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진성현 가톨릭관동대학교 항공운항서비스학과 교수)

베테랑에게 가장 큰 적은 ‘자기 과신’이다.

베테랑은 한 분야에서 경력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을 지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테랑의 기량을 높이 평가하고 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항공승무원 사이에도 베테랑은 존재한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적어도 20년 이상 또는 비행시간 2만 시간의 숙련자들을 베테랑이라 할 수 있을 듯 싶다. 업계 내에선 존경과 경외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베테랑이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자만에 빠지면, 회생 불가능한 오류와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심리학자인 호스윌과 맥케나의 연구 결과를 들 수 있다.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해당 연구에서 운전자의 과신은 위험을 과소평가해 과속 및 사고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테랑 항공승무원도 예외일 순 없다.

지금부터 설명할 사고도 ‘베테랑’의 자기 과신이 불러온 사례 중 하나다. 1935년 10월 보잉이 새로 개발한 최신형 폭격기 모델 299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기의 피터힐 기장은 18년 동안 60대의 최신 항공기 성능을 테스트한 베테랑 시험 비행 조종사였다.

사고는 피터힐 기장이 시험비행 이륙 전 날개 고정 장치(wing gust lock)를 해제하는 것을 잊어버린데서 비롯됐다.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라 해도, 사람의 기억과 능력에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대표적인 사고였다. 

보잉은 이 사고를 계기로 체크리스트를 처음 고안했다. 체크리스트는 사람의 기억과 경험에만 의존하던 비행 관행을 타파한 획기적인 안전장치로 자리 잡았다. 이후 사고 모델이었던 299는 B-17 폭격기로 불리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대활약을 펼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2013년 7월 아시아나항공 B777-200 항공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하는 과정에 추락했다. 사고 직후만 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은이 조종사 미숙을 일축했다. 해당 기장이 29번의 샌프란시스코 비행 경험과 충분한 기량을 갖춘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기장이 정상적인 고도와 속도보다 낮고 느리게 활주로에 접근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베테랑 기장도 실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베테랑일수록 더 초심자가 돼야 한다. 영국 프로 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다 승리 기록을 세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자서전을 통해 “나는 승리할 때마다 다시 처음이라 생각했다”며 자만하지 않으려 애써온 축구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는 “자만은 성공 경험이 있는 개인과 조직에게 있어 심각한 질병”이라고까지 강조했다.  

항공승무원도 초심을 지녀야 한다. 안전한 비행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안전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얼마나 오래 근무했는지 또는 얼마나 숙련됐는지는 결코 중요치 않다.

항공기 사고의 70% 이상은 기술적 결함보다 조종사의 인적오류가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 밝혀진 사실이다. 조종사의 과신은 경청마저 멀리하게 만든다. 이것이 소통 불능으로 발생되는 전형적인 ‘인적오류 사고’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적어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과도한 지혜와 지식을 경계하라는 삶의 충언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물망초심, 勿忘初心)으로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되지 말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진성현 교수

-(전)대한항공 객실 안전팀장
-(전)대한항공 수석 사무장
-(전)가톨릭관동대학교 학생처장
-(전)가톨릭관동대학교 항공대학 초대학장

-(현)항공운항서비스학과 학과장
-(현)한국항공보안학회 학술이사
-(현)한국교통안전공단 항공안전 분석위원
-(현)한국교통안전공단 항공안전 분석위원
-(현)한국교통안전공단 항공안전 분석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