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조각 거장 박석원 “다시 태어나도 조각가로 살고 싶다” [이화순의 오늘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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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조각 거장 박석원 “다시 태어나도 조각가로 살고 싶다” [이화순의 오늘의 작가]
  • 이화순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2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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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추상 조각 한길 걸어온 우리 시대 조각가
한지 이용해 치열하고 새로운 한국형 연성조각 구축
‘자연과 인간의 결합’ 꿈꾸는 한국 현대조각계 대표작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이화순 칼럼니스트) 

추상조각가 박석원은 “조각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미학”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박석원

“조각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미학입니다. 자르고 쌓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고 또 증식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에 대해 되묻게 되죠.”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조각가 박석원(81)은 평생 ‘자연’을 가장 큰 스승으로 삼아왔다. 아울러 서구적인 조각에서 자신만의 한국적인 조각 작품을 고민해 왔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작업장에서 만난 그는 60여 년간 만들어 온 대표작들과 한창 진행 중인 한지 ‘적의(積意)’ 연작을 보여주었다. 그가 뚜벅뚜벅 걸어온 한국 현대조각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박석원은 평생 자연의 몸짓, 자연적 본성이 지닌 물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작품세계도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왔다. 60여년간의 작가 생활을 통해 그는 ‘분절’과 ‘결합’이라는 작업 방식을 구축하고 조각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한국 현대조각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세상이 폐허로 뒤덮이는 충격은 정신적인 상실감을 맛보게 했고, 가난과 배고픔이라는 참담한 시절을 겪어내게 했죠. 어느새 혼자 외곬수 같은 성격을 갖게 됐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벗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봄이면 벚꽃이 찬란한 경남 진해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외로움을 달래려 물이 졸졸 흐르는 뒷산 개울가에서 혼자 놀곤했다. 개울을 관찰하거나 그곳 진흙을 파내 찰흙놀이를 하며 사람을 만들고 갖가지 모형도 만드느라 늦게서야 귀가해 어른들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를 조각가로 이끌었다. 

화가 유택렬 씨(1924~1999)에게 고교 시절 잠시 데생을 배운 후 홍익대학에 입학했다. 1960년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한 박석원은 1968년 국전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하였고, 나이 서른에 국전사상 조각분야 최연소 추천작가가 되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제5회 파리비엔날레(1966), 제10회 상파울로비엔날레(1969) 등 국제 무대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은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문신미술관, 김세중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 기관은 물론 파리시립미술관, 후쿠오카시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으로도 그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자름과 쌓음의 끝없는 반복으로 인간과 자연의 교감 형성 

박석원은 물질 절단과 축조의 끝없는 반복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품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한다. 

“작품 재료를 가공해 자연의 모습을 구현해 내는 전통 조각의 관습에서 벗어나, 재료 그대로의 성질에 조형적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죠.”

초기 대표작인 ‘초토(焦土)’에서 ‘적(積)’을 거쳐 ‘적의(積意)’에 이르는 동안 박석원은 자연의 순리처럼 반복적인 작업 생활을 해나갔다. 그가 작품에 적용한 예술 철학은 살아가면서 그가 터득한 삶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쌓음’은 우리네 삶에서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철학대로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계속 축적돼야 잖아요."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조각가로 우뚝 서기까지 박석원은 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온 에너지를 바쳤다.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자보자. 당시 어려웠던 가정 형편이었지만 홍익대학 미술대학에 합격한 첫해 등록금은 어렵사리 마련되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해부터는 학교를 작파해야 할 판이었다. 살 길은 장학생이 되는 길 뿐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 덕분에 교과 성적이나 실습 성적이 동기 중 최고였다. 덕분에 그는 장학금으로 다음 학년을 이어갔고, 결국 졸업까지 그런 노력과 결과는 이어졌다. 

우리네 일상도 마찬가지지만 박석원에게도 ‘반복’은 가장 원초적인 삶의 리듬이다. 마치 종교적인 신앙 행위를 하듯 60여년 반복적인 작업을 계속 해왔다.

작품에서의 반복 작업은 지속적인 세계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고, 연속되는 생성 과정에 물질과 작가의 개입이 더해져 또 다른 관계성을 만들어 낸다. 

"살아가다보면 자신과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나 환경에 놓이게 되잖아요. 작품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에서 '관계성'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어린 시절 한국동란의 아픔을 겪었기에 전쟁의 상처, 전후 폐허에서 비롯된 허무를 철의 물성과 결부시키며 인간의 감정과 재료의 물성을 작업에 담고자 하였죠. "

파괴된 땅을 상징하는 ‘초토(焦土)’(1967)를 철을 이용해 만들었고, 슬픈 우주를 표현한 ‘비우(悲宇)’(1969)는 알루미늄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적의積意 2009-한지의 묵시 162 X 162cm 청색한지 2020 ⓒ 사진제공 = 김세중미술관
박석원 작가의 작품 <적의(積意)>. ⓒ 사진제공 = 김세중미술관

이후 1980년대까지 '적(積)' 연작에서는 인간의 감정보다는, 물체를 절단하여 쌓아 올린다는 의미의 ‘적(積)’, 물질을 절단해 쌓거나 해체하는 ‘분절’의 과정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했다. ‘적(積)’ 시리즈는 자연석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또 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적의(積意)’ 시리즈는 서로 다른 돌과 브론즈 혹은 돌과 철판, 나무와 석고 등 서로 다른 재료들을 쌓아 올려 결합하거나, 잘라내고 재조립하며 분절의 과정에 인간의 감정을 결합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작품엔 자연 재료 본래의 질감과 인위적인 절단면이 공존하게 되는데, 박석원은 남겨진 재료의 흔적마저 작품의 본질로 간주했다. '적의(積意)' 연작에는 재료 본연의 물성과 구성, 인간에 대한 박석원의 오랜 탐구의 결실이 담겨있다. 

한지 이용한 ‘적의(積意)’ 시리즈로 애호가들 감동  

박석원은 서구의 미니멀리즘 속에서 자신만의 해법을 모색하며, 한국적인 색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 왔다. 한국 탑신을 발상으로 하여 현대조형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그는 한국의 석탑에서 돌의 물성은 물론 나아가 한국적인 색을 발견하고자 했다.  

최근에 그는 철이나 화강암을 절단하여 다시 붙이는 축적의 방식을 한지를 사용한 평면 작업으로 확장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한지를 잘라내어 캔버스 위에 붙이는 근래의 작업에서 작가는 화면 위에 한지를 여러 겹으로 중첩해 소재 특유의 질감을 도드라지게 하는가 하면, 기하학적 형상으로 이를 구성하여 순수 추상이 지닌 미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쌓고 쌓이는 내 작업의 ‘적의적’ 의미의 본질은 바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요, 윤회하는 삶과 진실의 은유적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작가는 결국 그는 다양한 재료들이 각각의 특성을 드러내면서도 한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결합을 꿈꾼다. 박석원의 작품 세계가 총체적으로 시사하는 것은 '정신적 본질의 탐구'와 '자연의 몸짓'이다. 

작품 <적의> 앞에 선 박석원 작가. ⓒ 사진제공 = 김세중미술관

조각가 박석원은 1942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고 전북대와 중앙대 교수를 거쳐 1993-2008년 홍익대학교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전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1963)과 국회의장상(1968-69), 김세중조각상(1992), 김수근문화상(1996), 예총예술문화상(2003), 서울시 문화상(2008), 문신미술상(2010) 등을 수상했고, 한국현대조각회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74년 명동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세중미술관 기획초대전 <박석원>展(2022), 가나아트보광 <박석원 개인전_Accumulating Nature>(2023) 등 2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파리비엔날레>(1966), <상파울로 비엔날레>(1969), <AG>展(1970-72), <시드니 비엔날레>(1973), <에꼴 드 서울>展(1975-96), <아시아현대미술제>(1980), <한국과 서구의 전후 추상미술:격정과 표현>(2000), 국제아트심포지움(포르투갈, 2003), 아테네올림픽기념 1차 국제야외조각 심포지엄(그리스, 2004), <물성을 넘어, 여백의 세계를 찾아서>(2015),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2016), <Now and ever>展(2021), <창원조각거장>展(2021) 등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이화순 칼럼니스트는…

에이앤씨미디어 대표이자 아트&미디어연구소 소장, 현대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평창비엔날레 홍보위원장,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홍보위원을 역임했다. 

안산문화재단 이사, 서초문화재단 비상임이사, 음성품바축제 연구위원, 서울교통공사 문화예술철도 자문위원을 지냈다. 

예술경영 석사, 경영학 박사. 스포츠조선 문화경제팀 팀장, 시사뉴스 문화 경제 국장·칼럼니스트로, 아트플래너, 아트컬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로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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