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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의 화려한 복귀, 권노갑이 돌아왔다.
<2014 주목할 정치인 (36)> “통합신당창당 막후 성사…향후 역할 기대”
2014년 03월 08일 (토) 윤명철 기자 tdc007@nate.com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 통합신당창당 추진에 막후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권노갑 상임고문 ⓒ뉴시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이 정치권을 뒤흔들며 화려한 복귀신고를 했다. 지난 2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연대에는 권 고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의 맏형이자 정치 원로인 권 고문이 안철수 의원을 설득해 신당 창당이 성사된 것으로 보도됐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의 어부지리 승리가 예상되던 차에 야권 원로인 권 고문이 야권통합을 추진한 것이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을 만났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회동에서 권 고문은 안 위원장에게 “더 큰 곳에서 새 정치의 뜻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통합방식에 대해서도 민주당과 5대5 방식의 통합신당 창당 추진을 권유했다고 한다. 특히 안 위원장은 지난 2일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하자마자 권 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고문님만 믿고 간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8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야권통합신당을 이끌어낸 노정객 권노갑의 정치력에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권노갑 상임고문은 호남출신이 아니다. 그는 1930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목포 개항 이후 전라남도 목포시로 이주해 목포시에서 자랐다. 종교는 천주교다. 목포상업학교를 거쳐 1953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해방 직후 DJ를 만났다. DJ는 권 고문의 목포상고 4년 선배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자 그의 참모 역을 맡으며 자연스레 정계에 들어왔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이 시작된 것이다.

권 고문은 DJ와 영욕을 함께 나눴다. 71년 일명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국내로 들어온 DJ는 기나긴 연금에 들어간다. DJ는 이 시기에 강요된 침묵과 고난의 세월을 측근들과 함께 보냈다. 이 과정에서 가신과 비서 그룹로 형성된 ‘동교동계’ 가 탄생한다. 권노갑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1세대는 한화갑ㆍ김옥두ㆍ이용희ㆍ남궁진ㆍ이윤수 등 1960년대부터 함께 해온 인사들이다. 이번 신당 창당 추진단장인 설훈 의원은 2세대다.

동교동계는 YS의 상도동계와 더불어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세력의 양대 축으로 명성을 떨친다. 그 중심에 권노갑 고문이 있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실패로 돌아가고 신군부가 들어섰다. 신군부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그를 보안사로 체포했다, 갖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압력을 받은 신군부는 DJ를 형집행정지로 풀어줘 미국으로 보냈다.

이 시기에 권고문의 활약이 시작된다. DJ를 대신해 동교동계 관리를 맡았다. 이때 사람들은 그와 ‘리틀 DJ' 한화갑을 일컬어 "양甲"이라고 불렀다.

1987년 6월 항쟁과 6·29선언으로 DJ는 정계에 복귀했다. 비록 1987년 대선에서 DJ가 낙선했지만 이듬해 권노갑 고문은 국회에 입성한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목포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14대 총선에선 똑같이 목포에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15대 총선에선 전국구로 3선에 성공해 야권의 대표적 중진으로 명성을 날린다. 1997년 대선이 다가왔다. DJP연합과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운 DJ는 드디어 대통령의 꿈을 이룬다. 권노갑도 정권의 실세로 발돋움한다.

권력의 핵심이 된 권 고문과 동교동계는 당정을 주무르는 막강한 파워그룹이 됐다. 하지만 DJ의 임기 5년 동안 줄곧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됐다. 특히 권노갑 고문과 한화갑 두 사람의 갈등이 심각해져 구파, 신파로 분열양상을 보였다.

결국 DJ정권 말기가 되자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002년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국정원 차장 김은성을 통해 진승현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2003년 항소심에서 무죄로 석방됐다. DJ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자 그도 정계에서 은퇴했다.

   
▲ 노병들이 돌아왔다.국민동행 지도부와 함께 한 권노갑 고문ⓒ뉴시스

야권통합신당의 설계자, 용각산 권노갑

정계 은퇴 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시통역사를 목표로 영어공부에 매진하던 권 고문이 정치권에 돌아왔다. 그는 지난 1월 8일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국민동행)'을 발족시켰다. 국민동행은 범야권 정치원로와 시민사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온건개혁과 정치적 중립을 내세운 정치권 외곽단체다.

권 고문을 비롯해 상임공동대표인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인명진 목사를 비롯해 이부영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 조배숙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국민동행이 출범하자 정치권에선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에 주목했다. 정대철 고문과 조배숙 전 의원이 안 의원과의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안 의원의 지지 세력인 ‘동작내일포럼’측에서는 환영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일각에선 김덕룡 전 원내대표가 안 의원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제기했다.

드디어 권노갑 고문이 일을 냈다. 안철수 의원을 설득해 야권 통합신당 창당 합의를 성사시켰다. 이제 야권은 이번 선거를 해 볼만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하지만 신당 창당에 이르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창당이 추진되는 과정에 벌써부터 잡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돌아온 노정객 권노갑 고문이 야권통합신당의 안착을 위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권 고문을 오랜 기간 모셨던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 고문의 별명이 ‘용각산’이었는데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니고 언제 누가 흔들어도 심경의 변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만큼 사태를 침착하게 관망했고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내비치지 않으셨지요”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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