 실효성이 논란됐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민원 약 20%(16건)만 이관이 결정되고 나머지 79.2%(61건)은 추후 이관여부 검토 또는 자체 종결됐다. 김 의원은 “제2~3의 최숙현 선수와 같은 피해자들이 국가와 정부의 도움을 절실하게 호소하고 있는데, 스포츠윤리센터가 민원을 선별해서 받겠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존의 대한체육회 산하 인권센터가 신고를 받고도 처리하지 않거나, 문제를 일으킨 기관에 직접 조사를 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이 윤리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와 클린스포츠센터가 올해까지 처리하지 않은 사건은 총 37건이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정부와 체육계가 선수 인권 개선을 위해 백화점식 개선방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현장 효용감은 낮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실업팀 선수 응답자 가운데 5명 중 1명은 ‘인권침해가 과거보다 줄지 않았다’, ‘운동선수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인권보호를 위한 충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라는 질문에 긍정 답변은 19.2%에 그친 반면, 부정적 답변은 42.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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