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서 조국혁신당에 비례대표 몰아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호남, 민주당의 아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하지만 판에 박은 듯 민주당 일색으로 일관한다고 보기 어렵다. 2002년 3월 국민참여경선에서 보인 ‘노무현 광주의 기적’, 2016년 총선 국민의당 돌풍, 2024년 총선 등을 통해 보여준 호남의 선택이 그랬다.
가장 최근 선거를 살펴보면, 호남은 전국에서 조국혁신당에 가장 큰 지지를 보냈다. 3월 7일 창당한 조국혁신당은 한 달 만에 4·10 총선에서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하는 약진을 이뤘는데, 그중 호남 지역에서 얻은 결과가 주목할 만하다.
조국혁신당은 전국 기준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연합(26.69%)에 버금가는 24.25% 득표율을 얻었다. 광주·전북·전남 등 호남 지역의 경우 128만 명(호남 유효 투표수 약 45.6%)이 민주당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대신 조국혁신당에 표를 던졌다. 민주연합은 호남에서 약 38.1% 비례대표 득표율로 조국혁신당에 못 미쳤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총선이 끝난 지난 4월 23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남에서의 선전에 대해 “호남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보다 총선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를 더 잘 실현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윤(反尹·반윤석열)’ 기치를 보다 선명히 내건 조국혁신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호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당, 2016년 총선 호남 28석 중 23석
민주당·문재인 ‘호남홀대론’에 유권자 실망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16년 총선에서 불었던 국민의당 녹색바람이다. 당시 호남 지역구 28석 중 23석이 국민의당 몫으로 돌아갔다. 선거 때마다 호남에서 몰표를 받았던 더불어민주당은 전남 1석, 전북 2석 확보에 그쳤다.
정당 비례대표 득표율 또한 광주(53.34%), 전북(42.79%), 전남(47.73%)에서 민주당(광주 28.59%·전북 32.26%·전남 30.15%)보다 높았다.
국민의당이 창당 2개월 만에 어떻게 이런 성과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민주당 호남 패배 원인으로 ‘호남홀대론’을 꼽았다.
참여정부 당시 형성됐다는 ‘호남홀대론’은 호남인사들이 소외됐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문 전 대표를 향한 강한 불신과 반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바탕에는 ‘민주당과 문재인은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호남을 위해 무엇을 해줬는가’라는 호남 유권자들의 실망감과 분노가 존재한다.
호남은 2002년 대선에서 고(故) 노무현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2012년 대선에선 문재인 후보에게 92%에 달하는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호남이 내가 좋아서 찍어줬나’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호남 민심에 상처를 줬다. 참여정부가 ‘대북송금 특검’을 결정한 것도 친노·친문 집단의 원죄로 남아있다.
공직 후보 검증 과정에서 일부 호남 인사들이 탈락하자 ‘호남홀대론’은 더욱 증폭됐다. 결국 이 비난의 화살은 당시 민정수석으로 후보검증을 담당했던 문재인 전 대표로 이어졌다.
- 2017년 2월 17일 자 <시사오늘> ‘문재인을 위협하는 반문(反文) 정서’ 실체, ‘셋’’
또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에서 친문(親文·친문재인)계와 갈등 끝에 탈당한 안철수 의원에 대한 기대도 한몫했다.
‘친노 패권’을 비판하고 나선 당내 비주류, 동교동계 인사들이 국민의당에 합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전남 목포 박지원·여수을 주승용·광주 동구남구을 박주선 의원 등은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함께 정치를 했고, 지역 기반을 오래 다졌다.
2006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 노무현 ‘광주의 기적’
2006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국민 경선. 광주는 대세론의 주인공인 이인제도 DJ 최측근 한화갑도 아닌 ‘노무현’을 택했다.
운명을 가른 3월 16일 광주 경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선거인단이 많은 경기도 경선까지 2위를 유지하기만 하면 마지막 서울 경선에서 역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문화일보>와 SBS가 의뢰한 조사에서 내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오차 범위 안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근소하게 앞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보도가 나가자 한나라당 집권에 공포감을 느끼던 광주 민심이 심하게 요동쳤다.
천정배 의원이 공개적으로 노무현 지지를 선언해 내 선거캠프에도 국회의원이 생겼다. 3월 15일에는 전남대 정환담 교수와 반부패 국민연대 서명원 전남광주본부장 등 266명 광주 전남 지식인들이 노무현 지지를 선언했다. 노사모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2주 전부터 모든 역량을 광주에 투입해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184쪽.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은 득표율 37.9%로 1위를 했다. 노무현은 자서전에서 “민주당 국민경선은 사실상 여기서 끝났다”고 기록했다. 이후 이인제, 한화갑, 김중권 후보 등이 차례로 사퇴했다. 승기를 잡은 노무현은 4월 27일 서울 경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호남 유권자들은 대세와 어긋난 선택으로 전체 선거판에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이는 호남이 무조건 민주당을 선택할 거라 단정하고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보수 텃밭인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민심과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호남 민심은 당 내외 정치 지형 변화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기능한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17일 대화에서 “같은 지역주의로 비판을 받더라도 보수 유권자들은 당 지도부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반면, 호남은 상황에 따라 정치 세력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며 “보수 텃밭인 영남 민심과 달리 더 주체적인 경향성을 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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