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처신과 박근혜 정부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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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처신과 박근혜 정부의 평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8.2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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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새누리당 변화의 상징’ 되려면 할 말은 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18일 경기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을 방문해 2016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와 탁구를 치고 있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 뉴시스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DR)는 대한민국 보수여당에서 가장 ‘성공한’ 호남 출신 정치인이었다. 1970년 故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 김동영·서석재·최형우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이끈 그는 제6공화국 출범 이후 13·14·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04년에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자리에까지 올랐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이른바 ‘9룡’ 중 하나로 꼽히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DR에게도 ‘영남 정당’의 유리천장은 강고했다. YS의 최측근이자 실세로 평가받았던 그였지만, 정작 대권이나 당권과는 항상 멀리 떨어져 있었다. ‘DR계’로 불리는 거대 계파의 수장이었음에도, 호남 출신에게 대권과 당권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한나라당의 관성력(慣性力)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정현 대표의 당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땅한 세력이 없는 이 대표가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당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공감하고, 따르는 세력을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박 대통령이 보수여당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호남 출신 당대표’의 등장을 승인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다. 호남 출신을 보수여당 당대표로 선택하는 것은 모두가 부담스러워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DR은 2013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경선에 나왔을 때 YS 밑에서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이 내게 ‘마땅히 도와야 하지만 지역적인 문제 때문에 도울 수 없다’고 솔직히 얘기해서 처음에는 섭섭했다”며 “영남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더 큰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주변 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당내 분위기를 고려하면, 박 대통령이 정치사에 남을 만한 ‘결단’을 내렸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이 대표의 태도다. 현재로서는 친박계가 이 대표를 선택한 데 대한 평가가 두 가지로 갈린다. ‘전국정당화’의 기틀을 마련한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긍정적 시각과, 친박계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시각이 그것이다. 이중 어느 것이 역사에 ‘정론’으로 기록될지는 오로지 이 대표에게 달려있다. 만약 지금처럼 청와대의 뜻에 따라 ‘확성기’ 역할만 하는 데 그친다면 그의 당선은 ‘호남 출신’이라는 점보다 ‘친박계’라는 점에 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결단이 ‘지금껏 누구도 하지 못했던 지역주의 타파’로 칭송받는 것이 아니라, ‘당권 장악의 일환’으로 평가절하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반면 이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그동안 새누리당에서 외면 받았던 곳을 대변하는 등 변화와 개혁을 이끈다면, 호남 출신 정치인에게 당대표 자리를 허락한 박 대통령의 용단은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비주류’에게 당권을 내준 정치사적 결정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단순한 ‘새누리당의 당대표’가 아니다. 보수여당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이 대표의 행보는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이 대표가 숙고해봐야 하는 이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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