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만 주고 지침이 없으니 사고 날 밖에…건설업계 스스로 바꿔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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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만 주고 지침이 없으니 사고 날 밖에…건설업계 스스로 바꿔 나가야”
  • 정승현 기자
  • 승인 2023.09.05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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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건설의 현재와 미래’ 포럼 개최
이복남 “현장을 전혀 다른 각도로 봐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승현 기자]

“일감을 내려줄 뿐 다른 지침이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복남 서울대 건설종합연구소 특임연구위원은 4일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열린 ‘K-건설의 현재와 미래’ 포럼에서 최근 잇따른 건설사고의 원인으로 받은 일감을 수행하는 방법을 지시하지 않는 한국 건설산업의 하도급 문화를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위원은 “하도급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구조에서, 해야 할 일을 주면서 어떻게 일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며 “작업 절차서가 없고, 도면 그대로 시공했는지 확인하는 ‘품질확인 절차’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신 사고가 날 때마다 희생양 찾기에 골몰하고, 발주자의 책임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 총체적 책임성(total responsibility)이 결여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이번 포럼은 건설산업 안전사고의 구조적 원인과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로,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가 한국건축가협회, 한국CM협회와 공동 주최하고, 서울대 건설기술연구실이 주관해 열렸다. 철근이 누락된 LH 공공임대주택과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 등 공동주택 부실 시공으로 건설산업에 대한 불신이 여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비판 여론에 직면한 건설업계가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포럼에서 ‘K-건설의 현안에 대한 긴급진단’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이 위원은 건설현장에서 반복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설업계에서 현장을 전혀 다른 각도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건설을 건설답게 만들려면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여러분들이 현장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은 또한, 건설업계가 현재 고비용 저효율의 건설 생태계에서 벗어나 저비용 고효율의 새로운 생태계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산업이 국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그 같은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위원은 “윤석열 정부는 국정 과제로 민간 주도 정책과 글로벌 시장 선점, 디지털 중심 산업 상태계를 내세웠다. 현재의 생태계 구조로 과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라며 반문했다.

청년 인재가 줄어드는 현실도 짚었다. 이 위원은 2000년과 2020년의 20대 건설기술자 수를 비교하며 “젊은 건설 종사자가 70% 넘게 줄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실태조사를 인용, “건설업계 평균 임금이 다른 업종보다 낮다”거나, “건설기술인이 스스로 건설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긍정보다 3배 많다”는 점도 언급했다.

끝으로 이 위원은 건설산업을 바꿀 대책을 세워놓고 실행하지 않는 악순환 구조를 지적하며 “1999년 이후 한국 건설에 대한 혁신대책이 9번 수립됐지만, 실행이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은 그 원인에 대해 “법과 제도만 신경쓰고, (건설산업) 서비스 판매자(seller)와 수요자(buyer)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K-건설의 현재와 미래' 포럼에서 유정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건설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오늘 정승현 기자
'K-건설의 현재와 미래' 포럼에서 유정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건설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오늘 정승현 기자

한편, 유정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이날 ‘구조물 붕괴사고의 숨겨진 원인들’을 주제로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등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 교수는 사고 방지 조치에 관한 설문을 인용하며 “설계나 시공 전 과정에 걸쳐 발주자의 프로젝트 관리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거나, 발주자의 책무성과 적극적 개입이 강화돼야 한다는 답변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학계 및 건축 실무자 9명이 모여 진행한 좌담회에서는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김경주 건설관리학회 회장은 “이권카르텔이 결국 전관문제일 것”이라며 “사업책임자가 발주한 기관 출신이 아니면 사업을 못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주가 중요한 건설업계 현실에서 전관을 고임금으로 고용하면, 실무하면서 능력을 키워온 엔지니어는 그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有備無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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