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전용 출입문’은 언제쯤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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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전용 출입문’은 언제쯤 사라질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6.01 16: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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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제20대 국회, 작은 권위부터 내려놔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넓은 영토, 많은 인구, 복잡한 제도 등으로 인해 국민이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국민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자, 즉 국회의원에게 권력을 위임합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면서 동시에 ‘대리인’입니다.

국회의사당은 국민의 대리인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대리인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았더니, 이런저런 문턱에 턱턱 걸립니다. 국민을 대리하는 사람인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가면, 국회의사당 정문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거대한 문과 그 옆에 줄지어 서있는 전경들을 맞닥뜨리면, 정문을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분명 국회 잔디밭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구역이지만, 그곳에 닿기 위해서는 마치 국경을 넘는 듯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 항상 전경이 대기하고 있는 국회의사당 정문 ⓒ 시사오늘

어렵사리 정문을 넘어서서 한참을 걸어가면 본관 입구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곳은 ‘국민을 위한’ 문이 아닙니다. 일반인이 정면 계단에 발을 올려놓을 경우, 허겁지겁 막아서는 경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앞쪽 계단과 출입문은 국회의원만 이용가능하고, 일반인은 본관을 삥 둘러 뒤에 있는 후문으로 출입해야 합니다. 후문 앞에는 ‘국민의 문’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지만, 허울만 좋을 뿐입니다. 

▲ 국회의원만 이용할 수 있는 정문쪽 계단과 출입구 ⓒ 시사오늘

주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은 국회의사당에 주차할 권리가 없습니다. 국회의사당에 주차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뿐입니다. 일반인은 한강 둔치에 차를 세우고 10분 이상을 걸어 들어와야 합니다. 국민 권력의 위임을 받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지만, 그 어디에도 ‘국민을 위한’ 공간은 없습니다. 

▲ 정문에서 한참을 돌아와야 도달할 수 있는 ‘국민의 문’ ⓒ 시사오늘

본관에서 나와 정문을 보고 걸어오다 보면 왼쪽에는 국회도서관이 있습니다. 국회도서관은 그 성격상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합니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도 “국회도서관은 국회의원 및 전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도서관이 되지 못한다면 도서관으로서의 가치는 소멸될 것임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국회도서관 전 구성원들은 우리의 고객인 여러분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 아무나 이용할 수 없는 국회도서관 ⓒ 시사오늘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우선 중·고등학생의 경우, 국회도서관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소속 학교의 학교장이나 사서교사 또는 도서업무 담당 교직원의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상 중·고등학생은 국회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12세 이상 17세 이하의 비재학 청소년들은 아예 선출직 공직자나 공공도서관장, 기초행정구역의 책임자의 추천을 받으라고 돼있습니다. 국회도서관을 찾기 전에 먼저 구청장부터 만나야 하는 셈입니다.

일반인도 이용은 가능하나 책을 대출할 권리는 없습니다. 국회의원이나 국회 관계자, 상시출입증을 지닌 기자는 대출이 가능하지만, 일반인에게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도서관이 되지 못한다면 도서관으로서의 가치는 소멸될 것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이은철 국회도서관장의 인사말은 공허할 뿐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특권 내려놓기’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20대 국회가 개원한 지금, 여전히 레드카펫은 ‘국회의원 전용 출입구’를 데우고 있고, 국회를 찾는 일반인은 한강 둔치에 차를 세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들어오는 수고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20대 국회가 진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면 이런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큰 구호보다는 작은 실천으로 진정성을 증명하는 국회가 되길 바랍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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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랄라 2016-09-01 03:44:45
대출이 안되는 곳은 국회도서관 뿐이 아닙니다.
모든 국립도서관은 일반인의 외부 대출이 되지 않습니다.
지자체 도서관, 학교 도서관, 사립 작은 도서관과는 다르죠.
국립도서관은 자료의 이용보다는 보존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