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조선의 건국 주체 신진사대부는 고려의 적폐세력인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제거하고자 과전법을 실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 마련이라는 속내를 감추고 적폐 청산을 내세워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했다.
신진사대부들은 새로이 양전을 실시해서 이를 기반으로 과전법을 만들었고, 토지 지급의 대상은 당연히 중앙에 거주하는 관료층과 지방의 토호세력이었다. 이는 과전법 수혜대상이 전·현직 관리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집권층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토지세를 받을 수 있는 수조권을 행사케 했다. 과전법은 제한적으로 일부 세습이 가능했고, 집권층은 이를 악용해 토지 소유를 확대했다. 권력은 경제력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의 권문세족이 토지 겸병을 통해 백성을 수탈하고 국가재정을 악화시킨 것에 비해 과전법은 농민 생활의 안정을 추구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진사대부도 권문세족과 똑같이 권력을 남용해 자신들의 부를 축적했다.
세조는 과전법을 대폭 수정했다. 수혜대상을 전·현직 관리에서 현직관리로 축소하는 ‘직전법’을 전격 시행했다. 조선 건국 후 집권층인 신진사대부에게 세습되는 토지가 늘어나자 새로 권력층에 편입한 신진 관료들에게 지급할 토지가 부족해졌다. 또한 잦은 정변으로 공신이 증가하면서 세습 가능한 공신전이 남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쿠데타인 계유정란을 통해 집권한 세조는 신진 관료를 달래고자 전직 관리들의 기득권을 제한키로 했다. 아울러 세습 가능한 수신전과 휼양전도 폐지했다.
세조에게 일격을 당한 전직 관료층의 반격은 토지의 사유화였다. 사전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토지였기 때문에 개간, 매입 등의 방법과 권력을 악용한 토지 집적에 적극 나섰다. 기득권층의 토지 사유화 확대는 사실상의 납세자인 농민의 부담과 고통을 가중시켰고, 국가 재정도 점차 악화됐다.
현직관리들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수조권을 남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조권을 남용해 농민에게 과도한 수취를 가했다. 성종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지방 관청이 수확량을 직접 조사해 조세를 수취해 관리에게 지급하는 ‘관수관급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토지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요원했다. 성종 재위 시절 직전법의 폐지가 논의됐고, 명종 때 직전의 지급이 불가능하게 됐다. 결국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완전히 소멸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배층의 토지 사유화와 국가재정이 악화됐다는 점이다. 그 결과 농민은 몰락했고, 이들은 과도한 빚에 시달려 노비가 되거나 유랑의 길을 떠났다. 일부는 임꺽정과 같은 도적떼에 합류했다. 조선은 민란의 시대에 돌입했다.
결국 국가가 토지제도에 손을 보면 볼수록,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무능한 지배층의 시장을 외면한 설익은 토지정책은 조선의 경제와 민생을 함께 무너뜨렸고, 얼마 안 있어 임진왜란이 터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8번째 부동산 대책인 12·16 부동산 정책이 나왔다. 불과 한 달 전 발표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고강도 부동산 정책이 또다시 나온 셈이다. 하지만 전셋값의 폭등과 과도한 대출 제한으로 현금을 많이 보유한 일부 부유층의 부동산 확보가 용이해졌다는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 있게 밝힌 부동산 시장 안정은 도대체 어느 나라 상황인지 매우 궁금하다. 시장 이기는 정부는 없다고 했다. 조선의 집권층이 토지제도에 손을 볼수록 기득권층의 토지 사유화 증가와 농민의 몰락이 촉진됐다는 역사적 교훈을 깨닫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