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과 박정희> “박정희 정권 동안 쌓인 부패가 IMF라는 한국병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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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박정희> “박정희 정권 동안 쌓인 부패가 IMF라는 한국병을 낳았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8.02 14: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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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문민정부의 오해와 진실-<下>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미국의 경제 위기와 미국 국민의 자세

미국도 부시 대통령 임기 말에 금융위기가 터졌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일시에 가라앉혔다. 그러나 신임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그의 각료와 여당은 물론 야당 정치권 그리고 언론 및 지식인 국민들 중에 전임 부시대통령이 잘못해서 금융 위기가 왔다거나 부시가 “나라를 망친 대통령”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며 원망하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 국민 전체의 책임이라고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철저하게 반성하며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은 역시 세계를 향도할 만하다. 미국의 정치문화가 미국을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눈의 티는 보고 제 눈 속에 티는 보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과 언론이 언제 제값을 하려는지 답답하다.

미국은 국민모두가 한 덩어리로 위기에 대처해 벌써 원상회복에 들어섰다. 그것은 물질의 힘이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로 단련된 미국의 고도의 정신적 문화수준에 있다. 우리의 IMF 때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미국의 문화가 한없이 부럽다. 

여기 동아일보 홍권희 논설위원의 칼럼을 옮긴다.    

‘국내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을 통해 거품을 뺐다.
평균 부채 비율은 1997년 425%에서 2001년 196%로 대폭 낮아졌고 요즘은 105%수준이다.
구조조정 방법론을 둘러싼 논란도 많았고 추진 과정에서 국민 전체가 고생했지만, 대기업을 건강한 체질로 바꾸는 효과는 확실히 거뒀다. 만일 1990년대 우리경제가 그대로 이어졌다가 이번 글로벌 실물 침체를 만났다면 경제 전체가 지금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았을 게 틀림없다.’
2009년 3월 10일 동아일보,
‘한국병’ 11년만의 수술기회다, 홍권희 논설위원 

▲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도 김영삼은 늘 앞장서서 투쟁했다. 우측에 황명수 전 의원과 좌측에 강신옥 변호사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제공=이성춘
“군사정권 동안 쌓인 부패가 IMF라는 한국병으로 나타났다”

군사문화가 32년 동안에 만들어 논 잘못된 구조가 한국병이고, 이것을 뜯어 고치는 것이 구조조정이다. IMF 때 우리는 지난날의 잘못된 구조를 알았고, 그런 어려운 중에서도 IMF를 극복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빠른 속도로 글로벌 위기를 남보다 일찍 벗어났다.

군사정권 32년 동안 쌓인 부정부패와 모순된 정책이 IMF라는 한국병으로 나타났다. 과감한 개혁이 없으면 이 나라의 장래는 없다고 생각한 김영삼은 국가의 모든 정책이 투명하지 않으면 민주화는 없다고, 공직자의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를 제도화하고 먼저 대통령과 청와대가 깨끗해져야 한다고 단돈 10원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김없이 실천하고 임기를 마쳤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어느 정치인도 하지 못한 깨끗한 모범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못한 과거가 만들어낸 IMF를 김영삼 대통령 책임으로 떠넘겼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국민 모두가 반성하고 회개해도 모자랄 판에 쓰나미처럼 몰려온 IMF를 김영삼 책임이라며 원망과 질타가 이어졌다.

깨끗하고 당당한 대통령은 ‘김영삼’ 유일

깨끗하고 당당한 대통령은 김영삼이 유일하다. 제대로 알자.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도 늘 김영삼 대통령이 앞장서서 투쟁한 성과를 김대중은 그 뒷전에서 오히려 방해 내지 소극적으로 임하다가 성공하는 기미가 보이면 얌체 기질을 발휘해 욕심껏 이득만을 챙겼다.

또 김대중이 노벨 평화상을 탄 남북 정상회담도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조건 없이 만나서 당당하게 대화하기로 했다가, 회담 성사 직전에 김일성이 사망함으로써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이렇듯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도 김영삼 대통령이 터놓은 것을, 남북 정상회담 제의나 해놓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김정일이 아쉬워서라도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예정됐던 회담처럼 당당한 회담이 성사 되었을 것인데, ‘노벨상을 타기위해 김정일에게 뇌물을 갖다 받쳤다’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미화 5억 달러까지 몰래 갔다 주고 별 성과도 없는 6·15 공동선언을 하며 대 환영을 받고 돌아 온 것은 혹시, 때(자신의 대통령 임기내)를 놓쳐 노벨상을 놓칠세라 과욕을 부린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 남북 정상회담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과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김대중 혼자 무슨 평화를 위하여 기여했다고 북측 당사자인 김정일은 빼고 김대중 혼자서 평화상을 탄단 말인가?
김대중이 김정일과 회담 후 “김정일은 논리정연하고 진정성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제 전쟁은 없다”고 김정일의 통일과 평화의지를 확신했다.

진정한 평화에 기여한 상이라면 오히려 김대중 쪽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김정일과 나란히 시상대에 서야 떳떳하지 않겠는가?

노벨평화상 위원회도 그 상의 권위를 위하여 당연히 김대중과 김정일을 시상대에 나란히 세웠어야 하는데 굳이 김대중에게만 단독으로 시상을 한 것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상에 환장한 사람이 아닐 진데 누가보아도 시상자 선정에 공정성이 없었고 세계적인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노벨상의 권위를 망쳐가면서까지 단독 상을 받아야 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상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영광스러워야 하는데 김대중의 평화상은 조금은 부끄러울 것 같다. 국민들은 찜찜하다. 현대의 정몽헌 회장의 아까운 목숨도 김대중의 남북 정상회담의 무리한 진행 때문에 발생한 비극임을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가?

박정희의 잘못된 쿠데타로 인하여 가시적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한일 국교 정상화도 너무 서둘러 독도 문제를 비롯한 국가배상과 징용 정신대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그리고 각종 개인 청구권을 도매금으로 넘겨 얼마나 많은 국민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던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왜정 시절에 일본인들도 그렇게 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무시무시한 지하 감옥을 만들어 불법 연행 감금 고문을 예사로 하면서 소비가 미덕이 되는 풍요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전하며 억지로“주먹으로 두들겨 패면서 갈비를 먹어야 한다고 얼마나 많은 국민을 괴롭혔는가?”

오죽하면 고문 기술자 이근안과 부천경찰서 성고문 기술자 문귀동까지 나오게 됐는가? 그들에게 고문을 당한 피해자와 그들 가족의 허탈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을 분노케하고 서글프게 했는가.
박정희가 친인척을 깨끗하게 관리했다고 하는 조선일보는 언제 조사를 해봤는지, 확실한 근거가 있는 말인지?

불법으로 무한대로 걷어 들인 통치자금은 얼마를 어떻게 걷었고, 누구에게 얼마를 어떻게 주었는지, 또 남은 돈은 얼마였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박정희가 영남대학교 교주라고 하는데 언제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만들어 교주가 되었는지,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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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재 2014-02-26 15:40:52
김영삼이 만든 패망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