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재앙…철저 대비 없었다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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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재앙…철저 대비 없었다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3.07.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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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분의 책임 물어 재발 방지를
지하시설 官災 참사 되풀이
인재성 피해 반복은 막아야
전례없는 방재대책 마련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많은 비가 내린 15일 충북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에 차량이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 당국과 경찰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많은 비가 내린 15일 충북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에 차량이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 당국과 경찰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장마철 폭우로 전국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그칠 줄 모르는 집중호우로 전국이 쑥대밭이 됐다. 산이 무너져 집들을 덮쳤고, 제방이 터져 물이 지하차도로 쏟아지면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잇단 위험 신호와 경보에도 일선 현장에서의 안일한 대처와 늑장 대응이 이번 폭우 피해를 키운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기후변화로 자연재해는 갈수록 대형화하고 있다. 기상청이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를 도입할 정도이지만, 당국의 대응 수준은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이번 사고는 여실히 보여준다. 기존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인식과 조치가 없다면 피해는 갈수록 혹독해질 수밖에 없다.

대비에 실패한 인재(人災)

같은 유형의 재해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불가항력의 천재(天災)가 아니라 대비에 실패한 인재(人災)다. 그런 점에서 오송 지하차도 참변은 사실상 살인 행위라고 해도 될 만큼 지자체와 건설 업체의 책임이 무겁다.

운행 중인 차량 15대가 물에 잠겨 빠져나오지 못한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는 사고 경위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결국 ‘인재’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고 발생 수 시간 전에 금강홍수통제소가 “교통 통제가 필요하다”고 연락했는데도 즉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신속하게 진입로를 막고 차량 통제를 했었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경북 등 전국에서 발생한 수해를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다. 세월호 사고, 이태원 압사 참사, 포항 지하 주차장 침수 사고 등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안전 불감증’ ‘당국의 대처 미흡’을 모두가 입이 닳도록 외치고 있음에도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장마철에는 인명 피해가 유독 크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와 지자체의 허술한 대응이 인명 피해를 더 키웠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송 지하차도의 경우 금강홍수통제소에서 문제가 된 미호강에 홍수경보를 내리고 인근 도로의 통제 필요성을 통보했는데도 행정 당국의 교통 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로 13명이 숨진 것은 기록적 폭우를 참작하더라도 담당 공직자들의 무사안일과 무책임이 빚은 관재(官災) 말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비롯해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청 등의 관련 공무원들에 대해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할 정도다.

인명과 재산 손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16일 오후 6시까지 사망·실종자는 모두 46명에 이른다. 수천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인명과 재산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전국에 돌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정부의 방재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많은 비가 예보된 상황에서 당국의 재난 대응 체계가 가동됐는데도 피해 집계는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사람만 17일 오전 11시 현재 49명(사망 40·실종 9)에 달해 수해로 치면 12년 만에 최대 규모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올해는 기후이변으로 폭우가 내릴 것으로 보고 철저한 사전 대비를 천명했었다. 대통령까지 국무총리에게 과할 정도로 대비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렸건만 이런 참사가 빚어졌다. 같은 재앙이 되풀이된 것이다.

기후변화로 예상을 뛰어넘는 집중호우가 연례화된 지도 이미 몇 해가 지났다. 그런데도 유사한 피해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나토 정상회의 등 해외 순방을 마치고 이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책 모두 동원하라”고 지시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 뿐이다. 그전에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국민 모두의 안전의식이 흐트러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유형의 사고 빈발

최근에도 같은 유형의 사고가 빈발해 온갖 대책이 수립됐음을 고려하면, 더욱 죄질이 나쁘다. 2020년 7월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로 3명이 사망해 구청 공무원 11명이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돼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8월엔 서울 관악구 빌라 반지하 침수로 일가족 3명이, 9월엔 하천 범람으로 경북 포항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물이 쏟아져 7명이 숨졌다. 이런데도 행정안전부 장관은 야당 탄핵소추 공세로 반년 가까이 공석이다.

더 참담하고 안타까운 것은 비극을 막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사고 2시간 전에는 홍수통제소에서 해당 지자체에 유선으로 대피와 통제 필요성을 알렸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또 1시간 전에는 인근 궁평1리 주민이 “제방이 유실될 것 같다”며 119에 신고했고, 119는 이를 시청에 알렸다고 한다. 하지만 시청도, 구청도 지하차도 통제는 하지 않았다. 해당 구청은 “물이 순식간에 쏟아져 통제가 어려웠다”고 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불과 2분여 사이에 물이 차오른 건 맞지만 4시간이 넘는 경고의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반드시 그 지휘 계통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산사태와 가옥 침수로 인한 이재민이 8000명 가까이 되고 농경지 피해도 140㏊에 이른다. 극한 호우를 감안하더라도 장마철 인명 피해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다. 윤석열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 출국에 앞서 관계 부처와 지자체에 집중호우 발생 시 과도할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한 지시를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다.

새롭게 등장한 기상용어 ‘극한호우’

기상청은 최근 ‘극한 호우’ 긴급문자를 도입했다. 그만큼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가 대형화하고 그 피해도 커지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물론 자연재해를 인력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예고된 재해는 철저히 대비하면 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특히 반복되는 인재성 피해는 없어야 한다.

주말 피해는 ‘물 폭탄’이 쏟아진 충북과 경북에 집중됐다. 15일 충북 청주 오송에서는 하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지하차도를 덮쳐 버스 등 차량 10여 대가 침수됐다. 이 사고로 확인된 사망자만 9명에 이르고, 소방 당국이 잠수부까지 투입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하천 범람과 지하공간 침수 상황이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로 당시의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반복되는 재난에도 불구하고 지하공간에 대한 대비가 미흡한 것이다. 산사태로 인한 인명 피해도 반복되는 재난이다. 경북에서만 주말 400㎜가 넘는 폭우에 따른 산사태로 2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제방 관리 허술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본래 제방보다 높이가 낮은 미호천교 부근 제방이 범람할 우려가 커지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15일 새벽 보강 작업에 나섰지만 고작 모래를 쌓아 올리는 정도였다. 행정 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겹쳐 참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집중호우에 따른 지하차도 침수로 해마다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정부와 지자체는 그때마다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으니 참담한 노릇이다. 실종자 구조 등 피해 수습이 시급하지만 사고 경위를 밝히고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올 들어 새롭게 등장한 기상용어가 극한호우다. 시간당 30㎜ 이상이면 집중호우로 분류하는데, ‘시간당 50㎜ 이상’과 ‘3시간 90㎜’를 동시에 충족하는 경우 사용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13년 48건, 2017년 88건, 지난해는 108건이 극한호우 범주라고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상 패턴이 잦아지는 것이다. 이러니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사고가 돌출한다. 이번에 큰 인명 피해가 난 경북 예천도 평소 산사태 주의구역이 아니다. 그러나 잦은 비로 물러진 지반에 다시 물폭탄이 떨어지니 속수무책이다. 재해 전문가들은 이상기후 수준이 기존 방재대책으로는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체계 정비 서둘러야

엘니뇨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집중호우 양상이 갈수록 예측불허다. 미증유의 기록적 호우로 재난이 대형화하는 만큼 대비책도 피해 복구를 넘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 침수 위험이 큰 지하공간과 저지대는 물론 산사태, 공사장·옹벽·축대·제방 등의 붕괴 위험을 사전에 예측·분석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재난 대비에 과잉이란 없다.

물폭탄 피해가 커진 데는 중앙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종합적이고 효율적인 수해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도 지난해 물막이판 설치, 부실 시공 방지 등을 위한 ‘수해피해방지법’을 쏟아냈지만 관련 법안 대다수는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정치권이 재해 직후에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후속 대책 챙기기에는 소극적이었던 셈이다.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인지 기록적 집중호우가 매년 반복된다. 피해 양상도 비슷하다. 알고도 당하는 후진국형 재난이다. 관행적 대응에서 탈피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호우 대책 쇄신이 필요하다. 늘 하던 대로 땜질만 대충 하면 선량한 시민들이 물난리 속에서 허무하게 희생되는 여름철 비극을 끊어낼 수가 없다.

대응 컨트롤타워부터 재정립을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가 12년 만에 가장 컸다. 또 산사태와 농경지 유실, 이재민 발생, 열차 운행 중단 등의 피해도 막대하다. 이번 ‘극한 호우’는 강수량이 매우 짧은 기간에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물폭탄 참사를 키웠다. 하지만 예고된 재난이었다는 점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문제다. 기상청은 18일까지 충청권, 전북, 경북 북부 내륙 지역에 최대 300㎜ 이상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전국에 산사태 위기 경보 ‘심각’ 단계도 발령 중이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철저하고 신속한 대비와 대응으로 추가 호우 피해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국민들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

기후변화로 앞으로 한반도에는 기상 이변에 따른 홍수·가뭄·태풍 위기 등이 잦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취약 지역을 점검하고 철저한 사전 대비와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체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특히 환경부와 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와 지자체 등으로 나뉜 물 관리 행정과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부터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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