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생사 기로에서 사진작가 첫 발”
“동서양의 진리 현대적 메시지화 고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객원기자]
경기 고양시 대형 쇼핑몰의 한 전시장. 화려한 꽃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노년의 얼굴이 걸려있다. 지나가는 이들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미소를 응시한다. 간혹 어린 아이가 할머니의 얼굴을 만져보려 손을 뻗는다. 최근 세계 전시 무대에 초청받으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경남 김해 출신의 사진작가, 김용주(예명 젠아킴)가 아트인동산과 손잡고 지난달 8일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 전의 막을 올렸다. <시사오늘>은 11월 28일 고양에서 김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예명으로 활동 중이다. 젠아킴의 뜻이 뭔가.
“젠(Zen)은 불교에서 말하는 선(禪)의 영어 발음이다. ‘A’는 아트(Art)의 약자다. ‘Z’부터 시작해 ‘A’까지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단어다. 공의 세계엔 시작도 끝도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해당 전시에 대해 설명한다면.
“갤러리 아트인동산이 경기도자비엔날레 '찾아가는 비엔날레-느슨한 연대'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다. 고양시 창릉동의 어르신들을 모델로 그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촬영했다. 원래 3년 전 고향인 경남 김해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려 했는데, 관계자들을 이해시키기 힘들어 한 차례 미뤘던 프로젝트다. 한 사람의 인생을 활짝 핀 꽃에 빗대 담아내고, 지구가 숨쉬는 파동과 진동을 함께하는 것을 표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모든 공간이 소중하다. 이런 깨달음을 작품으로 나누고 싶었다.”
-사진작가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스물아홉살 때 심하게 아팠다. 생사의 기로에서 7년여를 보냈다. 그 전엔 나름 전도유망한 미술학도였다. 지역 그림대회에선 우승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한창 에너지가 넘쳐야 할 시간에, 병마로 인한 고통에 시달렸다. 단 1초도 편안한 순간이 없다 보니, 인간의 생로병사와 팔자, 업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도인이 있다는 절에 찾아가 참선정진을 했다. 여러 스님들에게 불교 경전과 관련된 것을 비롯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생각이 바뀌자 시야가 달라졌다. 고통을 느끼는 만큼 행복도 크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이 좋아진 뒤에도, 눈에 보이는 사소한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차츰 사진을 통해 내 안의 이야기도 하고 싶어졌다.”
-꽃과 인물을 주로 찍는 이유가 있는지.
“그림을 그릴 때도 만화 캐릭터와 인물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초기엔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연극단과 인연이 생겨 배우들을 촬영했는데, 어느 날 꽃을 주제로 한 인물 사진을 촬영하게 됐다. 그런데 내 의도와 다르게 인물 캐릭터에 가려 꽃의 의미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꽃을 의인화한 작품을 찍어봤다. 꽃이라는 사물에 사람의 향기와 기운을 담아보려는 시도 끝에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본인의 작품 철학을 요약해준다면.
“동서양의 진리를 현대적으로 쉽게 풀어내려 한다.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도 좋고, 사상을 이미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직접 겪은 삶의 고통과 그에 대한 극복, 깨달음들을 한 장의 사진이나 연작을 통해 포함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내 작품 철학은 우주적 진리와도 맞닿아 있다. 신은 우리 인간을 신과 같게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우주만큼 넓어질수도, 바늘구멍만큼 작아질 수도 있다.”
-대표작을 하나 꼽아준다면.
“‘이화세계_풍요#1’이라는 작품이다. 지금의 작가 젠아킴을 탄생시켰다. 많은 분들이 사가기도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이상적 세계를 꽃으로 의인화한 작품인데, 신선하고 잘 핀 꽃들을 경매장에서 구입하고, 꽃들이 좋아하는 햇살이 강한 날을 골라 찍었다. 물도 음이온 물인 육각수를 활용했다. 내 정성과 혼을 모두 쏟아 만든 작품이다.
유독 사람들이 이 작품 앞에선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한다. 그림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아서다. 한국, 미국, 일본에서도 똑같은 반응이 돌아와 신기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컬렉터가 있나.
“한국에서 어떤 여성분이 딸의 방에 걸어주고 싶다며 ‘초월적 자아’란 작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 개업 화환에 많이 사용되는 거베라라는 꽃이 소재였다. 줄기가 약하고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상처가 깊은 꽃이다. 시멘트땅에서도 피어나 꽃을 피우려는 모습이, 어떻게든 살아나려는 내 투병시절처럼 느껴져 많은 위안을 준 꽃이기도 했다. 그래서 '꽃과 자연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런데 미국 LA 아트쇼에서도 어떤 여성분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며 딸의 방에 걸어 두기 위해 소장하겠다는 분이 계셨다. 한국과 미국의 먼 거리지만, 두 여인의 마음은 같아 기억에 매우 남는다.”
-최근 해외 전시에도 수 차례 초청받았다. 감상을 들려달라.
“지난해엔 일본 후쿠오카 아트페어와 미국 LA 아트쇼에 출품했다. 세계가 넓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후쿠오카 아트페어에서 내 작품을 보고 미국 마이애미 아주르(AZur) 갤러리 큐레이터에게도 연락이 왔다. 많은 예술가들의 꿈인 마이애미와, 세계적인 아트페어 행사가 열리는 곳에 나갈 기회를 얻게 돼 무척 기쁘다.
또한 나라마다 관람객들, 바이어들의 개성이 다 다르다. 후쿠오카에 갔을 땐 도쿄에서부터 내 작품을 보러 기차를 타고 온 관람객도 있었다. 미국은 전 세계의 연결망을 통해 유럽과 남미 등 다양한 곳의 관람객이 오는 것이 특징이다.”
-김해 출신 아티스트인데, 고향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은 있나.
“김해는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고향이다. 당연히 애정은 많지만, 솔직히 예술활동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렵고, 새로운 시도보다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분들이 많다. 내가 좀더 유명해지고, 서울이나 해외에서 더 큰 인정을 받게 된다면 그땐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하.”
-향후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작품을 만드는 만큼 내 내면의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최근엔 성철스님의 '일원상' 사상을 담아내기 위해 연구 중이다. 해외전시가 늘어나는 만큼 서구에도 이러한 동양, 한국의 위대했던 스님의 사상을 알리고 싶다. 또한 이번 고양 전시처럼, 다양한 기업들과 함께하는 ESG 경영 기획도 늘려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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