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과 박정희> “IMF는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독재권력이 누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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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박정희> “IMF는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독재권력이 누적된 결과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7.19 14: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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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문민정부의 오해와 진실-<上>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도 김영삼의 책임이라고?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경 성수대교의 5번과 6번 교각 사이의 상판 48m가 무너졌다. 때마침 사고 지점에 있던 버스 1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가 함께 추락하는 바람에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등교 길에 버스에 탔던 무학여고 학생 9명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난리가 났다. 김영삼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원망하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신문 방송 TV 그리고 여기저기 모인 사람들이 한 결 같이 김영삼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원망하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성수대교는 건설은 1979년 10월 16일이다. 이날 박정희가 참석해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가장 아름답고 튼튼한 다리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그런데 부실공사를 한 박대통령과 시공자보다도 김영삼 대통령을 원망하는 소리가 요란했으니 얼마나 웃기는 얘기이고, 한심한 얘기인가?

오히려 박정희 정권의 고질적인 부실공사를 대변한 불상사를, 시공자와 시공 당시의 박 정권을 나무라고 비난하면서 다시는 이런 부실공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책임 추궁, 그리고 반성과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환기시켜야 할 대다수의 언론과 논객들이 김영삼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삼풍백화점 또한 그랬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6시 삼풍백화점이 붕괴 되었다. 이때도 수백 명이 압사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이때에도 모든 언론과 많은 시민들이 김영삼과 문민정부의 책임을 거론했다.

삼풍백화점도 1989년 12월 10일 노태우 정권 때 개장하고 준공은 개장 후인 1990년 7월 27일이었는데 참으로 웃기는 문화다. 왜 이렇게 됐을까?

▲ 1987년 통일민주당 총재시절의 김영삼 ⓒ사진제공=이성춘
소위 IMF(국제통화기금)사태의 도래와 그 책임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경제전문가도 아니다.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불과 5~6개월을 남겨 놓고 대기업들의 부도가 줄을 이었고, 수출 부진, 금융 부실, 격렬한 노사분규 등 복합적 어려움이 밀어닥쳤다. 거기에다 기아사태의 해결 방안을 놓고 김대중 등 야당까지 해결에 도움을 주기보다 기회주의적 방해 책동으로 차일피일하면서 국가 신인도가 떨어져 외국자본이 빠져 나가고 외국은행들이 빌려 주었던 돈을 회수해 가는 사태로 번졌다. 한마디로 외환 부족사태가 발생해 국제 통화 기금(IMF)에 외환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김영삼 대통령을 나라를 망친 대통령, 무능한 대통령, 심지어 무식한 대통령이라고 김대중 등 야당이 한목소리로 매도를 해 많은 국민들도 마치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IMF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며, 언론까지도 정확한 정황을 말하기보다 나타난 현상만을 보도해 그 전말을 흐려 놓았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부터 무려 32년을 군사독재 정치를 해 오면서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부터 시작해 국가와 국민을 담보로 겁 없이 외국에서 빚에 빚을 얻어다가 국토개발 등 건설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들 가까운 사람들끼리 은행을 떡 주무르듯 해가면서 흥청망청 돈을 썼다.

32년 동안 정경유착으로 급기야 정치는 한없이 타락하고, 기업은 자기자본의 몇 배씩 빚을 지고 허덕이고, 은행은 확실한 담보도 없이 권력자들이 시키는 대로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게 돼 부실채권으로 문을 닫게 생겼고, 국가 채무는 오간데 없이 늘어만 갔다.

외국 차관이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써야 하는 기업주들이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권력과의 야합을 해 기업을 꾸려갔다. 이러한 경제구조가 오랫동안 반복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하나의 고비용 저효율의 문화로 굳어져 버려 중증의 한국병이 되어 겉에 나타난 현상만을 놓고 ‘박정희가 최고’라고 여러 언론과 많은 국민들이 믿을 만큼 병든 문화로 뿌리를 내렸다.

권력과 결탁해 금융 특혜로 은행에서 과다하게 빚을 지고 방만하게 경영을 하다가 한계에 달하여 부도를 내고 문을 닫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은행도 고객이 맡긴 돈을 찾으러 가면 내줄 돈이 없어서 문을 닫게 되었다. 작건 크건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통장을 들고 이 은행으로 갈까? 저 은행으로 갈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한심한 사태가 벌어졌다.

IMF사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수십 년간 쌓이고 쌓여 이로 인하여 IMF사태는 당연히 오게 돼 있었고, 또 우리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IMF사태는 와야만 했다.

보릿고개를 없앤 대통령이라고 많은 국민들이 칭송하고 있는 박정희로 부터 32년 동안 “한국 놈은 맞아야 한다”고 세 사람만 모여도 집시법에 걸리고 대통령을 함부로 이야기하면 형법 어느 조항에도 없는 ‘국가원수 모독죄’를 지었다고 가죽잠바를 입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민주주의를 하자는 말만해도 긴급조치 위반, 위수령 위반, 게엄령 위반이라는 굴레를 씌워 정보부 지하에 끌려가서 두드려 맞는 것은 보통이고 혹독한 고문을 당해도, 억울해도 당해야만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국정은 물론 박정희를 비롯한 권력 실세들이 벌이는 경제동향도 그들이 보도하라고 내주는 보도자료 외에는 지금 큰소리치는 언론들도 그때에는 아무것도 보도하지 않아서 그들 외에는 언론도 학계도 그리고 국민은 더욱 그들의 비밀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국정도 경제도 완전히 망친 것을 번연히 아는 언론이, 요사이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일으키고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줄기차게 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쟁한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도 그들 자식들의 부정행위로 말미암아 친인척 관리를 깨끗하게 잘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승리의 꽃다발을 수여하는 게 요즘 언론이다.

한국 제일의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조차도 군사 독재자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꼭 보도해야할 것은 안하고 안 해도 될 것은 힘주어 보도했던 유신신문의 한계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잘 살면 됐지 독재면 어떻고 유신이면 어떻냐는 송복 교수의 글을 자랑스럽게 싣고 있는 조선일보가 한심하게 보인다.
지금이라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메이저언론이라고 자부하는 신문들은 유신시대를 비롯한 군사독재 시절에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국민 앞에 정중하게 사과하고 유신을 비롯하여 군사독재 시절에 저질러진 미 보도의 진상을 밝혀야 하고 그래야 우리나라의 역사는 바로 써지고 참된 언론의 자리를 찾을 것이라 믿고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안기부도 그들의 전신인 과거 독재권력의 원부였던 중앙정보부의 잘못을 사과했고, 대법원도, 검찰도, 경찰도, 군사정권 시절의 잘못을 사과했고,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독재권력 앞에 바른말을 하지 않은 것을 사과했다.

그런데 지금껏 일류 언론을 자부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한 큰 신문들과 TV등 방송사들은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한마디의 대국민사과도 없이 지금도 낯 뜨거운 보도를 떳떳하게 하고 있다. 한심하다.   

민주화가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도덕성과 정직성 그리고 투명성을 요구받는 문민정부에서 5년이라는 짧은 시일에 32년 동안 베일에 가려 쌓이고 쌓인 독재가 뿌린 부정부패 부조리의 독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처방을 내고 완전한 치료까지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실 채권의 양산으로 문을 닫게 된 금융권의 금융 질서를 바로 잡는 금용개혁법과 오랫동안 독재 권력과 기업주가 결탁해 거짓말로 노동자들을 속여 민주화 이후 그것을 알게 된 노조가 독이 올라 강성으로 치닫는 노사관계의 노 와 사의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법을 개정했다.

당장 국내외적으로 크게 파문을 일으켜 나라의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기아자동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방침을, 정권욕에만 눈이 어두운 김대중을 비롯한 야당이 경제도 국익도 저버리고 대안도 없이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를 물리력으로 저지하고 기아에 편승해 그 원만한 해결을 방해함으로 IMF 사태를 촉진 시켰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로 무너진 것처럼, 무려 32년의 군사독재가 만든 부실 채권을 감당할 수 없어 부도를 내고 문을 닫게 된 은행과 자기 자본의 몇 배의 빚을 지고 허덕이던 기업 등에 무려 167조원, 당시의 환율로도 1,670억 달러의 어마어마한 국민 세금을 공적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막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망가진 부실한 경제 구조가 IMF를 부른 것이다.

그 해결의 처방이 성공할세라 대안 없이 방해만 한 김대중과 야당 정치인들이 김영삼 대통령을 가리켜 IMF사태의 전적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나라를 망친 대통령이라고 큰소리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인간적으로 불쌍한 생각이 든다.

IMF사태는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독재권력의 부정부패가 32년 동안 계속되면서 누적된 결과다. 다시 말하면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말을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고 속임수로 국민의 환심을 사면서 뿌린 씨앗이 자라서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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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2020-07-24 04:09:48
이승만 시대에도 정경유착 있었어요

이 세동 2011-07-20 03:32:59
간만에 좋은 글 읽어 보네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전근대적 풍토가 만연하지요.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천재적 발상으로 해법을 찾기 위해 상호 만남을 갖는 것도 좋을듯한데...백락일고라는 말에 따라 먹지 못 한 천리마는 그냥 죽어야 하겠죠. 깊은 밤 사카모토 료마와 후쿠자와 유키치는 뭐하노 하며 꿈을 통해 만나 볼까 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