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 파동…이재명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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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 파동…이재명 속내는?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3.01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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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동의안 가결 지켜보며 ‘과반 의석 무의미’ 판단했단 분석
제1야당 유일 대권주자로 차기 대권 노리는 ‘DJ모델’ 따를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설훈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훈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흔히들 총선 승패는 ‘대통령 인기’가 가른다고 합니다. 현 정부 지지율이 높으면 여당이 유리하고, 반대의 경우 ‘정권 심판론’이 작동하면서 야당이 유리하다는 거죠.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생각보다 정권 심판론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1992년 이후 8차례 총선에서 여당이 6차례나 승리했으니까요. 다른 두 차례 선거에서도 야당은 겨우 1석 앞서는 데 그쳤습니다. 대통령 임기 중·후반 치러진 선거가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이 갖는 파괴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오히려 총선 승패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공천’이었습니다. 누가 더 신선한 인물을 많이 영입하느냐, 누가 더 잡음 없이 공천을 마무리하느냐가 선거 결과와 직결됐죠.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제20대 총선입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정청래·김현·전병헌·강기정 등을 컷오프하며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한편으로는 양향자·김병관 등 기업인 출신들을 영입하면서 중도 확장 행보를 펼쳤습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다 이긴 게임’인양 오만하게 행동했죠. 그 결과가 새누리당의 참패, 민주당의 역전승이었습니다.

이처럼 역사가 야당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감한 인적 혁신과 이념적 확장이 승리의 최소 조건이라는 겁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 여당이 ‘헛발질’을 할 때 야당은 승리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공천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친명계냐 비명계냐’가 된 듯하며, 중도 확장보다는 흔히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요.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봤더니, 단 하나의 결론이 도출됐습니다. ‘총선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을 이재명 당’으로 만드는 게 이 대표의 목표라는 거죠. 공천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 대표가 총선 승리를 동력 삼아 차기 대권에 재도전하려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총선에서 이기면 이 대표의 리더십은 더욱 공고해질 테고, 이는 차기 대권 경쟁에 가장 큰 자양분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이 이 대표의 마음을 바꿔놨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161석을 가졌음에도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만큼, 단순히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겁니다. 각종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가 차기 대권으로 가기 위해선 ‘비명계가 다수 포함된 151석’보다 ‘친명계로만 구성된 민주당’을 만드는 게 유리하다고 믿게 됐다는 거죠. 다음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내용입니다.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단순히 자기가 체포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음 대선 전에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명계를 계속 당에 두면 끊임없이 자기 지위를 위협할 거라고 보는 거다. 총선에서 이기고 자리가 계속 흔들릴 바에야, 총선에서 지더라도 자리를 굳건하게 가져가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이 대표는 지금 자기 대권 가도의 걸림돌을 쳐내고 있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러지 않았나. 자신을 확실히 지지해주는 70~80명만 있어도 국정 운영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게 꼭 틀린 판단인 것 같지도 않다.”

요컨대 총선에서 지더라도 당이 친명계로만 구성된다면 이 대표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사라지므로, 다음 대선 때까지 당권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계파 무관 ‘통합 공천’을 하면 공천 과정에서의 잡음은 줄어들고 선거 결과도 더 좋겠지만, 대권을 노리는 이 대표 개인 입장에서는 ‘확실한 우군’만으로 자리를 채우는 게 이득이라는 의미죠.

물론 오로지 자신의 세력만으로 차기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불가능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총선을 통해 힘을 잃어버린 비명계가 이 대표를 대체할 만한 대권주자를 키워내기는 어려울 것이고, 어차피 차기 대선은 ‘정권 심판이냐 재창출이냐’의 구도로 치러질 확률이 높다고 보면, 결국 제1야당의 유일한 대선 후보인 이 대표가 ‘해볼 만한 게임’이라는 거죠.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9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DJ만을 위한 당’인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불과 79석을 얻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차기 대선까지 제1야당의 유일한 대권주자라는 지위를 굳히는 데는 성공했고, 결국 대선 직전 김종필·박태준 전 국무총리와의 연합을 통해 판을 뒤집은 바 있죠. 설사 총선에서 패하더라도 제1야당의 당권만 확실하게 챙겨갈 수 있다면, 대권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선례가 있다는 얘깁니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도 “국민회의 창당 당시 DJ에 대한 평판은 땅으로 떨어졌고, 진영 내에서도 DJ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엄청나게 터져 나왔을 정도였다. 게다가 빨갱이니 대권 4수생이니 하는 부정적 이미지도 컸다. 하지만 압도적인 지지로 제1야당의 대선후보가 되고, DJP연합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대통령이 되지 않았나. 이 대표도 이런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확실한 내 편’으로만 구성된 제1야당을 만들어 차기 대선으로 직행하겠다는 대권 로드맵.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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