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조사 하나가 정치권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여론평판연구소>가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무선 RDD방식, 응답률 4.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로 나타나면서입니다. 계엄 전보다도 높은 지지율에 야권에선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며 고발까지 검토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문항 설계 자체가 특정한 방향으로 (결과를) 유도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편향적 여론조사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시민 작가도 MBC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자기들끼리 믿기 위한 (여론조사)”라면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평가절하했습니다.
현재는 고발 검토에서 선회에 중앙선관위에 우선 이의 신청부터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행정 절차를 착수하는 대로 머지 않아 법정 소송전에 돌입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거로 보입니다.
전체적인 조사 방식과 결과를 보면, 야권의 지적에는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공개된 여론조사 질문지에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에 대한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을 강제 연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거나 ‘부정선거 가능성에 대한 의혹 해소를 위해, 선관위 선거시스템에 대한 공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등의 문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조사방법론에선 ‘질문지에는 가치판단을 암시하는 내용이 포함돼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가능한 가치중립적이고 표준화된 언어를 사용해야 조사 결과에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법 논란’, ‘부정선거 가능성’과 같은 단어가 포함된 해당 조사의 질문지는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줄 소지가 있습니다.
또한 질문에서 편향성이 느껴질 경우, 응답 도중 전화를 끊는 중도 이탈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 특정한 정치적 이념을 가진 유권자들의 여론이 과표집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여타 여론조사에 비해 ‘오염’ 위험이 높은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도 자신을 보수라고 답한 사람은 262명인 데 반해 진보라고 답한 사람은 201명에 그쳤습니다. 보수 과표집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도 지난 6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체포영장에 대한 불법 논란이라는 단어,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 연행’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는데, 그러면 전화를 끊고 나가는 분이 많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약간 바이어스(편향)된 사람만 남아서 통계가 잡힐 수도 있다”며 “이렇게 길게 질문하는 것은 응답자를 현혹시킨다. 깔끔하게 ‘동의하냐 동의 않냐’를 연속적으로 묻는 게 낫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자기들끼리 믿기 위한 여론조사’라고 폄하하는 것도 옳은 해석 방법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7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무선 97%·유선 3% 자동응답 방식, 응답률 5.9%,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3%포인트)에 따르면, 응답자의 44.5%가 윤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거나 체포를 철회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불발에 따른 정국 혼란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에도 39.1%가 민주당 등 야당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윤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거나 체포를 철회해야 한다’, ‘정국 혼란의 원인이 민주당 등 야당에 있다’는 등의 응답이 꼭 윤 대통령 지지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 일부에서도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여론조사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민주당 입장에서도 주의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100% 신뢰하면서 탄핵에 대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완전히 무시하면서 여전히 ‘역풍 따윈 없다’고 하는 것도 진실과는 먼 얘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40%라는 숫자에 연연하기보다, 향후 이어질 여론조사의 추이를 살펴봐야 국민의 진짜 ‘민심’을 알 수 있을 겁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