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 “‘누칼협’으로 입 막는 시대…사회 공동체 위기”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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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누칼협’으로 입 막는 시대…사회 공동체 위기” [현장에서]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8.09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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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작가, 7일 국회 의원회관서 ‘김한규 청년읽기’서 강의
“청년, 산업화·민주화 서사 공감 못해…21세기형 의제 찾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임명묵 작가가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김한규와 청년읽기’ 강의에서 ‘21세기의 ’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시사오늘
임명묵 작가가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21세기 청년층의 새로운 쟁점’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시사오늘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지난 6월부터 매주 6회에 걸쳐 청년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김한규와 청년 읽기’ 시간을 가졌다.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그 마지막 주자로 <K를 생각한다>의 임명묵 작가가 나서 ‘21세기 청년층의 새로운 쟁점’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임 작가는 ‘왜 청년층 민심이 전과 달라졌나’라는 질문에 앞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청년층 민심의 변천사에 관해 설명했다. 

 

노무현 패러다임 ’탈권위’ 그리고 민주당 ‘복지국가’ 담론
저성장·양극화 시대…권위주의와 성장담론에 지친 청년


임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에 등장한 X세대는 지금도 민주당 내에서 강력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문화가 개방됐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도시 문화를 소비했다. 이들의 지지로 말미암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노무현 이후 보수진영이 10년 동안 집권해 ‘보수 우위’ 사회 인식이 강할 때에도, 청년층에선 ‘진보 지지’ 성향이 굉장히 강했다고 한다. 임 작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1970~1980년대생이 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엄청난 좌절을 토로하는 것을 목도했던 기억난다고 했다. 

임 작가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상징성으로 ‘탈권위’를 꼽았다. 30년 넘게 이어진 군부 독재 하의 강한 군사주의, 권위주의, 기존 유교문화, 상명하복 문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청년층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노무현과 민주당은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탈바꿈시켰고, ‘탈권위’라는 문화적 상징을 선점해 청년층 세대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인터넷상에서 떠돌던 밈을 들어 양대 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청년에게 명령을 내리는 보수’ vs ‘청년과 대화하는 소탈한 진보’ 식으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임 작가는 민주당이 청년층에게 어필했던 이유 중 하나로 ‘복지국가 담론’을 꼽았다. 1970년대만 해도 연평균 10%대였던 경제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 5%를 밑돌게 됐다. 2010년 이후 2~3%대로 내려왔다. 고도성장은 21세기 들어 종말을 고했고, 양극화·경쟁체제가 심화했다. 그런 상황에서 2010년대 중반에 ‘헬조선’ ‘수저 계급론’이 나왔다. 

“20세기 한국 시대정신은 박정희가 말했던 ‘잘 살아보세’다.  선진국이 저 멀리 앞서고 있고, 우리는 뒤처져 있으니 ‘채찍질해야 한다’ ‘달려야 한다’는 인식에 대한 거대한 합의가 있었다. 한국전쟁과 식민지 시대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IMF 외환위기를 지나고도 고도성장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의 정서가 그대로 한국 사회에 작용했다. IMF 이전의 소비문화를 경험했던 사람들, 청년층은 양극화를 의식했다. ‘아무리 일해도 집값 오르는 수준을 따라갈 수 없다’는 회의감이 불거졌다.  N포 세대, 88만원 세대 등 단어에서 이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우리도 이제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헬조선’ ‘수저론’ 등 경쟁사회, 양극화된 사회에 대한 반발이 확산했다. 권위주의 문화와 성장담론에 지친 청년층에게서 ‘노오력’이란 조롱 섞인 단어가 등장했다.”

2010년대에 무상급식 논란 등 ‘보편적 복지’ 대 ‘선택적 복지’ 등 복지담론이 있었다.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복지국가’를 수입해 “이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개발국가 모델 학습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유럽식 사회구조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값 등록금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러한 복지국가 담론은 이후에도 청년층의 정서적 기반이 됐다.

 

산업화·민주화 경험 못 한 청년 세대의 등장


보수진영과 민주당 진영은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는 상징적 자본을 갖고 있다. 임 작가는 당시 시대 상황을 몸소 체험해 보지 못한 청년, 민주당의 서사와 의제 양자 모두에 공감하지 않는 세대가 등장한 점을 현 청년 세대가 변화한 분기점 중 하나로 짚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에서 민주당 진영이 주장한 말에 공감하지 않는 이들이 인터넷상 등 수면 밑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베의 등장이다.

수면 밑에서 민주당에 극심한 반감을 키워가는 이들이 나타나는 동시에 2012년~2017년 사이 청년층 내에서 박근혜 정부 탄생을 두고 ‘어떻게 해도 보수 우위를 이길 수 없는 것인가’하는 좌절감이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이들은 “그래도 민주당이 낫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저쪽을 뽑을 수는 없지”라는 심리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게 임 작가의 설명이다. 그렇게 탄핵 사건 이후로 문재인 정부가 등장했다. 하지만 5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복지국가·남북화해, 시대와 의제의 괴리
‘도덕의 무기화’, 조국사태 거치며 부메랑


임 작가는 문재인 정부가 앞서 말한 ‘탈권위’와 ’복지국가’라는 의제를 들고나온 2017년을 전후로 시대가 변화했고, 2012년에 당선됐다면 그렇게까지 괴리가 벌어지지 않을 의제인데 시대가 맞지 않아 현실과의 괴리가 크게 벌어졌다고 진단했다. 

임 작가가 꼽은 문재인 정권의 3대 의제는 소득주도 성장과 부동산 정책으로 연결되는 ‘평등한 복지국가 건설’, ‘남북화해’, 도덕성과 탈권위, 변화 의지를 함축한 ‘적폐청산’이다. 

“2010년에 복지 담론이 제기될 때만 해도,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가 많이 언급됐다. 이 국가들이 2010년대 초반까지 어느 정도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 브렉시트를 겪으며 사민주의가 힘을 잃었다. 세계화된 경제 상황에서 복지 사회,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속 가능하기 어렵고 경쟁력 면에서 미국·중국과 같은 나라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회의적 인식이 확산했다. 

동아시아 상황도 변했다. 2017년 시진핑 2기가 들어섰는데, 1기 때만 해도 중국이 미국 체제에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도전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진핑 정권이 더욱 공고해진 데다 미국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며 미중무역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격변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국가 건설과 남북화해를 추진한 결과는 좋지 못했다. 2017년에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뚫고 등장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란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의 실제 성과는 저조했다.”

임 작가는 ‘적폐청산’과 관련해선 민주당이 ‘도덕의 무기화’를 정치적으로 굉장히 잘 활용했지만 ‘조국 사태’ 등 도덕성 논란으로 부메랑이 자신에게 더 크게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보수정권 10년 동안, 민주당이 도덕의 잣대로 상대 진영을 비판하는 일이 많았다. 청년층도 이에 공감했다. 건국 이래로 한국 사회의 실권, 기득권을 보수 세력이 쥐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의 무기화는 양날의 칼이다. 내가 도덕을 무기로 휘두르는데, 내가 도덕적이지 않다면 그 피해는 두 배가 된다.  대놓고 악을 천명하는 사람보다 위선자가 욕을 더 먹어야 되겠느냐는 반문도 있지만, 인간은 예측 가능성에 대한 강한 선호 본능이 있기 때문에 반전 이미지에 대한 영향이 더 크게 작동한다. 도덕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레토릭을 사용했지만, 그러한 언어에 맞는 도덕성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 도덕성 논란이 발생했다. 

이를 돌파하려면 ‘우리 도덕적이에요’ ‘쟤들보다 나아요’가 아니라 능력으로 보여줬어야 하는데, 정부 2~3년 차를 지나며 능력으로 보여주기에 정책 추진력도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임 작가는 탈권위가 가진 딜레마에 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탈권위 이미지를 갖고 있던 민주당도 권위적이다’와 ‘권위를 다 해체하면 질서가 사라지지 않냐. 최소한의 권위는 있어야 하지 않냐’는 상반되는 비판이다. 

그는 “한쪽에서는 민주당도 권위적인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보수 진영은 ‘탈권위가 혼란함을 일으키지 않냐’고 비판하는 가운데 ‘권위를 어디까지 행사할 것이냐, 자유와 평등을 어느 수준까지 이야기할 것이냐’에 대해 갈팡질팡한 면이 있다”고 전했다. 

임 작가는 민주당이 가진 ‘민주화 서사’도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짚었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난 뒤에도 그 시대의 감성, 언어를 사용해 말하는 상황이 펼쳐지며 ‘40대 진보 대학생’이란 단어가 나오는 등 기성세대가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점, 청년층의 문화가 적절히 수용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데에는 보수 정당의 상황이 좋지 못했고, ‘상대보다만 잘하면 된다’ 식의 수세적 감각으로 이긴 선거였다”며 “‘탈권위’ ‘복지국가’ 의제가 점점 작동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 나면서 청년층 내에서 자신들이 겪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갈등 구도, 대립전선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2022년, 한국 사회 기존 서사 극단적으로 붕괴한 해
‘누칼협’ ‘꼬이직’ 등장…무너지는 신뢰·가속화된 위기
“한국인 묶을 새로운 신화 문화적 합의, 정치가 찾아야”


임 작가는 2022년을 과거 한국 사회를 작동시켰던 서사와 의제가 극단적으로 붕괴한, 상징적인 해였다고 말했다. 2021년 4·7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이대남(20대 남성)’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이들은 페미니즘에 반감을 느끼고, 중국의 부상 등 시대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회의적이며, 지정학적 대결 의식이 강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다수 청년은 특정 정당과 일체감을 느끼지 않으며, 선거의 ‘캐스팅 보트’로 떠올랐다.   

임 작가는 국민의힘이 내건 공정과 상식이란 슬로건은 민주당이 내걸었던 복지국가, 탈권위 슬로건과 비견될 만큼 무게감이 있지 않으며,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또한 정치적 엔터테이너로서의 성격이 강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준석 신드롬과 관련해선 “의제가 고갈되거나, 명확한 의제를 계속 생산해 낼 세계관 없이는 지속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다수 커뮤니티에서 보수가 2030세대의 민심을 잃은 것이 많이 확인되고 있다”며 “청년층이 진짜로 경합세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2021~2022년에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공무원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공무원 처우 박하다. 매일 추가 근무에 비상대기다. 수당도 최저임금이다’라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식으로 이 단어가 사용됐다. 사람들이 불만을 말하면 ‘꼬이직(꼬우면 이직해)’ 식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웃기면서도 심각한 말이다.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고, 공공(public)은 개인이 느끼는 어려움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원을 투입해야 할지,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이야기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거다. 그런데 누가 불만 있다고 하면 ‘누칼협’으로 입을 막아버리는 거다. 경쟁-격차 사회에 대한 피로감, 그 피로감에 대한 반발 이 모든 것들이 일거에 ‘듣기 싫어’ ‘찡찡대지 마’ 식으로 되는 거다. ‘사회’라는 단위 자체, 사회적 합의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기 싫어하게 된 거다.”

임 작가는 강연 말미에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문화적 합의를 이뤄낼 것인가, 미중갈등과 지정학적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이 생존할 방법은 무엇인가, 사회적 위기가 가속화하고 신뢰가 사라져가는 상황 속에서 한국인을 묶을 만한 새로운 신화는 무엇일까 등을 찾지 못해서 다들 불만족스러운 것이고, 이를 대신 찾으라고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청년이 주로 모인 자리에서 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새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이라면 굳이 청년이 아니더라도 세대를 가리지 않고 지지받을 거로 생각한다. 양대 정당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패러다임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데, 21세기에는 다른 의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거로 생각한다. 같은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적 전환과 위기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낼 사람과 정당을 바란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한편, 임명묵 작가는 1994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및 중동 지역을 전공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역사와 지역학, 국제관계, K-팝 등 대중문화, 정보시대 사회 문화 등이다. 지은 책으로는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가 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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