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민주당 내 ‘충청통’으로 유명하다. 충남 천안시 지역구 국회의원만 4선을 지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선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논란 역풍을 이겨내고 민주당 깃발을 든 채 충남지사에 당선됐다. 충남 지역에서 치러진 5번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는, 일명 ‘충남불패’ 신화를 가진 정치인이다.
지난 19일 강의실에서 만난 양 지사는 ‘충남 정치인’을 넘어선 ‘대한민국 정치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의 입에서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위기를 알려주는 각종 통계 지표들이 줄줄이 나왔다. 연단 위에는 대본도, 어떠한 참고 자료도 없었다. 수많은 숫자들을 외울 정도로 꿰고 있었던 것이다. 17대부터 20대 국회까지 변동 없이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으로 있었던 경력 덕분이다.
“보복위에서 이런 통계들을 받고 보면, 참 현실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아마 제가 보복위에서 대한민국의 사회적 병리와 병폐들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봐온 국회의원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에서 ‘위기 속 대한민국,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연단에 선 그를 〈시사오늘〉이 따라가 봤다.
“국가지도자가 이승만처럼 위기 의식 갖지 않으면 나라 망해”
양승조 충남지사는 “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2000년 ‘국내 100대 대기업’ 리스트에 들었던 기업들 중, 2010년에 100위권에서 탈락한 곳이 무려 41개다. 부단히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재정이 튼튼하더라도 결국 망하는 법이다”라며 위기의식을 갖고 현대 사회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은 기업에 해당하는 말만은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전만 하더라도 이승만 정부는 ‘우리가 전쟁나면 3일 안에 압록강 물로 밥 지어먹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3일 만에 역으로 서울이 함락됐다. 부단히 변화하는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또 지도자가 위기를 인식하지 않고 대처하지 않으면 그렇게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사회든지 위기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지금 얼마나 잘 나가고 있나. 총 GDP만 1조 6000억 달러가 넘는다. 세계 10위권이다. 우리보다 수출 많이 하는 나라도 5개국뿐이다. 세계 원조를 받던 ‘원조수혜국’에서, 원조를 주는 입장이 된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위기 요인이 득실댄다.”
“양극화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통합 불가능… 정치인으로써 부끄러워”
양 지사는 한국 사회의 세 가지 위기로 △사회 양극화 △고령화 △저출산을 꼽았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잠이 안 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각종 사회 통계 지표를 제시해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몇 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을 기억하실 거다. 그 친구 가방 속 컵라면을 기억하고 있다. 비정규직이었던 김 군의 한 달 월급이 144만 원이었다. 서울 고시원 방에서 자취한다고 치면 40~50만 원으로 주거비 내고, 10만 원으로 통신비 내고, 대중교통 요금 내면 144만 원 가지고는 일반 백반 하나 사먹기 힘든 사회다.
저임금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통계청 2019년 9월말 통계를 살펴보면,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임금노동자 중 36%다. 그들의 임금과 복지 상태는 또 어떤가. 건강보험 가입률은 48%고, 국민연금 가입률은 37.9%다. 평균 임금은 172만 9000원이다. 어떤 희망이 있을까? 그 급여로 대도시에서 어떻게 생활할까?
가구별 소득통계를 보면, 상위 가구 10%는 월 1134만 8000원 번다. 상위 20%는 942만 원이다. 반면 하위 20%는 132만 5000원, 하위 10%는 86만 4000원을 번다. 2인 이상 가구가 86만원 갖고 어떻게 생활하나?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만연해있다. 내가 그 안에 포함된다고 생각해보시라.
마찬가지로 정부 통계에서 ‘나는 하층민이다’라고 답한 사람이 39.7%라고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사회 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거라고 믿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22.7%인 반면, 열심히 해도 가망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답변한 사람은 65%다. ‘내 자식도 나와 똑같을 거다’라고 답한 비율은 55%다. 한국같은 경제 단위를 가진 나라에서, 65%가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위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통합은 물 건너간다. 저 같은 정치인들이 일차적으로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다. 젊은이에게 희망이 사치라는 말이 된 우리 대한민국 사회 현실이 저도 부끄럽다. 지도자라면 부끄러워야 한다.”
“노인 취업률 높다고? 자랑스러운 일 아냐…노인 빈곤 현실 증명하는 것”
그는 고령화 문제를 언급하며 “노인 2명 중 1명이 가난하고, 6명 중 1명꼴로 일을 해야 하는 사회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대한민국 9월말 통계를 보면 노인층이 전체 인구의 15.3%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우린 고령화사회(전체 인구 중 7%가 노인)에서 고령사회(14%가 노인)로 가는데 17년밖에 안 걸렸다. 초고령사회(20%가 노인)로 진입하는 데 딱 7년 걸린다는 통계가 나왔다. 2045년이 되면 고령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37%가 된다.
그럼 어떤 현상이 도래하는가? 0.98명의 젊은이가 1명의 노인을 모시는 ‘목말사회’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노인 빈곤율’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46.5%, 즉 어르신 두 분 중 한 분이 어렵게 산다. 경제적 문제로 스스로 목숨 끊은 노인만 해도 작년에 3593명이다. 대한민국 70세 이상 노인 취업률이 18.1%로 세계 1등이라고 한다. 이게 자랑스러운 일인가? 절대 아니다. 생산 현장에 있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안 되니까 6명 중 1분의 노인이 밖으로 나가시는 거다.
이런 노인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기초연금으로 해결하자고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국가 세금으로 12조 정도 쓴다. 앞으로 5~6년만 지나면, 노인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총 84만 명이다. 나중엔 감당이 안 된다. 저출산 때문에 당장 10년 후 취업 가능 연령대 인구가 훌쩍 줄었다. 망하자고 작정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할 수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회 기득권층은 범죄인… 청년들에게 범죄 저질렀다는 죄책감 있어”
양 지사는 이어 저출산 문제를 설명하며 “저출산 현상이 여러분께 와 닿기 쉽게 어린이집과 문방구의 통계로 설명하겠다”고 운을 뗐다.
“예를 하나 들겠다. 충남 지역에서 작년 1월 1부터 12월 30까지 어린이집 41개가 문을 닫았다. 한국 전체로 따지면 금년에 아마 최하 2000개는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직업 잃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어린이집 하나당 관계자 10명씩 잡아도 최하 2만 명이 실직한다.
문방구가 90년대엔 3만 개가 넘었다. 2017년엔 9900개도 안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학생이 그만큼 줄어서다. 마찬가지로 통계에 잡히지 않은 분유 산업, 유모차 산업, 태권도장 등 관련 업계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경기가 어려워졌다는 명목으로 일자리를 잃는다. 이런 분들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니 국회의원 쌈질 때문이니, 나름의 원인을 찾으면서 정치권을 원망하게 되는 거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2015년 출생아 수가 84만 8000명이다. 2016년엔 40만 6000명, 작년엔 32만 6900명이었다. 만 3년 사이에 11만 명, 25% 이상이 줄었다. 사회가 198개 국가에서 출생률이 1이하인 나라가 유일하게 대한민국이다. 0.9 정도로 집계됐다. 참고로 1.1명이 돼야 인구가 유지된다. 이런 상태로 가면 어떻게 되겠나.”
그는 국민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겠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이날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저 자신부터 우리 청년들에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사회 기득권층은 범죄인”이라며 자책을 드러내기도 했다.
“왜 애를 안 낳겠나. 희망이 없으니까 그렇다. 사회적 양극화 때문이다. 한국은 혼인 외 출생아 비율이 1.9%로, 세상에서 제일 낮은 나라다. 다시 말해 결혼을 해야 애를 낳는 사회인데, 결혼을 안 하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못 하는 거다.
경제적 여건이 불안한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엄두가 나겠나? 2030대 비정규직 비율이 15~20%다.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23%로 5명 중 1명이다. 직업이 없는데, 아니면 당장 내후년에 잘릴지 모르는데 결혼할 수 있나? 멀쩡하게 인문계 대학 졸업해도 월 200만 원도 못 버는 사람이 즐비하다. 언제 모아서 결혼하고 집을 살까. 서울 아파트 평균 매물가가 7억 9000만 원이다. 애를 낳으면 그 애들도 우리처럼 ‘거지꼴 못 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비율이 아까 전체 인구의 65%라고 말씀드렸다. 결국 청년들이 결혼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 것이 낫다는 걸 인식한 거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30 남성 상위 10%의 임금근로자들은 82.5%가 결혼했다. 반면 하위 10%는 겨우 6.9%만이 결혼했다. 뒤집어 말하면, 경제적 여건만 충족되면 청년 남성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그가 강의를 마치자, 이날 사회를 맡은 서정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숫자를 통해 뼈를 때렸다”고 평했다. 이에 양 지사는 “그래도 한국인은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다. 어떤 위기도 잘 극복해 왔던 게 우리의 저력”이라며 청중을 향해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여러분들이 한 번 쯤은 대한민국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미래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인식하길 바랐다. 그래도 문제 해결은 현재의 위기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국의 역사적 사례들이 증명해주듯 한국인들이 지혜를 모아 경제 양극화를 극복하고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