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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의 '三不신념'과 안철수의 '새 정치'
명분 없는 안철수 행보…YS와 비교
2014년 08월 16일 (토) 정세운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이 말처럼 ‘새벽(민주주의)’을 위해 투쟁의 선봉에 섰다.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중심에는 YS가 있었다. 전두환 독재정권이 항복을 하고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YS는 야당지도자로서 목숨을 건 투쟁을 이어나갔다.

YS의 투쟁방법은 다른 야당지도자들과는 달리 분명한 소신과 원칙이 있었다. YS에게는 ‘삼불(三不)의 신념’이 있었다.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쳐라”

우선은 국내정치가 아무리 얼어붙고 죽음의 위협이 눈앞에 있더라도 나라를 떠나 해외로 정치무대를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가 있다.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를 기해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됐다. 당시 YS는 국회 국무위원 자격으로 미국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 교수와 코헨 교수 초청으로 한국 통일문제에 관해 연설을 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었다.

YS 부인인 손명순은 전화를 걸어 “지금 계엄령이 선포됐다. 미국에 머물면서 때를 기다려라. 제발 돌아오지 말라”며 눈물로 애원했다. 하지만 YS는 “무슨 소리냐. 감옥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내 나라로 가야지. 곧 귀국하겠다”고 말했다. 7월 21일 일본을 거쳐 YS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1983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 3주년. YS는 ‘단식에 즈음하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단식에 들어갔다. YS의 단식투쟁이 국내외로 일파만파 파급돼 가자 다급해진 전두환 정권은 모종의 조치를 강구했다.

YS 단식 8일째인 5월 25일. 전두환 정권은 YS를 서울대병원으로 강제 이송시켰다.

당시 전 정권은 YS의 단식이 ‘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 측의 체크결과 YS는 오로지 물과 소금만으로 단식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전 정권은 단식 10일째인 5월 27일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을 시켜 회유에 나섰다.

권 총장은 “대통령께서는 총재가 단식을 빨리 끝내고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건강이 회복되면 총재가 일본 미국 유럽 등 어디든지 가도록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총장은 YS를 해외에 내보내고 주택 제공은 물론 생활비 일체를 넉넉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YS는 “우리 국민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외국에 나갈 생각은 꿈에도 없다. 나에 대한 연금해제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요구한 민주화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이 정권도 이승만 박정희를 따라 결국 비참하게 될 것이다. 권 총장은 이 말을 전두환에게 꼭 전해라”고 맞섰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단식 12일째인 5월 29일.

권 총장은 병실로 YS를 찾았다.
“오늘 밤 0시를 기해 총재님의 연금이 해제되며 이제 국내외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나를 해외로 그렇게도 보내고 싶은가.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자 권 총장은 반색을 하며 물어봤다.
“어떻게 해주면 되겠습니까?”

YS는 이렇게 답했다.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

   
▲ YS는 어지간해서는 정치가 길거리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소신이 있었다. 나간다면 선봉에 선다는 원칙이 있었다.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 때 일명 닭장차에 끌려가는 YS.ⓒ사진제공=김영삼 자서전

“의회 안에서 투쟁하라”

YS의 신념 중 또 하나는 민주주의는 의회정치가 기반이고 의회정치는 정당정치가 주춧돌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정당정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3년 2월 27일 치러진 9대 총선. 153개이던 전국의 지역구가 절반도 못되는 73개로 줄어들었다. 더욱이 국회의원 중 3분의 1은 대통령이 임명했다. 많은 야당 의원들은 ‘보이콧’을 주장했다. 하지만 YS는 ‘어떤 형태의 국회든 참여해 투쟁을 해야 한다. 의회 안에서 유신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대부분의 정치지도자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YS는 23일간 단식투쟁을 통해 가택연금을 풀었다. 가택연금이 풀리자 사람들을 모아 산으로 올라갔다. 이들은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만들었다. 1985년 2월 12일 치러지는 12대 총선 참여여부를 두고 이들은 각론을 펼쳤다.

이들 중 다수는 “총선참여를 하게 되면 우리의 투쟁이 희석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김대중(DJ)도 “민추협은 선명재야로 남아달라”며 총선 보이콧을 전달했다.

하지만 YS는 “여당인 민정당과 관제야당인 민한당의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선명야당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해야 한다”며 신민당을 창당했다.

전두환 정권의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 YS는 민한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했다. 정책위의장 김현규, 정책연구실장 홍사덕, 당무위원 서석재, 수석부총무 박관용 등 8명의 민한당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신민당에 입당했다.

또한 YS는 창당을 주도했지만 욕심을 버렸고, 지분을 동교동과 5 대 5로 나누자며 설득하고 양보했다.

신민당은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몰고 왔다. 선거 후 신민당은 민한당을 흡수 통합 시켰다. 그리고 12대 국회에서 신민당은 대여투쟁에 앞장서며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냈다.

“길거리로 나선다면 선봉에 선다”

YS는 어지간해서는 정치를 ‘길거리’로 몰고 가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다. 만약 길거리로 나간다면 앞장선다는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야당지도자들은 지금도 ‘국민’을 앞세워 국회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YS는 여간해서는 길거리로 나서지 않고, 의회 안에서 투쟁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투쟁 때 길거리로 나선 YS는 선봉에 섰다. 그러다 일명 ‘닭장차’에 실려 가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유성환 전 의원은 이와 관련, “YS는 어지간해서는 길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나선다면 맨 앞에 섰다. 3선개헌반대투쟁 때 야당지도자들은 길거리로 나섰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뒤로 빠져있었다. 하지만 YS는 맨 앞줄에 섰다. 때문에 경찰의 곤봉세례를 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전 대표의 행보는 소신이나 명분을 찾기 힘들었다는 게 일반론이다. ⓒ뉴시스

소신이나 명분 없는 안철수 행보

YS의 정치철학과 비교해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끌었던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의 행보는 명분이나 소신을 찾기 힘들다.

국민이란 이름하에 천막을 만들고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일이 잦았다. 2014년 3월 2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신당 대표는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 새정치연합을 탄생시켰다. 합당의 명분은 ‘기초공천제 폐지’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못했다.

7·30 재보궐 선거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지도력 부재는 끝을 달렸다. 선거결과는 참패였다. 그리고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하락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두 공동대표는 사직했다.

필자는 이제 안철수 전 대표에게 ‘당신의 정치철학과 그토록 부르짖었던 새 정치는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물론 그가 대답해줄 리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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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XXX.XXX.13)
2014-08-22 18:16:37
김 안이 길거리로 뛰쳐나가?
국민이란 이름하에 천막을 만들고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일이 잦았다? 그건 안철수 김한길이 아니라 친노패권이 강요해서 벌어진 일 아니었나? 오히려 김 안 둘은 투쟁의 이미지를 벗으려 했다만, 친노패권과 전라디언에게 인민재판 당하고 질질 끌려다녔을 뿐.
에효
(93.XXX.XXX.13)
2014-08-22 18:14:54
그렇게 권력을 잡은 김영삼은 나라를 말아먹었지
그 잘난 민주화운동으로 권력을 잡은 개꼴통김영삼은 거산 소산 놀이로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일으켰지.
00
(115.XXX.XXX.201)
2014-08-18 17:05:08
시대흐름이 정확히 보이네요
안철수 의원이 정치를 하려한다면 ys식 정치를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 안철수의 새정치를 보여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양심을 지키고 살자
(182.XXX.XXX.108)
2014-08-17 09:19:20
아마, 안철수가 김영삼식 정치 하면..... 모든 언론- 정치꾼들....더 씹고 흠집낼 걸?
결론.... 시대정신을 떡바로 보지 못하고 미래 지향적이지 못한.....냄비 대중성.

이와 더불어 각자 자기가 속한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는 부정직성.

거기에다 언론들마저....... 미래를 지향하는 사명의식이 없고....덩ㄱ 부채질.


.....어쩐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도로 나무아부타불.
YS깊이존경
(58.XXX.XXX.194)
2014-08-16 23:27:03
시대상황이달라져도 정치는 명분있는 세의결집에의한 현실적힘입니다
안철수는 정치의 기본속성인 정당한 권력의쟁취와 시대상을 담은 권력의행사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말일겁니다 물론 후자는 정권을 잡을경우 가능할지도모르죠 하지만 전제인 첫째에서 많은의문이 듭니다 기자님이 나가서 데모나하라고 YS의 결단력과 정치적역량을 언급한것은 아니죠 YS도 독재시대에만 시위했지 절차적 민주화이후엔 중도우파의 길을 걸었습니다 안철수는 물론가능성있는인물이나 현재는많이 부족한게사실입니다
ls
(211.XXX.XXX.46)
2014-08-16 23:07:51
기자는 정치를 쥐뿔도 모른다
기자양반. 정치가 뭔지는 알고 쓰는 기사입니까?
민주화? 좋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도 정치수단의 일부일뿐이죠.
486중 가장 유명한 정동영이 무슨 꼴났는지 보십시오.
되든 안되는 이명박은 747공약이라도 머릿속에 남지만
정동영은 '뭣도 없었기때문에' 네거티브만 한겁니다.
'뭘 하겠습니다'가 아닌 'MB나쁜놈'말고 뭘했나요.
정치는 궁극적으로 민생을 돌보는 일입니다. ㅇㅋ?
그놈의 시위 안한다는 태클 지겨워죽겠습니다.
정치도사
(211.XXX.XXX.155)
2014-08-16 23:01:25
안철수 새정치는 공허하고 실체가 없다
안철수는 왜 광주시장에 윤장현을 공천하려고 기를 썼는가?, 안철수는 왜 광주 광산을에 천정배를 공천을 반대했는가? 왜 박원순 사람으로 불리는 기동민의 광주 출마를 막고자, 그를 서울 동작을로 불러올렸을까? 대답은 구태정치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봐라. 공허하고 실체없이 새 시대를 갈망한다든지 시대상황이 맞는 새정치라든지, 그런 얘기는 하지 마세요... 지나가다 님...
지나가다
(182.XXX.XXX.108)
2014-08-16 22:17:04
이 글을 쓴 사람이나 이에 동조하는 사람이나...어쩌면 시대상황을 그렇게도 모를까?
지금이 어는 시대인가?
엣날 독재정권에 맞서는 정치를 해야 하는가?
안철수는 국민들이 새 시대를 갈망하여 정치판에 불러낸 인뭉이었고,
정치도 새 시대상황에 맞는 새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까지, 김영삼- 김대중식 민주화운동 정치여야 하나?

현재 안철수가 정치판에서 내몰리는 진짜 이유는,
여야의 기득권을 놓지않으려는 계파정치와 이를 지키려는
이기심과 탐욕에 매몰된 여야 정치집단 때문이다.
YS깊이존경
(58.XXX.XXX.194)
2014-08-16 17:49:08
정말로 존경하는 김영삼전대통령의 쾌유를 빕니다
많은 YS를 사랑하고지지하시는 모든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말씀들 다들 일리있습니다만 제생각은 YS의 정치력에 박정희든김대중이든 따라갈자는 아직 현대사에 단한명도 없었다는게 제생각입니다 그건 책읽고 배운다고 되는게아니죠 타고난정치천재는 유일무이 YS뿐이고 역사는 최고의정치가로 후대에 YS를기록할것입니다 그런데하물며 안철수라니요 물론 안철수에대해 비판 기대 둘다있겠습니다만 YS에 비유한단것자체가오류라봐요
ehdgotl
(119.XXX.XXX.45)
2014-08-16 16:24:11
안철수는 무릎팍도사가 키운 예능정치인일 뿐이다.
YS DJ는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투쟁해서 얻은 거고...
정거장
(182.XXX.XXX.199)
2014-08-16 12:48:18
영삼과 안철수의 비교(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기사)
난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사람으로 그분을 믿고 기다려보려한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닌 커가는 우리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하여 항상 격려하며 마음으로 존경하며 새정치 이루는 그날까지 항상.......같이 할것입니다.
새절마루
(210.XXX.XXX.71)
2014-08-16 12:39:10
저급한 안철수를 어디다가 가져다 붙이나
안철수를 YS에 비교하는 것은 급이 다른 일... 정치판에서 계산기나 두드리고, 뒤에 숨어 정치생명조차 걸지 못했던 안철수와 - 정치에 목숨을 걸었던 YS, DJ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긴 지금 정치판이 급이 낮긴 하지만
정거장
(182.XXX.XXX.199)
2014-08-16 12:25:39
영삼과 안철수의 비교(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기사)
난 그분의 새정치를 알것 같다. 새정치라는것이 사람들은 크고 거창한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민들을 위하고 남들이 뭐라고 손가락질 해도 국민들을 생각하고 간즈러운곳을 긁어 주는것. 그리고 상대가 하는일에 딴지 걸지 않고 엇박자로 헐&#46910;지 않는것 이것이 기본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 정치는 어떤가. 기자님이 더 잘알것이다. 기본으로 출발하여 큰 뭉치가 되어 새정치가 이루어 질것이다.
정거장
(182.XXX.XXX.199)
2014-08-16 12:18:05
영삼과 안철수의 비교(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기사)
존경한다. 과연 기초공천폐지를 끝까지 고수했다면 새정치민주연합 선거가 과연 성공했을까. 아니다. 최악으로 갔을것이다. 그리고 두대표의 정치생명은 끝이 되었을것이다. 난 아무리 자기의 생각과 신념이 옳다고 하여도 한번쯤은 돌아보고 협의하는 그런자세가. 후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전이다. 기자님은 보아라 또 누군가가 기초공천 폐지를 또 다시 시도 할것이다. 난 그분을 한번도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거장
(182.XXX.XXX.199)
2014-08-16 11:59:00
영삼과 안철수의 비교(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기사)
그당시와 지금현재를 비교 할수 있는가. 지금 국민들은 서로 잡아먹지 않고 서로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 그때는 최루탄과 집회로 얼룩진 시대이다.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야만 옭고 그름을 가늠하는시대인가. 아니다. 지금은 부드럽고 서로 아우르는 리더쉽이 필요한 때이다.기자님께서는 합당의 명분 기초공천제 폐지 과연 지금 우리정치판이 기초공천 폐지를 수용할만한 그릇은 되는가.난 그분의 결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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