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시위]광화문 가득 메운 촛불…“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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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시위]광화문 가득 메운 촛불…“이게 나라냐“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1.05 2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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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주최 측 추산 20만 명 참여…교복 입은 중·고생들까지 등장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 등이 적힌 피켓과 초 ⓒ 시사오늘

미세먼지로 온 도시가 뿌옇던 5일 오후 4시. 사람들이 하나둘 광화문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아이 손잡은 부모, 팔짱 낀 연인, 교복 입은 학생, 백발성성한 노인까지 계층도 다양했다. 4시 10분께, 광화문광장 양쪽대로가 통제됐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 ‘박근혜는 하야하라’ 등이 적힌 피켓과 초를 손에 든 사람들은 설치된 무대 앞에 모여 앉기 시작했다. 광화문광장은 금세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무대 바로 앞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총학생회 깃발이 나부꼈다. 자신을 서강대생이라고 소개한 20대 남성은 ‘어떤 계기로 시위에 참여하게 됐나’라고 묻는 기자에게 “어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참여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사과를 하려면 잘못한 부분을 정확히 말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며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넘었고, 사퇴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무대 바로 앞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총학생회 깃발이 나부꼈다 ⓒ 뉴시스

세종문화회관 옆 대로에서는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 집회를 주도한 ‘중고생연대’는 시국선언문을 통해 “중고생들이 함께 뭉쳐 ‘헬조선’을 끝장내자”면서 “무능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우리를 괴롭혀온 교육체제를 갈아엎자”고 주장했다. 다만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자신이 중고생연대 소속으로 규정되는 데 거부감을 표했다. <시사오늘>과 만난 김모 양(17)은 “중고생연대라는 단체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며 “그저 박근혜 대통령 하는 행동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중에 페이스북에서 고등학생을 위한 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온 것”이라고 했다. 

▲ 교복을 입고 행사에 참여한 중·고교생들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독립적으로 시위를 진행했다 ⓒ 시사오늘

아이와 함께 광화문을 찾은 부모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두 아이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강모 씨(38)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고 싶어서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집에서 TV만 보고 앉아 있는 것은 내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아이들에게도 살아 있는 교육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중에는 아이와 함께 온 부모도 많았다 ⓒ 시사오늘

4시 20분께, 1부 행사가 막을 올렸다. 1부 행사는 세월호 유가족 발언과 4·16 합창단 공연, 대학생·교사·공무원 발언 등으로 꾸며졌다. 이 자리에서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어제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발언을 봤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책임감 있는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이 든다’고 하더라”며 “현 사태를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으로서 자괴감이 드신다면 더 이상 국민 괴롭게 하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성토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최경순 씨는 자신을 “세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하며 “아이가 대통령이 누구냐, 최순실이 누구냐고 묻는데 답을 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또 “문제의 중심인 박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퇴하기 바란다”면서 “저는 아이에게 나쁜 사람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복 받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박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 1부 행사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하는 중·고교생들 ⓒ 시사오늘

1부 행사가 마무리된 후, 5시 45분부터 행진이 시작됐다. 시위대는 광화문우체국에서 종로2가, 안국동사거리, 종각을 거쳐 교보문고 앞으로 오는 방향과 종로3가, 을지로3가를 지나 일민미술관으로 돌아오는 두 방향으로 움직였다. 당초 경찰은 거리 행진을 금지했으나, 법원이 “경찰 처분으로 이 사건 집회·시위가 금지될 경우 불법집회·시위로 보여서 여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며 참여연대가 청구한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별다른 충돌 없이 행진이 이뤄졌다.

행진에 참여하지 않은 시위 참여자들은 한쪽에 마련된 포장마차에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포장마차에서 기자와 만난 한 강중원(53) 씨는 “나라가 개판”이라며 “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대고,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자기 당 유리할지 계산하느라 해야 할 일도 안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대통령 물러나라고 이렇게 모여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데, 대통령은 뭐고 있고 새누리당은 뭐하고 있고 야당은 또 뭐하고 있나”라고 정치권을 향해 쓴 소리를 던졌다. 

▲ 행진에 참여하지 않고 포장마차에서 허기를 달래는 시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시사오늘

7시 20분께, 2부 행사가 시작됐다. 당초 2부 행사는 7시에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선두가 출발하고 30분이 넘도록 마지막 행진대가 출발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여 일정이 밀렸다. 경찰 측은 오늘 행사 참여 인원을 4만3천 명으로 발표했으나, 세종대왕 동상에서 덕수궁 앞까지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 주최 측은 약 2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부 행사는 여성·청소년·노동자·시민사회단체·문화예술인 등의 발언과 공연으로 채워졌다. 특히 시위에 참여한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예정에 없이 무대에 등장해 분위기를 돋웠다. 도올은 “나는 원래 학문 하는 사람이라 여간해서는 이런 집회에 나오지 않지만, 오늘 여기 선 것은 이것이 어느 특정 정당이나 개인을 제거하거나 높이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새로운 삶과 헌법을 원하는 자리기 때문”이라며 “내가 사상가로서 참여하지 않는다면 내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 오는 12일에는 광화문에서 민중총궐기가 열릴 예정이다 ⓒ 시사오늘

그는 또 “지금 여러분들은 단지 정권 퇴진을 위해서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원하는데, 이 낡아빠진 삶을 지속시키려는 사악한 무리들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 꽉 차있다”면서 “우리 국민 의식으로, 운동으로, 민중의 행진으로 이 모든 무리들을 정치의 장으로부터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외쳤다.

마지막으로 도올은 “퇴진은 정치적 해결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압제해왔던 모든 권력을 걷어낼 수 있을 만큼 여러분의 의지가 강력하게 표출될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며 “1주일 후 여러분과 같이 행진하고 이 자리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9시께, 행사 마무리에 앞서 시위대는 사회자의 선창을 따라 “이게 나라냐. 껍데기는 가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우리가 모든 권력의 주인이다. 권력의 주인으로서 선언한다. 박근혜는 퇴진하라”라고 소리쳤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에도 KT 건물 앞에서는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고, 오는 12일에는 민중총궐기도 예정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복된 사과에도,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모르는 분위기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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