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모두 지하 5층으로 모였는데 감독과 순옥은 보이지 않았다.
“순옥이는 왜 안 데리고 가요?”
재순이 반장에게 물었다.
“모르지-뭐…내가 뭐 알-수 있나-?”
반장은 남의 일 말하듯 했다.
“반장님이 가서 데리고 와 야죠…”
재순이 반장을 재촉했다.
“반장님, 늦어서 안-돼요. 그냥 가요…”
유리창 담당인 길자의 재촉이었다.
반장이 말없이 엘리베이터의 9층을 눌렀다. 항시 9층에서 모두가 내리면 반장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8층으로 누른다. 기계를 8층에다 내려놓고 다시 9층으로 올라와야 했기 때문이다.
반장이 9층으로 올라오면 엘리베이터는 누가 건들지 않는 한 그대로 멈춰있다. 모두가 기를 쓰고 불나게 속도를 올려가며 9층 바닥청소를 끝냈다. 그제야 반장은 9층 바닥 청소도구들을 지하 5층 도구창고에 옮겨놓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 8층으로 올라와 기계로 바닥 청소를 시작한다. 이 시간 이후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반장이거나 감독만으로 제한된다.
그 외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청소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 시계가 딱 1시를 가리키면 약 10분 정도의 휴식을 위하여 모이는 곳이 있다. 지상 7층 에스컬레이터 옆의 넓은 공간이다. 유일하게 CCTV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계를 돌리는 사람은 모일 수가 없다. 기계는 새벽 1시 30분 까지는 무조건 지하 2층에 가 있어야만 해서다. 지하 2층은 통로가 복잡하고 장애물이 많으므로 일일이 마대를 이용한 손작업이 요구된다. 힘이 센 남자보다는 섬세한 여자의 손이 더 필요한 공간이다. 새벽 3시가 되면 외곽 청소 일이 펼쳐진다. 절대로 여자가 할 수 없는 일이므로 남자인 반장의 몫이 된다. 필히 새벽 1시 30분까지는 기계를 지하 2층에 옮겨 놔야 정해진 시간에 외곽 청소 일을 하러 갈 수가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모여 엘리베이터 위로 깜빡이는 숫자를 보니 층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멈춰 있다. 그것은 아직도 순옥이 감독과 함께 있다는 뜻이고 꼼꼼한 반장이 분명 순옥의 일까지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반장은 오늘 새벽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기는 영- 글렀다고 나는 생각했다.
“순옥이 이 년은 왜 여태 안 오는 거야?”
재순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앙-앙 댔다. 다른 여자들이나 나는 재순의 말에 아무도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내 현재의 시간과 엘리베이터 층수를 메모했다.(계속)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