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초, 명동 사채시장 들썩…회수율 7%뿐
이후 경조사등 실질적 이용…66.6% 회수율
코로나19 펜데믹땐 10장중 9장꼴 자취 감춰
고금리에 장롱속 5만원 다시 은행으로 이동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올해 6월23일 5만원권 발행 15주년을 맞습니다. 지금의 5만원권은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은행권 중심권종으로 자리 잡았지만 발행 초기만해도 5000원권과의 색상 혼동, 환수율 저조 등의 민원 및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만원권 신권 발행 이후 36년만의 새 고액권 발행인만큼 논란도 많았던 5만원권. 은행권 중심권종으로 자리잡기까지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겠습니다.
2009년 6월23일 5만원권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우역곡절이 많았습니다. 1973년 만원권 발행 이후 경제규모 확대, 물가상승 등에 맞게 은행권 최고액면을 상향 조정하기 위해 추진된 고액권 발행은 2006년 12월 국회에서 고액권 발행촉구 결의안을 의결하면서 속도를 냈지만 한국은행의 도안인물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습니다.
당시 한은은 5만원권 도안인물로 신사임당을 선정한 배경에 대해 “여성 및 문화예술인으로서의 대표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며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의지 제고와 여성의 사회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문화 중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자녀의 재능을 살린 교육적 성취를 통하여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었습니다. 당시 10만원권 도안인물로 선정된 백범 김구와 비교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과 시대에 맞지 않게 현모양처(賢母良妻) 정신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따랐습니다. 또한 한은이 추진하던 10만원권 발행은 결국 취소되기까지 했으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최고액면은 5만원권에 머물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우려가 컸던 부분은 시중에 풀린 5만원이 유통되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첫 발행 이듬해인 2010년 연간환수율이 40%, 이후 2011년과 2012년 60%까지 치솟았던 회수율은 2013년을 기점으로 급감하더니 2015년에는 25.8%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는 시중에 풀렸던 5만원권 10장중 7장꼴로 자취를 감췄다는 말입니다. 등장 첫해 7.5%에 머물던 것과 비교하면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발행 이슈가 아닌 시점에서 회수율 저조는 문제점으로 거론됐습니다. 단순히 공급 부족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고액권들이 대거 지하경제로 유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요. 당시 명동 사채시장이 고액권 확보를 위해 떠들썩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죠. 신용카드 또는 수표와 달리 세무조사 추적대상이 될 우려, 즉 꼬리표가 없는 고액권은 지하경제와 궁합이 좋았습니다.
다행히 이후 2019년 기준 연중 회수율이 66.6%로 오르고 누적회수율 역시 50%대를 넘었습니다. 발행된 5만원권 전체 중 절반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는 말이죠.
5만권 회수율 지표와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은 또 있습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5만원권 회수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시점이 있습니다. 무려 17.5%까지 떨어지며 시중에 풀린 10장중 고작 1~2장만 실질적으로 유통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는 코로나19가 결정적 계기로 꼽힙니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회수율은 2018년 67.4%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60.1%, 그리고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2020년 24.2%, 코로나 팬데믹이 덮친 2021년 17.4%까지 떨어졌으며 이후 코로나19 엔데믹과 함께 2022년 56.5%, 2023년 67.1%로 빠른 속도로 회복하게 됩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해 각종 대면 거래가 위축돼 화폐유통 역시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전통적으로 현금매출 비중이 높은 음식숙박업, 운수업, 여가서비스업 등이 직격탄을 맞았죠.
이후 회수율 회복세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 코로나19 엔데믹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고금리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은 역시 시중금리 상승이 예비용 및 가치저장 목적의 화폐수요 감소 등에 주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금리로 예금금리가 높아지면서 금고 속에 잠자고 있던 5만원권들이 대거 은행권 예금계좌로 들어간 영향이라는 설명입니다.
비록 당초 계획보다 최고액면이 높아지지 못했고 발행과정에서 회수율 저조 등 우려가 제기됐지만 5만원권 도입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한국은행이 5만원권 발행 10주년을 맞아 2019년 6월 발간한 ‘5만원권 발행 10년의 동향 및 평가’ 자료에 따르면 많은 국민들이 5만원권을 소비지출, 경조금 등에 일상적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2018년 경제주체별 현금사용행태 조사 결과 국민들은 거래용 현금의 43.5%, 예비용 현금의 79.4%를 5만원권으로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5만원권의 용도로는 소비지출에 43.9%, 경조금에 24.6%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때로부터 5년이 더 지난 현재는 경조금 사용비중은 더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은은 5만원권 등장의 긍정적 효과로 국민들이 경제거래에 필요한 은행권 수량이 감소함에 따라 상거래시 수수, 은행에서의 입출금, 휴대목적의 소지 등에 편의가 증대되고 시간도 절약됐다고 자평했습니다.
특히 5만원권 1장이 만원권 5장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제조, 유통, 보관 등 화폐관리 비용이 대폭 감소했다고 하죠. 불편한 자기앞수표를 대체한 효과도 긍정적입니다. 5만원권 발행 전 고액 현금처럼 사용되던 정액(주로 10만원) 자기앞수표를 거의 대부분 대체해 자기앞수표 사용에 따른 비용과 불편을 해소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10만원 자기앞수표 교환 장수는 2008년 9.3억장에서 2018년 0.8억장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사실상 1회용(평균 2주일 정도 유통되다가 폐기)으로 쓰였던 자기앞수표의 제조, 정보교환·전산처리 및 보관 등 유통 과정에서 발생했던 상당한 사회적 낭비요인이 거의 소멸된 셈입니다.
이처럼 5만원권의 긍정적 효과에 더해 화폐유통 구조 안정화가 지료로도 확인되면서 앞서 무산된 10만원권 도입 주장 목소리도 다시금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10만원권 발행 무산은 정부에서 인플레이션 우려 및 뇌물로 인한 부정부패 조장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패 조장을 이유로 10만원권 발행에 제동이 걸린 거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처벌법 강화도 아니고 고작 10만원권 도입을 포기한다고 부정부패가 사라지겠냐는 지적이었습니다.
특히 당초 고액권 도입 목표 핵심이 10만원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만큼 5만원 도입 후 15년이 지나는 현 시점에서 10만원권 도입이 사실상 고액권 도입 정책의 마무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의 은행권 권종수는 4~7개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5만원권 도입전엔 3종에 불과했어서 많은 편이 아닙니다. 당시 10만원권 및 5만원권 2종 동시 발행을 추진한 것도 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해 추가 발행 여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물가상승률을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10만원 도입 논의가 당장 이뤄질 가능성이 낮아보입니다. 백범 김구를 지폐로 만나볼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찾아올지 지켜볼 부분입니다.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