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드민턴 ‘고의패배’, 책임질 사람 없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여자 배드민턴 ‘고의패배’, 책임질 사람 없나?
  • 신상인 기자
  • 승인 2012.08.07 1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망신에 ‘실격’, ‘추가 징계’ 보다 무서운 것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신상인 기자]

이번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에 출전한 여자 복식 한국 2팀과 중국 1팀, 인도네시아 1팀 등 총 4개팀 8명의 선수들이 ‘고의패배’ 파문으로 실격 처리됐다.

문제가 된 팀은 중국의 왕샤오리-위양(세계랭킹 1위) 조와 한국의 하정은(대교눈높이)-김민정(전북은행) 조, 정경은(KGC인삼공사)-김하나(삼성전기) 조, 인도네시아의 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시아 폴리 조다.

실격 처리와 관련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제출한 이의신청 역시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연맹회장 강영중)에서 모두 기각한 상태다.

▲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조별리그에서 주심이 한국 선수들에게 블랙카드(실격)를 꺼내자 성한국 코치가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결국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은 ‘올림픽정신을 기만한 비신사국’으로 낙인 찍혔고, 배드민턴 고의패배 파문이 런던올림픽 최악의 스캔들로 번지고 말았다. 현지 언론은 ‘역겨운 장면’이라고 비난했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장(IOC)은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고의패배 사건과 관련, 실격 이상의 추가 조치도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로게 위원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AP와의 인터뷰에서 고의 패배를 시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여자 복식 선수 8명을 실격시키기로 한 BWF의 결정을 지지한다면서 “필요하다면 IOC 차원의 별도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IOC는 실격된 선수에 대해 이번 대회 선수 자격을 박탈하고, 선수촌에서 내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다. 또 문제에 연루된 선수단 관계자, 감독, 트레이너 등을 조사할 수 있다.

런던올림픽이 한국 선수단에게만 유난히 가혹하다고 분통을 터뜨린 국민들은 “오심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나라망신”이라면서 기가 막혀 했다. 안방에서 TV를 통해 경기를 본 국민들의 반응은 열대야를 넘어 차갑기만 하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한국 선수들에게 귀국 조치를 내렸다. 실격 처리된 선수들은 AD카드를 반납하고 선수촌에서도 퇴출돼 더 이상 런던에 머무는 것이 무의미해졌다고 판단해서다.

이들은 4강 대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일부러 경기 내내 성의없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범실에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이들의 플레이는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방송됐다.

해당 경기에 대해 외신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배드민턴 선수들이 이익을 위해 일부러 졌다”, “중국과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들이 경기에 이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스포츠정신을 훼손시켰다”고 보도하며 당시의 경기를 비판했다.

강영중(대교눈높이) BWF 회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BWF는 여자복식 경기에서 ‘고의패배’ 의심을 받은 4개 팀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거쳐 실격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이번 결정은 BWF 선수위원회와 집행위원회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며 “향후 올림픽에서 고의패배가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나선 토마스 룬드 사무총장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올림픽에서 조별리그 방식을 유지하면서 ‘고의패배’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올림픽 배드민턴은 2008베이징올림픽까지 완전 토너먼트 형태로 진행됐으나 런던올림픽부터 조별예선과 토너먼트가 결합된 방식으로 바꿨다.

자국 선수와의 경기를 피하거나 쉬운 상대를 만나기 위한 고의패배가 공교롭게도 이번에 국내 선수들이 많았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추가 징계는 한국에 돌아간 이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네티즌(@kulwa*****)은 이번 결과를 “배드민턴 여자 복식조 선수들, 중국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건 분명 잘못된 선택이었고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건 그 무대를 위해 노력한 선수들의 땀을 무시한 처사” 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suen****)은 “올림픽에 가장 값진 것은 메달의 개수나 색깔이 아니라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똑같은 태극기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선 다른 종목의 선수단에게 부끄러워해야 하고, 사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책임질 사람 없는 여자 배드민턴 ‘고의패배’…근본적 원인은?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기 방식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일부 조별리그 방식을 채택해 부작용을 확인했던 BWF가 이번 올림픽에 라운드 로빈 방식의 예선 리그를 도입했다. 일찌감치 대진이 결정되는 조별리그 방식은 손쉬운 대진표를 위해 승부를 조작할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일부 외신도 “쉬운 상대를 만나기 위해 불성실한 플레이를 하는 것은 다른 스포츠에서도 간혹 이용되는 일”이라고 보도하며 BWF의 조치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도 BWF는 이번 올림픽에서 한번쯤 져도 되는 상황을 공개적으로 만들었다. BWF가 그 동안 묵인해온 져주기 게임은 선수들에게 ‘도덕 불감증’을 줬을 수도 있다.

한 나라에 두 팀이 포함되는 배드민턴에서, 동시간대 마지막 조별예선을 펼쳐 각국의 꼼수를 막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BWF의 잘못이 크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BWF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조별리그 랭킹 1위와 최하위가 첫 번째 경기를 해야 한다는 룰을 어겨 IOC의 제재를 받고, 경기 바로 전날 대진일정을 싹 바꿔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조별리그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조차 갖추지 않았다.

하지만 스포츠계 일각에선 선수들에게만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을 떠넘긴 채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BWF가 과연 선수들에게 ‘실격’을 줄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안타까울 뿐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중국만 징계를 줄 경우 반발이 무서워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끼워 무리한 처벌을 했다는 관측이 있다. 공교롭게 이들 팀이 각종 국제대회 우승을 독식하는 아시아권이라 배드민턴 종주국 영국을 비롯, 세계 배드민턴의 들러리로 전락한 유럽의 화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일부 네티즌은(@sou7412) “ ‘고의 패배’라는 단어 적절하지 않다. ‘작전 패배’다. 이와같은 상황이 연출될수 밖에 없던 세계배드민턴 연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선수를 퇴출시키는 것은 그들을 책임을 떠 넘기는 것 밖에 안된다”라며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경기에서 불거진 ‘고의 패배’ 사건으로 실격당한 한국 선수들이 지난 4일 오후 5시경 귀국했다. 배드민턴 대표팀 여자복식 담당 김문수 코치와 선수 4명은 국내 여론을 의식한 듯 취재진을 피해 지정된 출구가 아닌 다른 출구로 빠져나왔다.

심경을 묻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이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을 떠났다.

실격을 당한 세계 랭킹 1위 선수인 위양은 트위터를 통해 은퇴 의사까지 발혔다. 고의패배가 일으킨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부끄러운 져주기 논란의 후폭풍이다.

한편 지난 4일(한국시간)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com은 “당신은 더 유리한 대진을 위해 일부러 진 배드민턴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15만6천여 명이 참여한 여론조사를 통해 절반이 넘는 70%의 사람들은 ‘Yes’ 라고 답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