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브라질 프로젝트서 얻은 교훈은?…“길리 협업 큰 기회, 경영개입은 없다”
XM3 HEV, 차별화된 기어박스 시스템·효율성 자랑…한국 5개년 계획도 승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장대한 기자]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회장이 저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한국으로 가라더군요. 처음에는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좌중 웃음) 하지만 회장이 다시 부르더니 한국 시장을 문 닫을 생각이었다면 출구도 없는 곳에 너를 보내겠냐 말하더군요. 굉장히 중요한 시장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자동차 사장은 대한민국 시장으로 발령났을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예상 밖 솔직한, 유머러스한 답변을 내놨다. 덕분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는 지난 3월 1일 르노코리아 신임 대표이사 겸 CEO로 공식 취임했다.
실적 부진과 노사 갈등이 도사린 한국 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실망감이다. 예의상으로라도 "한국 시장 부임을 기대했다. 자신있다" 둘러댈 법도 한데, 비켜가지 않았다. 지나치게 진솔한 답변 때문에 홍보팀은 가슴이 철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취재진 입장에선 드블레즈 사장의 진중하면서도, 격없이 소통하려는 모습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드블레즈 사장은 지난 7일 경기 용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 디자인센터에서 열린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연신 눈을 반짝이며 경영정상화에 대한 성공 자신감을 표했다. 특히 4년간 중국 둥펑-르노에 몸 담았던 경험은 아시아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귀중한 시간으로, 한국 사업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중요 자산이 됐다고 내세웠다.
그는 브라질과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교훈 3가지를 한국 시장에 접목함으로써, 현대자동차·기아에 대적할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스테판 드블레즈 사장은 첫 번째 교훈인 '큰 돌파구를 마련해 큰 기회를 잡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재 르노코리아는 길리 그룹과의 파트너십을 돌파구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드블레즈 사장은 "이번 파트너십으로 소형차에 집중됐던 르노의 경쟁력과 창의성을 대형차 설계가 가능한 볼보 CMA 플랫폼과 결합할 수 있게 됐다"며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이어 "20년을 지속해온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에 처음으로 제3의 파트너를 맞게 됐다"며 "새로운 파트너십이 제공할 탁월한 기술, 볼보 플랫폼, 친환경 파워트레인을 적극 활용해 한국 고객들이 좋아하는 걸 넘어, 사랑하는 차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길리와의 합작 제품은 오는 2024년 출시 예정이다.
그러면서도 길리와의 파트너십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듯, 중국 자본의 경영권 개입 우려에 대해 짚고 넘어갔다. 그는 "길리의 지분 참여를 위한 투자금 납부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향후 길리가 주주가 돼더라도 경영권은 CEO인 저와 르노코리아 이사회 멤버들이 수행한다"며 "길리는 기술과 재무 분야에서의 파트너"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두 번째 교훈으로는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르노코리아의 경우 최근 2년간 경영 악화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한 만큼, 새로운 우수 인력 수혈이 이뤄져야 한다고 드블레즈 사장은 판단하고 있다. 그는 "약 3500명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르노코리아의 탄탄한 토대 위에 르노 그룹 차원의 우수한 인력을 지원받을 것"이라며 "물론 한국에서도 새로운 채용을 진행함으로써 회사 역량을 회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드블레즈 사장은 노사 관계 회복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한국 부임 이후 업무 시간의 30% 이상을 노사 관계 부문에 할애하고 있다"며 "노조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관계 정립은 쌍방이 함께 움직여야 가능하다. 노조가 협의를 잘 해준다면 대표인 저도 더 노력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조금 어려워질 수 있다. 개인적으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며 "확실한 점은 내부에 적이 있는 게 아니라, 경쟁자는 바깥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노사가 힘을 합쳐 현대차·기아와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블레즈 사장이 글로벌 시장에서 얻은 마지막 교훈은 '실패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실패가 가능하기에 게임은 더 재미있어진다. 어려움 없이는 재미도 없다"며 "당장은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다"고 전했다.
르노코리아의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반등 포석을 놓게 될 첫 모델은 연내 출시가 예고된 'XM3 하이브리드'다. 클러치없는 기어박스 시스템 구현을 통해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 간의 출력 밸런스를 맞췄고, 배터리만 키우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유연성, 도심 운행 시 전기 모터로만 75% 이상 운영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갖춘 게 특징이라고 르노코리아는 설명했다.
드블레즈 사장은 XM3 하이브리드 투입이 유럽 시장에 비해 1년 넘게 늦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해당 시장의 요청이 있어야 본사에서 물량을 배정해준다. 하지만 한국(르노코리아)은 XM3 하이브리드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간략히 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르노코리아가 전기차 조에 등에 공을 들였던 상황이라 하이브리드에 대한 수요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드블레즈 사장은 XM3 하이브리드를 시작으로 전동화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 한국 시장이 굉장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르노그룹 경영진은 한국에서 굉장한 걸 해보고 싶어한다. 르노와 길리 모두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원하고 있다"며 "2주 전에는 루카 데 메오 회장에게 한국 시장에 대한 향후 5개년 계획을 보고했고 승인을 받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많지만, 이 계획을 성공시킨다면 매우 큰 투자가 이뤄질 것이고, 큰 성공도 거두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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