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Li-view] 40대 기수론과 이준석 현상, 무엇을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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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Li-view] 40대 기수론과 이준석 현상, 무엇을 원하나?
  • 정치라이뷰팀
  • 승인 2021.07.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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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과 데스크의 시각 ‘정치를 본다’
이번 편은 1969년 40대 기수론 이유와
2021년 이준석 현상 비교·시사점 주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치라이뷰팀)

정치는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한다.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 꿈틀대는 그 광경 위에서 정치를 본다. 기자들과 데스크의 시각을 담은 ‘정치라이-뷰(Li-view)’는 취재를 녹인 분석들의 조합, 브레인스토밍에 초점을 맞췄다. 닉네임 정치도사, 정치생각, 정치논리, 정치온도가 참여했다. 라이-뷰는 살아있는 정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편집자주>

1969년 정치권에서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습니다. 40대 기수론이었습니다. 2021년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준석 현상’입니다. 왜 불었을까요.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시사할 점과 주목할 점은 무엇일까요. 40대 기수론과 ‘이준석 현상’ 비교. ‘정치라이뷰’ 주제입니다. 

 

1. 시간 속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은 1970년 정치쇄신을 이끌어 ‘40대 기수론’을 만들어 냈다. 사진은 당시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DJ에게 악수를 건네는 YS.ⓒ사진제공=김영삼 자서전
김영삼과 김대중은 1970년 정치쇄신을 이끌어 ‘40대 기수론’을 만들어 냈다. 사진은 당시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DJ에게 악수를 건네는 YS.ⓒ시사오늘(사진=김영삼 자서전 제공)

1969년 11월 8일 김영삼(YS) 신민당 총무가 외교구락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그의 나이 만40세 때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4·19 정신에 입각한 민주 정부를 기필코 재건하겠습니다. 새 시대를 밝히는 구원의 횃불을 밝히겠습니다.” 각오가 비장합니다. 뒤따라 각각 만46살, 만47살 나이인 김대중(DJ)·이철승 의원도 대선 경선 대열에 합류합니다. 

처음에는 유진산 등 당내 노장층으로부터 ‘입에서 젖비린내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으로부터는 지지를 받았는데요, 차츰 바람을 일으키며 대세로 떠올랐습니다. 

선거 결과는 어땠을까요. 1차 투표에서는 YS가 크게 이깁니다. 하지만 과반수를 얻지 못해 2차 투표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 결과 이철승과의 연대로 역전승에 성공한 DJ가 1971년 4·27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2021년 6월 11일은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치러진 날입니다. 결과는 신진의 승리였습니다.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36세 정치인이 제1야당 당대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여론의 지지로 선출된 이준석 당대표였습니다. 

 

2. 세대교체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와 새지도부가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뉴시스(국회취재사진단)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와 새지도부가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뉴시스(국회취재사진단)

왜 이런 데자뷔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단적으로 ‘세대교체 열망’이라는 저변의 시대요구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비단 두 시기에만 국한된 것도 아닙니다. 세대교체 열망은 시대의 매전환기마다 등장했습니다. 고종의 왕정에 반대하고 공화제를 주장한 청년 이승만에 국민들이 환호했던 것, 그 청년이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회의 주역들이 이끈 4·19 혁명으로 물러난 것, 제5공화국이 6월 항쟁을 이끈 젊은 586세대에 밀려 직선제를 수용한 것 등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면, 신세대에 의한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렇듯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1969년과 2021년에만 유독 ‘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세대교체론이 폭발한 것일까요. 

크게는 두 가지 조건이 결합 된 결과로 보입니다. 첫째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리고,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의해 일어난 현상일 것입니다. 둘째는 기존에 존재했던 정치 세력의 교체만으로는 변화를 이룰 수 없다는 국민 공감대가 결합하면서 이를 갈무리해 어젠다화할 수 있는 구심점이 나타나자, 세대교체론이 폭발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돌아보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3선 개헌을 단행한 끝에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산산조각냈습니다. 도덕적 우위를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는 끊이지 않는 ‘내로남불’ 논란에 시달리며 국민에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3선 개헌으로 움츠러든 그때, 야권에는 유유히 관성에 따르는 기성세대가 아닌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수차례 선거 패배와 탄핵으로 움츠러든 그때, 보수는 탄핵을 인정하고 개혁할 새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때 나타난 이들은 기성 정치권에서 활동하면서도 수직적 문화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 온 인물들이었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변화의 표상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정권교체’만으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젊은 정치인’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독재에 맞서고(1969년), 탄핵을 넘으려는(2021년) 젊음의 패기에 국민이 열광한 것. 1969년의 40대 기수론과 2021년의 이준석 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나타난 게 아닐까요. 즉, 변화를 바라던 민심이 이들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3. 지도자 부재


현실적으로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력이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969년 신민당은 당시 당수이자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유진오 박사가 와병으로 물러나면서 대중적 지도자가 없다는 한계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4·19 이후 군사독재정권이 등장하면서 10년간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도자 부재는 이대로 안 된다는 현실적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됐고, 새로운 지도력을 창출해야 정권교체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40대 기수론이 지지를 받을 수 있던 이유입니다.

2021년 야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 안을 볼까요. 이렇다 할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홍준표·유승민 등 기존의 대선주자들은 지지율 면에서 존재감이 미비한 상태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해 이낙연·정세균 등 여당의 9룡마저 상대하기에도 벅차 보입니다. 오죽하면 당 밖에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 내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하며 반문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겠습니까. 이런 야당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겠다는 현실적 판단이 새로운 주자를 통한 판 흔들기라는 극약처방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4. 유진산 유뮤 外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유진산(오른쪽 앞)은 YS(오른쪽 뒤)를 지원했지만, 승자는 DJ였다. 유진산·YS와 함께 앉아있는 사람은 박순천 여사 ⓒ시사오늘DB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유진산(오른쪽 앞)은 YS(오른쪽 뒤)를 지원했지만, 승자는 DJ였다. 유진산(맨 오른쪽 앞쪽)·YS와 함께 앉아있는 사람은 박순천 여사 ⓒ시사오늘DB

이번엔 차이점을 말해보겠습니다. 그때는 사실상 신진끼리의 대결로 판이 형성됐다면, 2021년은 신구 간 대결로 치러졌다는 점이 우선 다릅니다. 이유는 유진산과 같은 인물이 있고 없음의 차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969년 당 대선주자인 유진오 박사의 부재 이후 대안으로 유진산 수석 부총재가 저울질 됐지만, 그는 자신이 나서기보다 뒤로 물러나 40대 주자들끼리 경쟁해 흥행하는 경선판을 열어줬습니다. 그에 비춰 2021년은 신진들끼리 경쟁하기보다 본경선 당시 ‘나경원·주호영·조경태·홍문표 vs 이준석’이라는 신구 대결 속 신진이 승리를 거둔 사례로 남았습니다. 

경륜과 콘텐츠, 발광체냐, 반사체냐 여부도 차이점으로 지목됩니다. 40대 기수론 시절 YS는 나이는 젊었지만 5선 의원이었고, DJ는 재선 의원이었습니다. 의정 활동 등 정치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2021년 0선의 이 대표가 된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지요.

언변은 좋으나 이 대표 경우 청사진 및 콘텐츠가 빈약한 점 등도 40대 기수들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만치 무기력했던 야당 시절, YS는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 40대 기수론을 일으켜 세운 주인공인이었습니다. 반면 ‘이준석 현상’은 발광체보다는 반사체 역할에 기인했다는 점도 차이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5. 빛과 그림자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지요. 세대교체 및 변화에 대한 열망 등이 빛으로 간주 된다면, 이제부터는 그림자를 말해볼까 합니다. 

40대 기수론 이후 수십 년간 현대사는 양김의 시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YS는 40대 기수론 무렵 비록 최종 경선에서 실패해 대선 후보가 되지 못했지만 1974년 최연소 신민당 당수에 선출됐고, 두 번의 대선 도전 끝에 1992년 14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DJ 역시 1971년 처음 도전한 7대 대선에서는 떨어졌지만, 4수 끝에 1997년 15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까지 양김은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며 힘을 키웠고 세를 불렸으며 보스정치, 계보정치를 강화했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김영삼 아니면 김대중이라는 이름이 고정되다시피 야당 대선주자로 등장했습니다. 신진 정치인들도 두 거목에 기대 어느 한쪽에 줄을 서지 않으면 성장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마침내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위대한 지도자들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또한, 엄혹한 시대가 낳은 특수성에 의해 양대산맥 중심으로 정치권력이 모아진 배경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40대 기수론 이후 40대 기수가 등장하지 못한 것은 결국 양김 정치가 그만큼 공고히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르게는 이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40대 기수론이 돌풍을 일으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독재정권의 방해 공작도 실패의 원인이 됐겠지만, 따지고 보면 내부적인 문제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대선후보가 된 DJ 측은 경쟁자였던 YS를 배척해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대선 후에는 또 어땠습니까. 표면적으로는 ‘진산 파동’을 계기로 파벌 간 내홍이 치열해져만 갔습니다. 이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각목을 든 청년 부대가 전당대회에 난입해 소동을 벌이는 패권 경쟁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6. 시사점 


네. 그렇습니다. 40대 기수론은 등장 이후 국민의 열망을 실현하기보다 그 의미마저 퇴색되는 실망스러움을 끼쳤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동력을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이준석 현상’ 또한 시험대에 놓여 있습니다. 과연 제2 제3의 이준석은 그치지 않고 나올 것인가. 아니면 이준석 대표 이후 그로만 남을 것인가. 정권교체에 성공할 것인가. 그때처럼 실패할 것인가. 패권만 더 공고해질 것인가.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길이 돼줄 것인가. ‘안철수·윤석열·최재형’ 등을 모두 아우를 통합의 용광로가 돼줄 것인가. 기득권을 강화하려다 분열로 이어지고 말 것인가 등등. 기로 앞에 놓인 것입니다. 

전당대회가 이미 끝난 지 한 달여가 지난 시점입니다. 그럼에도, 40대 기수론과 ‘이준석 현상’을 비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현상’이 계속되려면 쇄신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변화의 바람이 요구되는 이때 한 예로 이런 혁신은 어떨까요. 

지금껏 대선에서는 양김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재수, 삼수하면 붙는다는 논리가 공식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한번 패해도 본선 출마의 동력을 발판 삼아 조직력을 강화해 다음 대선에 또 나서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돼왔습니다. 

국민 심판을 받은 이들이 또 나온다는 게 명분상 의미가 있을까요. 미국만 해도 본선에 나와 패한 후보가 다음에 또 나오는 염치없는 모습은 없습니다. 한번 쉬고 도전하면 몰라도, 연속으로 나온다는 것은 국민 심판을 무시하는 결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한계를 보인 주자들을 우리가 또 봐야 합니까. 또 나온다면 패권과 기득권 정치만 강화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준석 현상’이라는 바람이 계속 불기를 바랍니다. 이참에 전례가 돼왔던 구태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준석 현상’ 의 이유이지 않을까요. 

이런 라이-뷰 어떤가요? 독자 여러분의 또 다른 분석 댓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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