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2탄 계획, 오징어게임 능가할 수도” “대장동, 역사적으로 있어 본 적 없는 복마전”
“이재명, 완전히 몸통이라는 것 드러났다고 봐” “대선 물론 후보 지위 유지하기도 어려울 듯”
“능력, 성과라는 허상,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윤석열, 혈혈단신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
“TV 토론 한두 번으로 상황 종료된다고 자신” “바로 직격하는 윤석열 언어, 정직하고 강력”
“정치도 인격, TV토론 누가 야비한지 다 나와” “안철수·윤석열, 최고 앙상블 될 수 있다고 봐”
“민주화운동, 불의와 싸우는 지금의 내 힘 돼” “정권교체 성공해 文정부 종식시키는 게 계획”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몇 년 전 만들어진 영화 <아수라>도 다시금 부상 중이다.
“2탄을 준비 중이다.”
국민의힘 김영환 전 국회의원(이하 김영환). 진담 반 농담 반이라면서도 영화감독도 만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 6일 그가 ‘이 해 박는 치과’와 함께 운영하는 성북구 카페에서 만났다. 직접 구운 가정식 쿠키가 맛난 집이다.
1. 대장동 개발 의혹
‘김영환 TV’에 대해서부터 꺼냈다. 유튜브 구독자가 10만을 넘었다. 단기간 성과다. “비결은 뭔가요.” “잘 모르겠다.” 본인도 놀라워하는 눈치.
“나는 중도 성향이다. 유튜브 세계는 극단에 있거나 강하고 칼칼한 주장들이 잘 통한다. 그렇지 않은 내게 많은 분이 찾아와 줬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 자신감을 얻었다고.
- 유튜브서 대장동 개발 의혹을 집중 파고들던데 이유가 뭔가.
“집중 파고드는 게 아니라….”
사실 3년 전부터 이 문제를 들춰낸 이가 김영환이다. 6·1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을 때다.
“역사적으로 있어 본 적이 없는 큰 사건이다. 전직 대통령이나 대형 권력 비리 스캔들을 많이 다뤄본 윤석열 전 검찰총장(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도 페이스북에 그런 말을 했잖나. 자기가 본 것 중 제일 큰 사건이라고. 돈의 규모가 그렇고, 입법·사법·행정에 언론까지 다 포함돼 있다. 국민이 엄청나게 피해를 봤다.”
2015년 성남 판교 대장동을 중심으로 벌어진 성남도시개발공사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의 민관 합작 개발을 두고 야권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부동산 게이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재명 게이트'라며 특검 촉구를, 이 지사는 사실무근이라며 곽상도 의원 아들의 퇴직금 50억 원 특혜 의혹을 들어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역공했다.
“자격이나 능력, 전문성이 없는 7명의 사업 투자자들이 7%의 지분으로 70~80%가량의 이익금에 해당하는 4040억 원을 가져갔다. 수긍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돈벼락을 맞았다.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들여다보니 설계하고 기획하고 집행한 사람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현 경기지사)이다.”
- 몸통이라는 직접적 근거는 될 수 없지 않나.
“완전히 몸통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돈의 물줄기가 그리로 갈 수밖에 없도록 관이 설계했다. 수사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이 지사가 빠져나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당연하다.”
- 자신하는 이유는.
“어떻게 시간을 끌는지 알 수 없으나 사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정치적으로도 판단이 끝난 문제다.”
-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다. 특검이 과연 될까.
“되든, 안 되든 국민이 용납할 수 없다. 막거나 덮을 수 없다.”
- 경기도지사 선거 때는 처음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제보를 받은 건지?
“당시 내가 주로 싸운 것은 이재명 지사의 친형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 입원 문제였다. 언론에서 관심을 가진 것은 김부선 사건이었다. 성남에서 대장동 문제를 접했다. TV 토론회에서 내가 지적한 것은 이 지사가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있다는 거였다. 검찰에 기소했고 대법원까지 갔다.”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던 이 지사는 1심서 무죄, 2심서 유죄를 받았다. 당선무효형 위기에 처했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해 지사직을 유지했다. 이를 선고한 중 한 명이 대장동 화천대유 의혹 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이다.
- 요즘 보면 ‘검찰 개혁’ 소리가 사라졌다.
“자기네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으니까. ‘김오수의 검찰’, ‘박범계의 검찰’이니까. 그들이 검찰 개혁을 외칠 때는 ‘윤석열의 검찰’을 얘기한 것일 테니까.”
결국, 정치검찰이 있다는 얘기인지 되물었다.
“윤석열처럼 법대로, 원칙대로 수사하려고 노력하는 검찰이 아닌 그들은 그런 검찰을 원했던 거 아니겠나.”
2. 영화 제작 가능성
<오징어게임>과 <아수라> 모두 봤다는 김영환.
“<아수라>는 현재 상황을 미리 예견했다고 할까. 그걸 연상케 하는 영화다. 현실은 더 능가하기 때문에 오늘(6일 유튜브서) 진단 반 농담 반으로 Two(투)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검찰은 미온적이고, 청와대는 팔짱을 끼고 있다. 민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필요하다.”
- <아수라> 감독도 만날 건가?
“당연하다. 판권 얘기가 잘 안되면 <대장동 게이트>나 <천화동인>(화천대유 연루자들) 등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제목은 많다.”
- 클라우드 펀딩 등을 하려면 홍보도 많이 해야 할 텐데.
“열광적인 반응이 있을 거로 기대한다. 영화업계 등도 접촉하고 있다.”
- 진보 진영에는 예술가들이 많지만, 보수 쪽에는 별로 없지 않나. 내로라하는 이들이 결합할 수 있을까.
“정말 양식 있는 예술가가 있으면 되는 거니까.”
그는 그러면서 <오징어게임> 같이 바람을 타고 세계진출도 노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잘만 하면 능가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분을 사고 있는 부패의 문제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떤 희곡이나 소설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스펙터클한 일들이 다방면에 걸쳐 벌어졌다.”
씁쓸한 표정.
“요지경이라고 해야 할지 복마전이라고 해야 할지. 난장판이라고 해야 할지.”
3. 대선 판세 전망
대선 얘기로 넘어왔다. 야당이 ‘윤석열 대세 속 홍준표와의 경쟁’이라면 여당은 이재명 지사가 누적 과반 압승이다.
- 이 지사에 대한 평가는.
“당을 떠나, 공직에 나가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여러 리스크 논란에도 민주당 진영에서 압도적으로 밀고 있다.
“안희정 날아갔고, 김경수 패퇴됐고. 조국이 빠져나갔다. 앞의 대선주자들이 다 좌절되면서 기회가 온 건데, 이제야 국민이 제대로 볼 시간이 왔다. 성과 내지, 능력이라는 그의 허상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거다. 포퓰리즘 정책은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 공정경제는 부패로 돌아왔다. 대선은 물론이고 후보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본다.”
- 윤석열 후보는 그러면 공정한가.
“앞으로 권력의 견제 내지는 비판 같은 걸 받아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살아있는 권력과 싸웠고 공정과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고 본다. 후보 본인이 싸워서 쟁취한 것이기 때문에 대중이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캠프에서 그는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다.
- 정치는 덧셈의 예술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 관점에서 윤 캠프는?
“대세를 만들어 가는 상황이고, 많은 분이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 이념적으로는 중도와 합리적인 진보 세력을 포용해야 하고, 지역적으로는 호남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하며, 세대적으로는 우리에 대한 지지가 약한 40대와 젊은 층들을 흡수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 정치 초짜라는 한계부터 구설수도 잇따라 나왔다. 스윙 보터를 잡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당은 물론 야당 내부에서조차 집중적인 공격과 견제를 받고 있다. 윤석열 하나를 잡기 위해 혈안이다. 혈혈단신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다.”
- 만약 본선에서 ‘이재명 vs 윤석열’이 붙는다면 판세 전망은.
“이재명 아니라 누가 와도 윤석열이 후보가 되는 순간 당선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불변의 흐름이 있다.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의견이 정권 안정론, 유지론보다 15% 정도 높다.”
- 윤 후보가 본선 주자가 안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4. 윤석열의 언어
인터뷰 전날은 KBS 토론이 있었다. “윤 후보 토론 실력, 진화하고 있다고 보나.” “어떻게 보나.” 역으로 반문해온다. “늘고 있다고 본다.” “늘고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잘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치하면서 많은 사람을 봐온 경험으로, 내가 딱 그랬다. ‘윤석열이 TV 토론 한두 번쯤 하면 상황이 종료될 거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사람들이 잘 믿질 않았다.”
결국 ‘내 말이 맞잖아.’ 하는 표정.
- 자신했던 이유는 뭔가.
“언변이 대단하다. 나는 홍준표 후보하고도 토론을 많이 했고 이재명 지사하고도 많이 했다. 그들의 기량을 안다. 윤석열 후보가 가진 인문학적 바탕과 독서량, 학습능력, 언어를 구사하는 힘을 볼 때 이들은 당해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여러 공세가 있었다. X파일과 말실수 공격, 그리고 여론조사가 무너지고 있다 등…. 마지막으로 TV 토론 몇 번 하면 고꾸라진다고들 했다. 그런데 지금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 타고난 힘일까.
“이를테면 대장동 문제를 ‘국민을 약탈한 사건’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언어가 투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 같으면 돌려 말하고, 에둘러 말할 것을 직격한다. 토론할 때 군더더기가 없다. 묻는 것에만 답하고 아니면 말고 하는 거지. 비유를 많이 섞지 않고 바로 본질에 들어간다. 정직한 언어, 강력한 언어다. 그렇게 생각한다.”
- 토론 평가를 낮게 주는 후보는.
“정치도 나중에 보면 인격이 남는 거다. 지금 보면 못된 사람은 못된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나. 야비한 X이 나타나고.”
- 누구를 말하는 건지?
“역술인 관련 막 들이대고. 굉장히 날카롭게 지적했다고 본인은 생각하겠지만, 끝나고 보니까 여운이 안 좋지 않나. 왜 저런 얘기를 하나. 역술인 만난 게 무슨 뇌물 받은 것도 아닌데, 수사관도 아니고, 취조관도 아니고. 문제가 많은 사람 인양 단정 짓는 것부터 모욕이고 네거티브다. 이긴 것 같겠지만, 나중에 가면 지는 것이 된다. TV를 지켜보는 국민은 안다. 누가 야비하고, 못됐는지, 누가 네거티브하고, 근거 없는지. 정치 선배답지 않았다.”
KBS 토론 당시 유승민 후보는 윤 후보를 상대로 역술인들 이름을 열거하며 추궁한 바 있다.
- 홍준표 후보는 윤 후보에게 비호감이 많다고 했다.
“말이 안 된다. 자기가 비호감이 많으면 많았지. 윤석열이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서 볼 때 가장 걸림돌이니 적대하는 인물이다. 그거 갖고 뭐라 하는 건데, 아니 그럼 여당하고 싸우지 말란 건가.”
5. 진보와 보수의 간격
김영환은 4·15 총선을 계기로 국민의힘 소속이 됐다. 전에는 오랫동안 민주당에 있었던 그다.
- 진보와 보수를 이제는 어떻게 규정하나.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없어져야 하고, 그 간격이 많이 줄었다고 본다.”
고개를 갸웃했다.
- 그런가?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데 경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사람이 있고, 여성 문제는 아주 보수적인데 정치개혁은 아주 진보적인 사람이 있다. 섞여 있고,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나는 진보, 보수라는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는 거다. 민주당이 진보이고 우리가 보수? 어림없는 얘기다.”
- 그럼 뭐로 차이를 두나.
“민주당식 정치란 게 있다. 진영 논리나 계파 정치, 인사에 있어서 독단과 독주 등.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국민의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권 교체냐 아니냐로 갈라질 수도 있겠다.”
- 정권 교체가 필요한가.
“잘못된 방식을 지속하고 있다. 4~5년간 나라를 거덜 내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변화도, 능력도, 업적도 없다. 바꿔야지.”
- 시대정신은 뭐라고 보나.
“역시나 공정과 상식, 정의다. 21세기 4차 혁명 시대인데, 이런 기본적인 가치가 시대정신인 게 안타깝다.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잡고 난 뒤 공정이라는 가치가 훼손됐다. 민주주의가 달성됐던 과거에 당연히 성취됐어야 하는 건데 지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 상당히 퇴보했음을 의미한다.”
3지대 관해서도 물었다. 한동안 열망했던 그다. “실패한 건가.” 고개를 끄덕인다.
“문재인 정권이 너무 극단적이니까. 중간 내지는 중도에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 양강으로 흩어지게 됐다.”
“이번 대선은 그럼?”
“존재할 수 있어도 당선되기 어렵지.”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출마해야 한다고 보나.
“출마할 거다.”
‘안철수-윤석열’ 케미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눈치다.
“서로 굉장히 보완될 수 있다고 본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안 대표는 과학 기술이나 도덕성,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욕구가 높다. 사회적 기부도 많이 했고 깨끗하다. 하지만 대중을 휘어잡고 현재 상황을 돌파할 만한 힘을 잃었다. 예전 같지 않다. 그 못 가진 것을 윤 후보가 갖고 있다. 최고의 앙상블이 될 수 있다.”
6. 개인 정치사 얘기
이력 중 재미난 게 있다. 유신 정권 당시 치과대학생으로는 최초로 학생 운동을 하다 구속된 점이다. 선입견일 수 있지만, 좀 갭이 느껴진다고 했다.
“치과 대학생이라고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웃음).”
1955년생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무학의 중국집 주방장 아들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1973년 연세대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치과대학을 거의 다닌 상태에서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본과 3학년(5학년)을 마쳐가던 무렵.
-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의사가 빨리 돼서 집안을 일으켜야 할 형편이었다. 하지만 부조리한 것에 대해 정의감을 갖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은 다 같으니까.”
치열하게 운동했다. 1977년 유신 철폐 운동을 하다 투옥됐다. 감옥 안에서도 긴급조치 9호 해제를 촉구하다 추가로 기소됐다. 이후 무죄가 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2013년이 되면서였다. 20개월간의 복역을 마친 후에도 거의 9년, 10년간을 제적과 투옥, 수배와 구금을 반복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해 본인과 아내 모두 구속됐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서야 이듬해 치과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때가 지금의 내 힘이다. 결단해 봤고 고생해 봤다. 또 그랬기 때문에 불의와 싸우는 데 있어 두려움이 적다. 이재명 지사 같은 이들과 싸울 때는 목숨 걸고 한다고 생각하지.”
-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하게 운동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심에 있었다. 지위가 높아서가 아니라. 김근태·이해찬을 포함한 분들이 학생 운동을 하다 청년 운동을 한 거라면, 우리는 학생 운동을 한 뒤 노동 운동을 했다. 그것이야말로 본질적인 계급 운동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전기기술자 생활을 6년간 했다. 1994년 그때 쓴 시들을 엮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는 제목의 시집이다. 가장 좋아하는 시를 묻자 ‘임종’을 꼽는다. 아버지에 대한 시다.
“세상을 떠나던 날 나눈 대화를 시로 썼다.”
“똥오줌 받아낸 오십 일 때문이었을까 / 그는 드디어 내 손을 들어주었다 / 자식이 원수라던 불화의 십 년 / 나는 하는 일마다 그의 가슴을 찔렀다 / 복학의 길이 열렸으나 끝내 거부했고 / 감옥만은 가지 말라던 그의 말조차, / 나중에는 손자 손 한 번만 잡게 해 달라던 / 그것조차 못 들어드린 내게 / 그래 이제 네 생각대로 하려무나 / 네가 옳은지도 모르겠구나 / 나는 좋은 아내, 좋은 아들과 살다 간다 /심장마비 하루 다섯 번 / 포도껍질처럼 변해버린 그의 입술 / 병원에서조차 가망 없다고 / 집으로 모셔 온 그날 / 아우가 급히 청계천에서 사온 공업용 산소통에 / 기저귀 고무줄 코에 밀어넣었다 / 그리고는 그해 겨울을 넘겼다 / 모든 비난이 내게 쏟아지던 겨울 어느 날 밤 / 그가 나직이 물었다 / 무엇 때문에 다시 일어날 가망도 없는 내게 / 이토록 정성을 다하느냐고 / 내가 말했다 당신이 여태까지 베풀어 주신 것에 비하면 /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 저의 운동이라는 것이 힘없고 약한 이웃에 대한 /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냐고 / 만일 당신이 일찍 저희 곁을 떠나가길 내가 바란다면 / 나의 앞으로의 삶은 무엇이며 / 지나온 우리의 삶은 얼마나 잘못된 것이냐고 / 미어질 것 같은 당신에 대한 죄스러움을 위해서라도 /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 그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날 밤 / 잠든 내 손을 잡고 당신 손으로 호스를 빼고는 / 내 곁에 영원히 누웠다 / 이제 그토록 원하시던 복학도, 결혼도 하고 / 잠든 아이들 곁에 누우니 / 어둠 속에서 그가 내 곁에 와 함께 눕는다
-김영환 시집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중 임종-
지금까지 출간한 책만 26권 정도다. 지독한 글쟁이다. 시집은 열세 번 냈다. “꾸준히 썼다. 꾸준히. 글 쓰는 일을 즐거워하고 또 쉬워하고. 왜냐하면, 많이 썼으니까”라고 답했다.
신간도 나온다. 제목은 <비겁하거나 뻔뻔하거나>다. 핸드폰을 꺼내 저장돼 있던 표지를 보여준다. ‘변절자 김영환이 운동권에 건네는 국화’, ‘나는 민주화운동 유공자 증서를 반납한다’라는 소개글이 나와 있다.
“한창 인쇄 중이다. 그동안에 쓴 글들을 모아서 내는 건데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세상에 내놓기에 앞서 설렘과 걱정, 긴장이 오간다.
- 민주화 유공자 증서를 반납한 것, 아쉽지 않나.
“어느 순간 보니 우리가 기득권화돼 있더라. 광주를 포함해 민주화운동은 온 국민이 한 거다. 독점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과분한 대우를 받았다. 이제라도 벗어버린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 민주당에서는 자녀 교육·취업·의료·주택 등에 걸친 민주화 유공자법을 발의했다. 세습 특혜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영환은 “과거 동지들 위선에 분노와 연민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자신과 아내의 광주민주화운동증서와 명패를 국가보훈처에 돌려보냈다. 이번에 출간되는 책도 관련 폐부를 찌르는 일이 될 듯싶다.
7. 정치의 길 위에서
인터뷰는 막바지를 향해 갔다.
- 노동 운동을 고수하다, 치과를 운영했다. 그러다 정치를 하게 된 이유는?
“결혼도 했고 나이도 들었는데 전과가 몇 개 되니까 취업이 잘 안됐다. 노동자 위장 취업도 신원 조회에 걸렸다. 더는 무리라 보고, 일단 의사가 돼 좀 아픈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돈벌레처럼 되더라. 한 5~6년 열심히 생업을 하던 차에 정치권에 있던 김근태 선배가 민주화 운동 한 사람들 가운데 무슨 전과자만 있는 게 아니라 의사, 변호사 등도 있다는 구색이 필요하다며 나에게도 같이 하자고 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둬서였다. 경기 안산에 출마해 내리 4선을 지냈다. 정치의 사표는 김대중 대통령이다. DJ가 발탁해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과학영재학교, 농촌 지역 인터넷 보급, 여성과학지정할당제 등을 최초로 도입했다.
“이리 오래 할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뀔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 정치하면서 고민되는 것은.
“너무 보람되고 즐겁고, 내 인생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을 벌어놓지 않고 정치했으니까. 허덕허덕하면서 어렵게 하고 있다. 치과만 하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겠지만 다른 걸 하니 경제적 여유가 없다.”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비리나 스캔들 없이 깨끗하게 정치한 것에 자부심이 클 테지만 가족들한테는 죄인이 된 모습.
“다들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아내한테 미안하다.”
앞으로의 방향을 물었다.
“이 정권을 종식하는 거다.”
삶이 어렵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 지방선거 계획 등은?
“내년 3월 9일 대선이 끝난 뒤 내게 한 텀 내지 두 텀의 정치가 있을까. 그것은 지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근본적으로 결정할 시기가 올 거다. 당장은 모든 역량을 정권 교체하는 쪽에 바치고 싶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윤석열. “정치가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의외로 만난 덤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지난 7월 윤석열은 김영환을 찾아와 함께하자고 했다.
“싫어함에도 정권 교체를 위해 어쩔 수 없게 돕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아니어서 좋다. 윤석열은 기꺼이 돕고 싶은 후보다. 그에겐 불의와 싸울 수 있는 강건함이 있다. 인간적인 품성이나 정치의식, 상식적 판단으로 볼 때 굉장히 좋은 지도자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신뢰가 간다.”
정치 선배로서 어떤 점을 당부하고 싶을까.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게 정치다.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고 정치인의 사명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더 진보여야 된다. 진보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 무슨 말인가.
“보수가 더 사회적 약자와 서민에 대해 애정을 갖고 더 겸손하게 임해야 한다. 그래야 이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좌우명 : 꿈은 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