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왕국 ⑪ 미화원 순옥의 사정 [이순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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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왕국 ⑪ 미화원 순옥의 사정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7.2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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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새벽 1시 반이 되자 여자들이 밥을 차려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배고픔을 느낀 모양 같았다. 재순은 여전히 먹지도 않고 누워 있다. 나도 재순 옆에 누워서 눈만 지그시 감고 있다. 

오늘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던 감독의 행방이 궁금하던 그때, 여자 미화 방문이 홱 열리면서, “모두 1층 광장으로 집합해!”라는 감독의 호통이 내리쳐졌다.

여자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하듯 우르르 엘리베이터로 모여들었다. 10월 11일의 새벽 밖의 공기는 몹시 차가웠다. 특히, 나는 산후풍 증이 있으므로 일반 사람에 비해 체감 온도가, 6도 이상 차이가 난다. 두꺼운 속내의를 입고 있건만 밖에 나오자마자 속이 덜덜 떨려 나오기 시작한다. 

한참 후에야 나온 감독은 막대기까지 들고 나와서는 미화원들을 때릴 태세로 흔들고 휘저어대며 “야- 이것들아, 일하기 싫으면 지금 그냥 다- 집으로 가버려!”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들도 여자지만 그 틈에 끼어 숨조차 참는 듯한 남자 반장이야말로 속담에 ‘비 맞은 중’ 이라는 비유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감독은 여전히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나는 추위를 참치 못해 안절부절 해야 했다. 더 이상 추위를 견딜 자신이 없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자 신기하게도 감독이 “이것들아, 가서 일-안 하고, 이대로 여기서 밤새울 거야?”라면서 백화점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들어갔다. 

나만 추웠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다른 여자들도 추워서 웅숭거린 모양새로 손을 양쪽 겨드랑이에 집어넣은 채 종종 거리며 1층 비상문 앞으로 직결했다. 

백화점 정문은 밤 11시가 되면 모든 밖과 연결된 문이 잠겨 진다. 그 문은 보안 직원만이 열어 줄 수 있다. 감독이 보안 직원에게 사전에 열어줄 것을 부탁해뒀기 때문에 미화원들이 1층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반장인 영식이 다시 전화를 해야 해서 여자들은 그사이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이윽고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5분이었다. 급하다. 3시부터 불나게 해야, 겨우 5시 50분에 끝이 나는데, 이미 5분을 손해 봤으니 내일 아침 새벽 6시에 퇴근하기는 글러버렸다. 

미화원 들은 각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순옥의 사정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순옥을 만났었는데, 그때 순옥의 말은 새벽 6시에 퇴근해서 어느 조그만 사무실의 청소 일을 해주는데, 약 2시간 정도만 해주면 돼서 오히려 수입은 짭짤하다는 얘기였다. 

대학 1년짜리 딸과 중학교 3년짜리 아들이 한 명, 그렇게 남매를 가르치느라 백화점 한 곳에서만 벌어 가지고는 도저히 현상 유지가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순옥은 나와 같은 버스를 탄지 4정거장 만에 내려 다음 일터로 향해갔다. 

듣기로는 서울에서는 몸만 성하면 죽을 때까지도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이곳 백화점에서는 정년이 70세 까지라 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미화원 정년은 아예 정해져 있지 않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나는 청소에 더욱 속도를 냈다. 몸만 건강하면 된다고, 수없이 되뇌면서…. (계속)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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