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왕국㉒ ‘회식에 불참하면 결석’ [이순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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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왕국㉒ ‘회식에 불참하면 결석’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4.10.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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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오후 6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이 시간에는 버스에 빈 좌석이 한 좌석도 없고, 어느 때는 손잡이조차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승객이 꽉 찬다. 

아마도 저쪽 반대편에 일자리가 많은 모양이다.

오후 7시 50분에 미화 방 앞의 출근부에 사인을 하고, 흉악한 전화기를 들고 감독한테 전화를 했다. 

분명히 전화를 받기는 했는데 감독의 응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주위가 몹시 시-끌 벅적했다. 아직도 회식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감독은 이내 말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일단 작업복으로 갈아입기는 했으나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혼자서 우두커니 방바닥에 누워있는데 오후 9시가 돼서야 떠-들-썩- 하니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모두 부리나케 작업복을 갈아입고는 후다닥 모두 밖으로 몰려나갔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화장실 휴지를 걷어 지하 5층에 갖다 놨다. 

미화방으로 오니 바로 옆- 감독 사무실 벽에 걸린 칠판에 적힌 큰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앞으로 회식에 불참하는 사람은 결석 처리함.’

여자들은 오늘따라 눕지도 않고 벌게진 얼굴들을 해가지고는 신바람 나게 떠들어 댔다. 재순도 벌게진 얼굴로 씩씩대며 벽에 몸을 기댄 채 뭔가 생각에 잠-긴-듯했다.

항시 뭔-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신나게 떠들어 대는 여자는 구 여사다.

“순옥아, 너 오늘 3만 원 냈지? 나도 3만 원 냈다. 아마 오늘 3만 원 이하로 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걸? 낄-낄-낄.”

‘좋아 죽겠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는데, 구 여사는 또 신나서 떠들어댄다.

“이번, 토요일 날 소장님 첫 딸 백일이라잖아…순옥아, 너도 갈 거지?”
“언니, 나 이번 달 지출이 너무 많아…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내일 너 월급 탈 거잖아? 그리고 이번 달에는 더 이상 행사 없어….”
“요즘 금반지 반 돈에 얼마나 하지? 그래도 백일이니까 반 돈은 해야지?” (계속)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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