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순혈주의(純血主義)는 자문화 중심주의의 극치다. 자민족의 순수한 혈통만을 인정하고 타 민족의 피가 섞인 혈통은 배척하는 극단적 고립주의다. 현재와 같은 세계화시대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순혈주의는 전체주의 덫에 빠진다. 히틀러는 아리안족만이 세계 최고의 민족이라는 강력한 마약을 주입해 독일인의 광신적인 지지를 획득했다. 또 이를 악용해 6백만명의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일제의 민족말살통치도 마찬가지다.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아 한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고자 조선어 사용 금지와 창씨개명이라는 정책을 남발했다. 일본인이 주인이고 한민족을 종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낳은 비극이다.
문제는 히틀러와 일본 제국주의처럼 순혈주의를 맹신하는 독재자들은 이를 고귀하고 신성한 민족주의으로 위장해 국민들을 전체주의의 늪에 빠지게 한다. 순혈주의 광신자들을 단결시키는 마취제로서는 이만한 것이 없다. 순혈주의 마취제는 민족 공멸의 촉진제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의 패망과 한족의 치욕이 증명한다.
반면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은 민주주의의 롤모델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신대륙을 개척한 유럽 이주민이 만든 신천지다. 비록 노예무역이라는 추악한 인신매매로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감추고 싶은 역사도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현명히 융화시켜 오바마와 같은 흑인 대통령이 8년이나 집권했다. 바이든 현 정부의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은 흑인 여성이다. 순혈주의 독재자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다.
미국도 백인 우월주의가 존재한다. 지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이용해 집권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이를 과신해 우방국과의 잦은 마찰로 세계 최고의 민주국가라는 명예를 잠시 잃긴 했지만 지난 2020년 대선을 통해 회복의 길로 복귀하고 있다.
또한 지난 몇 년 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캠페인도 백인 경찰에 의한 잇따른 흑인 사살 사건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시민운동이다. 미국은 잠시 일탈이 있으면 민주시민에 의해 곧바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성공과 독일과 중국의 멸망은 ‘순혈주의’ 수용 여부에 의해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순혈주의 덫에 걸려 외부 인재 수혈에 인색하면 도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글로벌 경제 시대에는 우수한 인재 영입이 경영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7월 1일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핵심인재를 확보와 공정한 인사시스템 구축’을 강조했다. 신 회장은 이날 “핵심인재 확보와 육성은 CEO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과거의 성공 방식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핵심인재 확보에 우리 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밝혔다.
최근 롯데지주가 헬스케어팀을 신설하고 삼성전자 출신인 우웅조 상무보를 팀장으로 선임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강조한 “핵심 인재를 확보하고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라”에 따른 발 빠른 조치로 읽혀진다.
우웅조 팀장은 미국 ‘보스턴 칼리지’ 컴퓨터공학 출신으로 ‘LG전자’와 ‘SK텔레콤’을 거쳐 ‘삼성전자’에서 경력을 쌓은 우수한 인재로 알려졌다. 롯데지주는 정보통신(IT)업계에서 풍부한 경력을 쌓은 우 팀장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발동시킬 계획으로 전망된다.
롯데지주가 우 팀장을 스카우트한 것은 신동빈 회장이 강조한 CEO 역할 중 ‘미래도 책임지고 있다’는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 즉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외부 수혈에 의한 핵심 인재 확보의 적극적인 행보다.
신동빈 회장이 순혈주의보다는 외부수혈을 통한 개방적 인사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인사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