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民山, 회원 수 갈수록 늘어…山 붉게 물들어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나의 정치 50년 史>民山, 회원 수 갈수록 늘어…山 붉게 물들어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1.25 0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민주산악회와 김영삼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민주산악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피임

1984년 봄날 저녁 해가 넘어가 어둑어둑 할 무렵, 여주 나의 부민농장에 전화가 걸려왔다.

“노 선배, 나 장학노입니다. 지금 바로 상도동으로 오셔야 되겠습니다. 총재님께서 노 국장을 지금 상도동으로 오라는 말씀이 있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지금 여주 목장에 와 있는데 무슨 급한 일인지는 몰라도 지금 어두운데 운전을 하고 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밤길 운전이 신경이 쓰여.”

“아마 노 선배한테 무슨 일을 맡기시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 내일 밝은 날 가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을 드려 봐요.” 그랬더니 “그러면 내일 오전에 꼭 오라고 하시니 너무 늦지 말고 오시지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상도동 김영삼 총재 댁을 찾았다. 김 총재는 “노 국장, 이제는 민주산악회 회원들이 매주 목요 산행에 수백 명 씩 참가할 뿐 아니라 먼 지방에서도 참가하는 동지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또 각 시도에서 지방조직을 확대하자는 요구가 많은데 무작정 할 수는 없고 일정한 요강을 만들어 희망하는 사람들을 심사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는데 그 위원장직을 노 국장이 맡아 달라고 오라고 했으니 수고해 주기 바라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정치를 안 할 생각이었고 또 전에 정치를 할 때에도 진산계에서 고흥문계로 이어 오면서 김영삼 계보를 해 본적이 없는데 새로 정당을 만드는 거나 다름없는 민주산악회의 전국조직을 하면서 조직의 핵심인 조직위원장직을 나에게 하라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총재님, 제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제가 어떻게 그 엄청난 일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선배들도 많고 저보다 더 열심인 사람이 많은데 다른 사람을 골라 보시지요.”

“내가 충분히 생각하고 맡기는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고 말씀하셔서 나는 더 고사하지 못하고 그 일을 맡았고 그날을 시작으로 김영삼계의 일원이 되었다.

내가 조직위원장에 임명된 것이, 그날까지 오랫동안 김영삼을 지도자로 모시고 고락을 함께 한 많은 동지들에게는 염치없는 일인 것 같았다. 몇몇 동지들에게는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미안하다는 인사를 해야만 했다.  

내가 김영삼의 권유에 따라 산행에 참가했을 때는 약 20여 명이 산에 올랐고, 김영삼 총재와 정채권 목사가 번갈아 가며 산상기도를 올렸고, 총무와 산행 대장 역할을 정채권 목사가 하고 있었다.

정채권 목사 다음에는 K씨가 총무로 임명되었고, 산행대장 역할은 지금 미국에 가있는 홍사일이 맡았는데, 도중에 총무 K씨가 대기업에 스카우트 되어 박정태가 총무를 맡았다.

산행대장에는 남부군 저자 이우태 전 의원이 맡아 수고를 했는데, 총무 박정태가 등산도중 넘어져 다리를 크게 다쳐서 총무 직을 그만두었는데 그때 전국조직에 들어가면서 집행부를 사무처라 칭하고 그 처장에 김진억을 임명했다. 산행총대장은 이우태가 맡아 수고하고 있을 때였다.         

조직위원수는 위원장을 포함하여 7명이었는데 그 이름은 김덕룡(총재 비서실장), 이우태(산행 총대장), 김진억(사무처장) 노병구 외 3명이 더 있는데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전국 시·군·구 140여 곳에 지부장을 인준

5~6개월 만에 시·군·구 단위로 전국에서 140여개의 지부장을 선정, 인준하고 임명장을 주었다.
민주산악회 회원 수가 갈수록 늘어 어디를 가나 산은 붉게 물들었다. 이쯤 되니 경찰의 조직으로도 산행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때 민주산악회 헌장도 새로 제정하여 산행할 때마다 헌장을 낭독하고 또 산악회가도 만들어 힘차게 합창을 했다.
산악회헌장은 산행총대장 이우태 씨가 문안을 작성해 상임고문 김영삼과 회장의 재가를 얻어 총회에서 통과시켜 채택했다.

민주산악회가 역시 이우태 총대장이 작사를 하고 작곡은 이우태 총대장의 딸 이지혜 씨가 했다고 들었다. 여기 헌장과 민주산악회가를 옮긴다.
               
민주산악회 헌장

『우리는 아름답고 장엄한 조국의 산하를 사랑한다.
이 산하위에 정의롭고 참된 사회와 자유민주주의가 꽃피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물러설 수 없는 염원이며 사명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영원불멸의 진리를 배우며 준엄한 인과의 법칙과 만고의 천리가 거기 엄연함을 보면서 간난과 인고 속에 불굴의 의지를 기르고 스스로 인격도야에 힘쓸 것이다.

우리는 땀과 비바람 속에 다져진 동지애로써 바윗덩이처럼 뭉치어 민주광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며 어떠한 고산준령도 조국의 땅이면 갈 것이요, 민중의 길이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삭풍한설속의 상록수처럼 한없이 푸르를 것이다.』
        1983년 12월 8일
민주산악회
민주산악회 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