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부실 원흉이 된 ‘브릿지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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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PF 부실 원흉이 된 ‘브릿지론’ 왜?
  • 정승현 기자
  • 승인 2023.12.28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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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부동산PF발 채무 감당 못해
본PF 전이되는 브릿지론 부담 재무부담 취약하게 해
위기시 자금 조달 방안 마련도 부동산PF 평가 요인
“장기적으로 시장 체질 개선과 비상계획 수립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승현 기자]

서울 여의도의 태영건설 사옥.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의 태영건설 사옥. ⓒ연합뉴스

건설업계와 금융권을 감돌던 부동산PF발 위기감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을 계기로 증폭되는 가운데 PF를 쉽게 해주는 브릿지론이 부실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부동산PF 위기가 태영건설만이 아닌 건설업계 전반의 우려를 초래하는 뿌리로 브릿지론이 지목되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착공부터 완공까지 프로젝트의 진척도가 높아 브릿지론에서 시작된 대출 자금을 수월하게 상환할 수 있었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프로젝트 완수와 수익 창출이 어려워 우발채무가 발생하고 자금 유동성 확보에 실패하는 것이다. 태영건설은 이러한 구조에 더해 PF만기 연장에 실패하면서 부채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브릿지론은 본공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빌리는 자금이다. 토지를 담보로 사업의 잠재성을 검토받아 대출을 끌어오기 때문에 토지PF라고도 불린다.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기대효과 등 잠재성이 주요 판단 기준이 된다. 따라서 사업 시행자가 보유 자산을 작은 규모로 투입해도 브릿지론을 통해 대규모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사업성 기대만으로 시행사에 대규모의 자금을 빌려주면서 실제 현금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출이 실행될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브릿지론 단계부터 대출 심사를 엄격하게 바꾸고 건설사가 대출에 대한 비상계획을 내실있게 수립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공사에 착수하더라도 브릿지론은 계속 재무부담으로 남는다. 대출한 토지구입 자금을 본PF로 조달해 상환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브릿지론 채무가 본PF로 넘어가는 것이다. 본PF는 구체화된 공사계획이 나와 인허가까지 마친뒤 공사가 확정된 다음 이용되는 자금 조달 창구다. 이 때는 사업이 좌초될 가능성이 착공 전에 비해 줄어들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다. 프로젝트 공사를 마친 뒤 분양이 성공해야 상환을 위한 자금 조달이 가능해서다.

이러한 PF 자금흐름은 한국의 독특한 구조로 대개의 국가에서는 PF자금을 조달하는 창구의 담보가 비교적 확실하다. 미국은 브릿지론을 상환할 때 본PF 대출자금을 동원하지 않는다. 투자사를 통해 추가 자금을 확보해 대출금을 갚는 식으로 토지에 얽힌 채무를 해결하고 본PF는 건설자금 조달에만 이용된다. 또한 분양 과정에서 받은 중도금으로 공사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며 선분양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사업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쓰일 뿐 사업비용으로 직접 이용되지 않는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위험을 분담할 투자주체가 다양하지 않고 투자자의 담보권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당장은 시행사의 PF대출 자격 요건을 높이면서 사업장의 ‘옥석 가리기’를 이행하고, 장기적으로 건설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후분양이나 시행사 자본금 요건 강화 같은 대책으로 시장의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실한 브릿지론이 위기설(說)을 워크아웃까지 이끈 계기로 비상상황에서 충분하지 않은 태영건설의 자금조달 여력도 꼽힌다.

태영건설과 TY홀딩스는 과도한 부채 비율과 우발채무 규모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기설 대두 이후 자구책을 꾸준히 내놨다. TY홀딩스는 태영건설의 부실 채무를 직접 매입하고, 태영건설의 사옥 담보권을 해제했다. 또 계열사 태영인더스트리와 평택싸이로를 각각 지날달과 이달 매각하고, 대주주 윤석민 회장의 사재 출연도 예고하는 등 재원을 마련해왔다. 태영건설이 진행하는 서울시 성수동 오피스2 개발 사업의 PF대주단은 전날까지만해도 태영건설의 자구책을 내는 노력을 지켜보며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태영의 자금 확보 노력이 과도한 PF채무에 따른 불안정성을 해소하기에 부족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태영건설 유동성 위기의 뿌리는 과도한 우발채무 비율이다. 나이스평가정보가 지난 27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쌓인 태영건설의 별도 기준 우발채무는 3조6000억여원으로, 이달과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PF보증 규모가 각각 702억원과 3952억원이다. 특히 만기가 내년 3월인 한국투자증권과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의 규모가 2800억여원에 달한다.

PF는 다른 대출 프로그램과 비교해 불확실성이 크므로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자금조달 대책이 적절히 마련돼야 한다. 보증을 서는 회사의 자금력이 탄탄하거나, 급하면 계열사 또는 모회사의 자금을 당겨오는 방안이 마련돼야 PF 대출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 실제로 ‘자금 실탄’을 조달할 창구가 어떻게 마련됐느냐에 따라 건설사의 신용도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연구위원은 건설사들이 부동산PF에 대한 자금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세우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자금 비상계획으로 옥석 가리기를 하기에는 기준이 모호하다”면서도 “기업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일단 사업을 벌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현실성 있는 자금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장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태영건설 워크아웃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달 11일께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다. 당장 KDB산업은행은 워크아웃 신청 직후 워크아웃 개시 여부와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 제1차 협의회 소집을 채권자들에게 통보했다. KDB산업은행은 “태영건설의 정상화를 위해 태영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금융채권자, PF대주단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하루빨리 경영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워크아웃 절차를 성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며, 더욱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태영건설로 거듭나가겠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有備無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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